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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환이 온다 |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이지연 옮김 | RHK
문명 자체가 벼랑 끝에 있는데
소통 위한 미디어도 고립 강화
극단적 개인주의 등장에 일조
생물학적으로 성공한 생물은
서로 도움주는 생태계서 공존
운명을 기술·제도에 두지말고
집단적 의지·협력으로 극복을
“문명 자체가 벼랑 끝에 서 있는데도 인간이라는 종(種)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집단적 의지나 협력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이 길밖에 없는 걸까?”
미디어 이론과 디지털 경제 전문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 미국 뉴욕대 교수는 새 책 ‘대전환이 온다(원제 Team Human)’를 이렇게 시작했다. 비장감마저 묻어나는 이 질문을 통해 이 책이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속한 문명에 대한 비평서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사태가 이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 대신 생각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당장 행동에 나서자는 선언문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경쟁이 진화를 일으킨다는 ‘적자생존 신화’를 비판하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적자생존의 관점에서는 희소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모두의 투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장 강한 종만이 살아남아 우월한 유전자를 남기고 나머지는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시각은 다윈과 그 후계자들의 이론을 곡해한다”면서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생물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생태계에서 공존한다”고 말한다. 진화를 순전히 경쟁 논리로만 본다면 인간의 사회성 발달이라는 큰 그림을 놓치게 되고, 상호 연결된 하나의 큰 팀으로서의 인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서 이 책의 원제가 왜 ‘팀 휴먼(Team Human)’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경쟁하는 존재’가 아닌 ‘협력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란 동료들을 뛰어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동료와 어울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목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팀 휴먼이다.”
그러나 인류 문명은 저자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우리 문명은 반(反)인간화로 치닫고 있다. 기술과 시장, 주요 문화적 제도 속에 반인간적 어젠다가 단단히 박혀 있어, 인간을 서로 연결해줘야 할 도구들이 오히려 고립과 억압 수단으로 변질됐다. 이들 모두 애초에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냈다.
하지만 주객은 전도됐고 인간은 도구화와 소외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전경(前景)과 배경의 역전’이라는 비유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중심이어야 할 인간이 오히려 배경으로 전락했다.
반인간화를 추동한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무기’가 된 미디어를 빼놓을 수 없다. 음성으로 출발해 문자, 인쇄술,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소셜미디어 순으로 발달한 인류의 미디어는 인간의 소통을 위해 개발됐지만, 그 자체로는 사회성을 내재하고 있지 않다. 가장 최근의 사례인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도 시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수단이었지만 결국에는 ‘고립의 플랫폼’이 됐다. 하루 24시간 스마트폰을 달고 사는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외롭고 원자화됐다. 더욱이 거대 플랫폼이 지배하는 소셜미디어는 더 이상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기보다는 개인정보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개인을 물건 파는 기업에 연결해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간은 더 이상 소셜미디어의 ‘고객’이 아니라 ‘제품’이 된 것이다.
저자는 특히 인간의 상호관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됐던 디지털 혁명이 실상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디지털 혁명은 결국 우리에게 새로운 출연진 목록을 준 것밖에 없다. 주로 남자이면서 백인이고 자유주의자에 기술 전문가인 사람들 말이다.”
미디어의 타락은 무인화(無人化)로 치닫는 과학기술과 자유시장 만능주의, 인종차별주의 등과 결합해 극단적 개인주의를 낳는다. 저자가 볼 때 “우리를 서로에게서 갈라놓고 자연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여러 신념과 세력, 제도들”이야말로 “팀 휴먼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무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개인주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반인간화를 넘어서는 출발점이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가치를 재발견한 르네상스 운동이 중세를 넘어섰듯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통한 도약을 주장한다. 도약은 ‘새로운 집단주의(collectivism)’를 향한다. 이를 통해 환경보호주의와 여성의 권리, 개인 간 거래(P2P) 경제, 지역중심주의처럼 기존 반인간적 체제에서 억압된 가치들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팀 휴먼’이라는 기치를 걸고 거듭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결국 인간의 운명을 기술이나 기계, 제도 따위에 맡겨두지 말라는 호소다. 인공지능(AI)과 생물복제, 유전공학, 가상현실(VR), 로봇, 나노기술, 바이오해킹, 우주 식민지 건설, 각종 무인화 기술 등은 어떤 식으로든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고 이들을 무작정 거부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들 각각에 대해 입장을 정하고, 그 전개 과정에 인간의 가치가 들어가도록 개입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미래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고, 우리가 도착할 곳이 아니라 현재의 행동으로 만들어 가는 곳”이라는 저자의 말은 기술과 환경의 급변 속에서도 인간의 주도성을 잃지 말자는 ‘팀 휴먼’을 향한 제언인 셈이다. 328쪽, 1만8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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