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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겨울 지나는 길에 만난 ‘하얀 수묵화’… 눈부신 雪山도, 뜨끈한 쌍화차도 좋다

박경일 기자 | 2021-02-04 10:54

전북 정읍 내장산의 절집 내장사로 드는 단풍나무 길. 밤새 눈이 내린 다음 날 아침의 풍경이다. 서로 손을 맞잡듯 하늘을 가리고 있는 단풍나무 가지마다 눈이 가득 쌓였다. 전북 정읍 내장산의 절집 내장사로 드는 단풍나무 길. 밤새 눈이 내린 다음 날 아침의 풍경이다. 서로 손을 맞잡듯 하늘을 가리고 있는 단풍나무 가지마다 눈이 가득 쌓였다.


■ 밤새 눈 내린 ‘정읍 내장산’

‘천년고찰’ 내장사 닿기전 2.4㎞ 단풍나무길 코스
손 맞잡은 듯한 가지에 쌓인 눈 ‘순백의 터널’ 이뤄
관음전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지는 서래봉 경관
마술처럼 도드라지는 능선, 마치 한 폭 그림같아

인구 10만 소도시… 도심 한복판에 쌍화찻집만 13곳
잘 조린 밤·대추 넣고 정성껏 끓여… 대도시선 맛볼 수 없어
전봉준 장군 고향이자 첫 동학봉기 시작된 곳
곳곳에 기념탑·조형물… 폭정의 상징 ‘만석보터’도 가볼만



# 눈 내린 내장산으로 가는 길

내장산국립공원이라면 내장산 하나가 국립공원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국립공원을 이루는 건 세 개의 산이다. 내장산과 백암산, 그리고 입암산. 세 개의 산 중에서 내장산은 전북 정읍의 것이고, 백암산과 입암산은 전남 장성이 임자다. 내장산에는 내장사가 있고, 백암산에는 백양사가 있다.

같은 국립공원 안에 있으니 내장산과 백암산, 그리고 내장사와 백양사는 항상 비교 대상이다. ‘봄에는 백양사, 가을에는 내장사’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어떤 계절에 어디가 더 낫다고 선뜻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단언할 수 있는 건 겨울 풍경만큼은, 장성 백양사보다는 정읍 내장사라는 것이다. 내장사 쪽에는 눈 내린 날, 설산의 위용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쉽게 올려줄 케이블카가 있고, 절집 내장사의 분위기가 좀 더 고즈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겨울 설산을 둘러본 뒤에 딱 좋은 뜨거운 쌍화차가 정읍에는 있다. 쌍화차 얘기를 ‘뜬금없다’고 생각했다면, 정읍의 ‘전설의 쌍화차 거리’를 모르는 게 틀림없다. 그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기로 하자.

마침 밤새 내린 눈이 아침까지 그치지 않고 이어지던 날이었다. 내장사로 가는 길 양쪽에서 맞잡은 단풍나무 가지에 눈이 뒤덮여 순백의 터널을 이뤘다. 단풍철 행락객을 위해 조성한 드넓은 주차장은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설원이었다. 내장사가 겨울 여행에 맞춤한 목적지라는 건, 다른 국립공원 안의 사찰과는 달리 절집 문턱 앞까지 차로 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을 단풍철에는 물론 꿈도 못 꿀 일이지만 행락객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겨울철에는 가능하다.

눈 쌓인 산길은 고요했다. 단풍나무 가지에 가득 쌓인 눈이 이따금 풀썩풀썩 떨어졌다. 눈 내린 이튿날 풍경이 매혹적이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만, 내장사 가는 눈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주차장에서 내장사까지 거리는 2.4㎞ 남짓. 차로 갈 수 있는 포장도로가 놓여 있지만, 분리된 오솔길도 따로 있다. 산문 바로 앞까지 차로 가든지, 걷든지는 선택하면 된다. 눈이 내린 직후라면 내장사 주변에 쌓인 눈이 행여 녹을까 걷기에는 마음이 바쁘겠지만 말이다. 눈길을 밟아 절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 양옆에 빽빽하게 심어진 단풍나무의 실핏줄 같은 가지에 쌓인 눈이, 뜨개실로 짠 레이스처럼 화려했다.


# 눈부신 내장사의 설경

눈 내린 내장산 풍경에 악센트 역할을 하는 게 정자 우화정이 서 있는 연못이다. 우화(羽化)는 ‘날개를 달다’는 뜻.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신선이 돼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오른다’는 의미인데, 아닌 게 아니라 푸른빛의 연못과 눈꽃이 가득 핀 주변 경관이 신선의 경치, 즉 선경(仙景)과도 같다.

내장산 케이블카는 내장사 쪽에 있다. 우화정 인근이 케이블카 하부정류장이다. 여기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빠르고 가파르게 올라 연자봉 중턱쯤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연자봉을 지나 내장산 정상까지 다녀오는 이들도 있지만, 겨울이라면 대개 능선 끝 전망대까지만 다녀온다. 설경을 즐기겠다면 거기까지만 다녀온대도 모자람은 없다. 팔각정자로 지은 전망대까지는 케이블카에서 내려 딱 300m만 걸으면 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내장사 입구와 맞은편 서래봉을 지붕 삼아 들어앉은 암자 벽련암 일대의 설경이 수묵화로 찍어 그린 병풍과도 같다. 내장산의 장엄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서래봉 능선은 내장사 경내에서도 볼 수 있다. 내장사를 마주 보면 정면으로는 대웅전이, 오른쪽으로는 관음전이 있다. 관음전 뒤쪽으로 서래봉의 톱니 같은 능선이 이어져 있다. 눈 내린 뒤라면 절집 저 뒤로 펼쳐진 서래봉 능선이 마치 마술처럼 입체감으로 도드라진다. 눈이 내리면 내장사는 절집보다 관음전 뒤로 올려다보는 서래봉의 경관이 일품인 이유다.

내장사는 백제 때 창건돼 1400년을 헤아리는 천년고찰이지만, 시간의 깊이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이 2012년 10월 불이 나 타버린 뒤 2015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 그렇다. 절집의 묵은 맛은 없지만, 대신 전체적으로 단정한 느낌이다. 내장사에서 유독 눈길을 붙잡았던 것이 누각에 걸린 ‘정혜루(定慧樓)’라는 현판 글씨다. 누각은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잡는다는 의미의 ‘정(定)’, 사물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뜻하는 ‘혜(慧)’로 이름을 삼았다. 여기다가 도덕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의 ‘계(戒)’를 보탠 것이 불교 수행의 세 가지 실천 항목이다.

현판 글씨는 획이 가늘면서도 힘이 넘친다. 글씨에서는 붓이 지나가는 빠른 속도가 느껴진다. 주저함이라고는 없다. 글씨는 당대의 선지식으로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그었던 탄허 스님의 솜씨다. 탄허의 글씨는 내장사 극락전과 명부전의 현판에도 걸려 있다. 현판 글씨에서 느껴지는 건 전통적 서법과 기교를 훌쩍 뛰어넘은 거칠 것 없는 경지다. 밤새 내린 눈으로 설국이 된 법당 마당을, 스님이 붓질하듯 싸리나무 빗자루로 쓸기 시작했다. 함박눈이 아직 그치지 않고 내리는 아침이었다.


# 정읍의 명물, 쌍화차의 매력

정읍 내장산 산행, 혹은 소요(逍遙)하고 난 뒤라면 꼭 권하고 싶은 것이 ‘쌍화차’다. 정읍에는 쌍화차를 내는 전통 찻집이 몰려 있는 ‘전설의 쌍화차 거리’가 있다. 정읍경찰서에서 정읍세무서까지 이어지는 도심 한복판의 쌍화차 거리에는 쌍화차를 파는 찻집만 열세 곳이다.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쌍화찻집이 인구 10만 명의 도시에 열세 곳이나 된다는 건 불가사의에 가깝다. 쌍화차 한 잔은 7000∼8000원. 한 끼 밥값 수준이다. 외지인 손님도 적잖지만 지역 주민이 더 많다.

정읍에 왜 쌍화차 거리가 들어섰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정읍 옹동면에서 쌍화차를 만드는 숙지황의 원료인 뿌리식물 ‘지황’ 재배가 성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 치면 쌍화차의 다른 재료, 이를테면 천궁이나 작약, 황기가 나는 지역에도 쌍화찻집이 생겨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보다는 관공서 골목에서 성업하던 찻집 한두 곳이 쌍화차를 정성껏 끓여내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란 게 설득력 있는 짐작이다. 지방 도시의 느린 속도와 찻집 주인의 성의가 만나서 정읍 쌍화차의 명성이 만들어졌을 거란 얘기다.

정읍 쌍화차 거리의 찻집에서 내는 쌍화차를 분말 따위를 타서 허투루 내는 도시 뒷골목 다방의 쌍화차와 감히 비교할 수 없다. 우선 들어가는 약재의 종류만 스무 가지가 넘는다. 옹기나 뚝배기에 열두 시간 넘게 푹 끓여낸다거나 잘 조린 밤과 대추를 듬뿍 넣는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푸짐한 밤과 대추 때문에 쌍화차는 차(茶)이지만 수저로 떠먹어야 한다.

뜨거운 쌍화차 한 잔을 다 떠먹고 나면, 온몸에 기분 좋은 온기가 퍼진다. 후후 불어가며 밤이며 대추를 건져내 씹는 맛도 좋고, 씁쓸한 듯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뒷맛도 은은하다. 어쩐지 건강해진 것 같다는 느낌도 좋다. 땀을 흘리며 쌍화차를 마시고 나면 웬만해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이유다. 맛있는 해장국 한 그릇을 위해 전날 술을 마신다는 우스개처럼, 정읍에서 뜨끈한 쌍화차 한 잔을 위해 내장산 설산 등반쯤은 능히 감수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 기다리다 돌이 된 여인…정읍사

정읍에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직조 무늬처럼 새겨져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백제가요로 유일하게 전해지는 ‘정읍사(井邑詞)’다. ‘달아 노피곰 도닥샤 어귀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로 시작하는 정읍사는, 정읍에 사는 아낙네가 행상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부른 망부곡(望夫曲)이다.

도시를 상징하는 문화적 자산인 백제가요의 배경을 알아내려 지자체가 나섰지만, 단서가 되는 지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모를까. 1000년도 더 지난 뒤에 정읍사를 부른 상인의 처가 살던 집을 어찌 찾을 수 있을까. 결국 정읍시는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기동 고갯길에다 정읍사공원을 조성하고, 거기 두 손을 모은 채 전주 쪽을 바라보고 선 백제 여인 망부상(望夫像)을 세우는 것으로 무형의 노래 정읍사를 땅에 새겼다.

정읍사공원은 최근 화려하게 탈바꿈했다. 정읍시가 첨단 조명시설을 설치하고 지난해 12월부터 매일 야간 시간대에 망부상으로 오르는 계단과 망부상 뒤편의 백제 여인을 모신 사우(祠宇)에서 미디어파사드와 홀로그램 등을 구현하고 있다. 망부상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 빛으로 그린 화려한 꽃길이 펼쳐지고 비단잉어가 헤엄치는 모습이 제법 볼 만하다.

백제가요 정읍사를 앞세운 관광시설도 있다. 신정동 정촌(정해마을)에 들어선 ‘천년부부사랑, 정촌가요특구’다. 정촌가요특구는 가요전시관과 정읍사 여인 집, 저잣거리 주막, 인공연못, 누각 등을 지어놓은 관광시설. 지자체는 ‘백제 시대 정읍의 중심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이곳 정해마을을 ‘정읍사 발원지’로 못 박았다. 학술적 근거가 없는, 스토리텔링의 일환이다.

정해마을에는 ‘우물 정(井)’에 ‘고을 읍(邑)’을 쓰는 정읍의 지명을 있게 한 우물이 있고, 우물 옆에는 정읍사의 사랑을 상징하는 ‘부부나무’가 있다. 부부나무는 가지를 뻗어 서로를 휘감고 있는 아름드리 왕버드나무와 팽나무를 이른다. 늙어 상처 입은 몸으로도 포옹을 풀지 않는 두 그루 나무에서는 남편을 애태우며 기다린 정읍사의 아낙네가 보인다.


# 혁명의 시간을 따라가는 여정

정읍의 오래된 이야기가 정읍사라면, 정읍 땅에 가장 깊이 새겨진 이야기는 단연 ‘동학농민혁명’이다. 정읍에는 동학의 자취가 곳곳에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계기가 됐던 폭정이 있었던 곳도, 첫 봉기의 모의가 있었던 곳도, 최초의 동학군 봉기가 일어난 곳도 정읍이다. 또 녹두장군 전봉준이 나고 자란 곳도, 김개남과 손화중의 고향도 여기 정읍이다. 그러니 혁명의 자취가 도처에 있을 수밖에….

정읍에서 동학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동학을 기념하거나 기리는 공간이 질서나 체계 없이 흩어져 있다는 기분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동학혁명기념탑만 해도 하나둘이 아니다. 이유가 있다. 우선 동학의 자취가 ‘기념의 공간’으로 차곡차곡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권력의 입장에서 동학은 체제 전복을 꾀하는 위협적인 반란군이었다. 그 뒤로도 동학에는 한동안 불온의 붉은 딱지가 붙었다. 그때 동학은 혁명이 아니라 ‘난(亂·난리)’으로 불렸다. 드러내놓고 동학군을 추모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시대에 따라 권력의 정체성에 따라 동학을 보는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그때 만들어진 기념물과 기념공간이 한데 뒤섞이면서 어디를 가봐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얘기다.

가닥을 잡아보자. 먼저 가볼 곳이 ‘만석보터’다. 만석보는 동학농민혁명의 불씨를 댕긴 고부 군수 조병갑의 폭정을 상징한다. 조병갑이 만석보를 쌓고 물세를 강제로 거두자 전봉준은 분노한 농민들과 함께 고부 관아를 습격했다. 만석보터에는 1986년에 세운 만석보 유지비가 있다. ‘유지(遺址)’란 옛 자취가 남아 있는 터를 말한다. 여기서 이평면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장소를 알리는 상징조형물이 세워진 예동마을이 있다. 1894년 1월 8일. 이 마을에서 고부 봉기에 참여할 군중을 모으는 거리굿이 시작됐다. 거리굿이 이끄는 군중은 말목장터에 집결했고, 성난 군중은 이틀 뒤에 고부 관아를 습격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었다. 혁명을 지켜봤던 이평면사무소 앞 말목장터의 감나무는 2013년 고사했지만, 그 자리에 다시 심은 감나무가 훌쩍 자랐다.

동학의 자취를 찾아간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 동학군의 황토현 전적지에다 세운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다. 여기서 동학의 전개와 의미 등을 차분히 되새길 수 있다. 기념관 주변은 오는 2022년 5월 개관을 목표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들어서는 공원은 낮게 배치한 건축물이 너른 초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설계돼 있다. 황토현 전적지 위쪽에는 1963년에 세워진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는데, 탑이 있는 언덕 아래에는 수많은 붉은 깃발을 꽂아두어 마치 ‘군중의 함성’처럼 연출해놨다. 나부끼는 깃발에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봉준 유적과 ‘단소(壇所)’가 있다. 유적은 전봉준이 살던 초가집을 복원한 곳. 단소는 그의 죽음이 불온시 되던 때에 후손들이 시신 없는 제단을 만들어 제를 지내던 자리다. 정읍에는 전봉준과 함께 혁명을 이끌었던 김개남의 고택 터도 있고, 최경선의 묘도 있다. 고부 봉기를 모의했던 곳이라는 고부면 신중리 대뫼마을에는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도 세워졌다. 그러고 보니, 동학의 뜨거운 함성이 처음 타올랐을 때도 지금처럼 한겨울이었다.


■ 숙빈 최씨와 만남의 광장

궁중 나인이었다가 숙종의 비(妃)가 돼 연잉군(영조)을 낳은 숙빈 최씨는 ‘조선판 신데렐라’로도 불린다. 극적인 인생역전 때문인지 숙빈 최씨에 대한 전설 같은 얘기가 많다. 최씨의 고향 정읍에도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인현왕후 아버지 민유증이 영광군수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정읍 대각교 인근을 지나다 고아 최씨를 거두어 길렀고, 훗날 인현왕후가 입궐할 때 최씨를 데리고 간 것이 인연이 돼 숙종의 비가 됐다는 얘기다. 대각교터에는 이를 기려 조성한 공원 ‘영조 생모 숙빈 최씨 만남의 광장’이 있다.


■ 여행정보

정읍에는 뜻밖에도 맛있는 먹을거리가 많다. 정읍으로의 여행을 권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전라도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정읍은, 음식으로 도드라지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정읍을 대표하는 음식도 없다. 대표 음식이 없다는 건 한편으로는 다양한 먹거리를 고루 맛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정읍에서는 단점이라기보다 강점에 더 가깝다.

정읍에는 과소평가된 맛집이 즐비하다. 쫄면과 팥칼국수 두 가지 메뉴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누리는 ‘보안식당’(063-535-6213)부터 속이 꽉 찬 만두를 즉석에서 빚어내는 만두 집 ‘솜씨만두’(063-531-5797)며 서른 가지가 넘는 따뜻한 반찬을 내는 백반집 ‘정촌식당’(063-537-7900), 참게장과 참게매운탕을 내는 50년 내력의 식당 ‘대일정’(063-534-4030), 전복을 썰어 넣어 지은 돌솥밥을 정성껏 내는 ‘전복돌솥밥’(063-538-9252)…. 이 밖에도 메뉴에 따른 맛집들이 곳곳에 있다.

정읍의 식당들은 죄다 소박하다. 훌륭한 음식을 내놓으면서도, 제가 내는 음식이 맛있는 줄 잘 모른다. 그래서 어느 식당을 가든 편안하다. 이름만 좀 났다 하면 맛집이라며 뻐기는 다른 도시의 식당과는 태도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얘기다.

정읍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아흔아홉 칸으로 지어졌다가 여든 칸 정도가 남은 정읍 산외면의 김명관 고택. 정읍의 명물로 꼽히는 쌍화차. 내장산국립공원 입구의 전봉준공원에 세워진 갑오동학혁명100주년기념탑과 동상. 정읍사공원에서 매일 밤 계단을 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미디어파사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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