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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나무 심는 사람들

기사입력 | 2021-04-02 11:55

김민식 내촌목공소 대표

기원전 3세기 인도 왕국에서도
산림 감독관 지정해 나무 보호

19세기 전쟁에 땅 뺏긴 덴마크
나무 심어 국토를 낙토로 바꿔

한국 임목축적 증가율 세계 1위
또 하나의 ‘한강 기적’ 녹색혁명


백 년 이백 년 농사를 짓는 이가 있다. 나무 심는 사람들이다. 식목의 역사는 문명과 그 궤를 함께해 왔다. 기원전 3세기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아르타샤스트라에 ‘왕국에서 지정한 삼림감독관은 숲의 생산물, 나무의 독성, 서식하는 동물까지 파악하고, 코끼리를 숲 안에 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감독관에게 나무 보호의 의무를 부여한다.’ 현대의 어느 나라 산림보호법 같다. 고대 인도왕국이 나무와 숲 관리에 얼마나 철저했던지 알 수 있다.

세밀한 인도의 지혜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쓴 유대인의 노래가 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구약성경 시편 1편) 사람들 손으로 적절한 곳에 과실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중국·일본과 유럽의 이탈리아·프랑스·영국에는 이미 일이천 년 전에 ‘뽕나무 식재’에 관한 구체적 법령이 있었다. 실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었다.

사과나무도 대륙을 넘어 이식되고 경작한 흔적이 뚜렷하다. 중국 서쪽 끝 톈산 산맥의 야생 사과는 50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와 유럽 남부지역으로 전래됐다. 영국의 느릅나무도 2000년 전 로마 군단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져왔다. 포도나무 지지대로 사용하려고 옮겨 심었단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대륙의 열강들은 신대륙 아메리카, 중국·인도 원산의 나무를 경쟁하듯 자국으로 옮겨 심었다. 런던에는 외래 수종 아카시아와 삼나무가 유유히 그늘을 만들고 파리와 밀라노에는 오동나무·동백나무가 토종 가로수인 듯 늘어서 있다.

대한민국은 나무심기로 아예 국토가 개조됐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는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우리 산들의 풍경에 낯설어했다. 이탈리아의 바위산 돌로미테 일대와 하얀 대리석 산지 카라라를 지나치던 생각이 난다. 이탈리아 도시의 주변 산은 대개 나무가 드문드문하다. 이탈리아에서 가끔 포플러 가로수 길을 만나면 흡사 한국의 70년대와 마주친 듯하다. 지금 우리 산에는 나무가 얼마나 조밀한지 어느 하천과 강이든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른다.

내촌목공소를 찾는 이들은 “새소리에 둘러싸여 있네요” 한다. 내게는 새소리도 격세지감이다. 젊은 날 출장길 도쿄 도심의 이른 아침 까마귀 소리가 얼마나 요란하던지. 신칸센(新幹線)으로 지나치는 일본 구석구석 샛강에는 물이 넘쳤고 숲은 검푸르렀다. 너희는 자연도 넉넉하구나, 참으로 부러웠다. 민둥산·천수답에 수해·가뭄·흉년, 이 중 어느 하나 들지 않고 넘긴 해가 없었다. 그런데 얼추 20년, 아니 30년은 된 것 같다. 이제 가을걷이 후 흉년·풍년이란 말은 이 땅에서 사라졌다. 국토가 완연히 녹색을 띤 이후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의 주요 산림국가다. 임목축적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웃돌고, 국토 면적 대비 산림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4위(63.2%)다. 이 비율이 한국을 근소하게 앞선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 일본 세 나라뿐이다.

흔히들 나무를 심어 국토를 낙토로 바꾼 세계사의 본보기로 덴마크를 꼽는다. 19세기 중반 덴마크는 독일(프로이센)과의 전쟁으로 국토의 근 3분의 1을 잃었다. 실의와 낙심만 남았던 시절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는 덴마크의 농민운동이 시작됐다. 바로 정치가 니콜라이 그룬트비와 군 출신 엔지니어였던 엔리코 달가스의 농민교육과 나무심기다. 지금 유럽에서 국민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덴마크는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으로 다시 일어섰다.

정확히 100년 뒤 대한민국의 처지는 과거 패전 후 황량했던 시절의 덴마크와 흡사했다. 백척간두, 6·25전쟁 후 물러설 곳 없던 20세기 최빈국은 산업화에 착수한 지 불과 한 세대 만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다. 이를 서방세계에서는 ‘한국인이 온다, 한강의 기적’이라며 놀라워했다. 그런데 더욱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국토의 녹색혁명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최근 25년간(1990∼2015) 임목축적 증가율에서 세계 1위의 국가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18년을 기준으로 산림의 공익가치를 연간 221조 원으로 추정한다. 1967년 산림청이 발족했으니 50여 년 만에 이룬 놀라운 결과다.

우리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는 육림가 여섯 분을 모시고 있다. 나무 할아버지 김이만 선생, 육종학자 현신규 교수, 박정희 전 대통령, 축령산의 산림왕 임종국 선생, 천리포수목원 민병갈 원장, SK 최종현 전 회장이다. 한 분 한 분 귀한 이름이다. 이 중에서도 나무심기로 우리 국토·사회·문화·정신까지 개조하는 데 앞장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최종현 전 회장의 업적은 그 규모와 맥락에서 19세기 덴마크의 달가스와 비할 바가 아니다. 무심한 여행자는 코펜하겐의 달가스 흉상과 달가스 대로 앞에서 인사했다. “그대들, 나무를 심었던 자랑스러운 조상이 있었구나. 나도 육림가 박정희·최종현의 나라에서 왔다오.”

우리 함께 나무를 심을 때 너와 나는 없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은 나무에 부딪힌다. 글피인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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