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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 음악동네]

‘욕심’ 대신 ‘조심’ 넣어 장수… “그대에겐 늘 좋은 것만 줄게요”

기사입력 | 2021-01-25 10:35


유리상자 ‘사랑해도 될까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미스 트롯2’ 출연자를 SNS로 응원했다. 그가 코네티컷 출신이며 6·25 참전용사 후손이라는 정보도 곁들였다. 지난주 데스매치(14일)에서 탈락했지만 마리아가 구성지게 부른 주현미의 ‘정말 좋았네’는 정말 좋았다.

‘파란 눈의 며느리’(1968·TBC) 케이시(유타 출신)를 기억하는 올드팬이라면 격세지감을 느꼈을 거다. 유학을 마치고 약혼녀와 함께 귀국한 손자를 할아버지는 집안에 들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이듬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반세기 전 음악동네에도 ‘파란 눈’의 이방인들이 애창한 한국노래가 있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혼성듀엣 라나에로스포(개구리와 두꺼비)가 부른 ‘사랑해’(1971)는 대학가에서 시작돼 전 세대, 아니 외교관들까지 사로잡은 명곡이었다. 노래 제목은 ‘사랑해’였지만 가사 중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때문인지 보컬(한민)의 파트너가 바뀌었다. ‘꽃반지 끼고’의 은희를 시작으로 무려 12명이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려서 우리가 만난 거야/ 첫눈에 딱 보는 그 순간 너는 이미 나의 파트너’(남진 ‘파트너’ 중).

‘첫눈에 딱 보는 그 순간’ 좋아했던 듀오가 어느 순간 깨지면 팬들의 상실감도 남다르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름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듀엣의 불화, 해체가 다반사다. ‘싱어게인’(JTBC·18일 방송)에서 63호 가수가 불렀던 ‘바다에 누워’는 1985년 MBC대학가요제 대상곡인데 출연 당시는 혼성듀엣(높은음자리)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MBC강변가요제 대상 수상자도 혼성듀엣(마음과 마음)이었는데 두 팀 다 얼마 후 갈라섰다. 노래 속에 이미 이별이 예견돼 있었던 탓일까. ‘먼 곳에 있지 않아요/ 내 곁에 가까이 있어요/ 하지만 안을 수 없네요/ 그대 마음은 아주 먼 곳에’(‘그대 먼 곳에’ 중).

한때 각별하다가 결별한 듀엣 녹색지대의 노래 ‘사랑을 할 거야’를 차분하게 들어보면 듀엣의 해체과정이 소상하게 드러난다. ‘이젠 나도 널 잊겠어/ 너무 힘이 들잖아/ 원하는 대로 해줄 순 있지만/ 난 더 이상 해줄 게 없어’. 그들이라고 답을 몰랐을까. ‘모든 것을 주는 그런 사랑을 해봐/ 받으려고만 하는 그런 사랑 말고/ 너도 알고 있잖아/ 끝이 없는 걸/ 서로 참아야만 하는걸’.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 가려면 함께 가라는 조언은 결혼식 주례사에 자주 등장한다. 요즘 주례는 없어도 축가는 빠지는 일이 드물다. ‘웨딩싱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고정출연자로 가장 어울리는 듀엣이 바로 유리상자다. 솔직하게 다 보여주자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란다. 상자를 깨트리지 않고 20년 넘도록 함께 보관해온 노하우가 뭘까. 그들이 축가로 부르는 노래 가운데서 답을 구해보자. ‘세상 모든 기쁨과 슬픔 또 사랑/ 함께 나눌 사람을 난 찾은 거죠/ 약속할게요/ 더 이상의 외로움 없을 거란걸’ (1999·‘신부에게’ 중).

그들(박승화, 이세준)이 듀엣을 결성하기 전 무대에서 처음 화음(마음)을 맞춰본 노래가 랜디 반워머의 ‘그냥 네가 가장 필요할 때(Just When I Needed You Most)’였다. 그냥 돈이 필요하고 그냥 인기가 필요했다면 오래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핵심은 양보(讓步)다. 자리(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고 물질(수입)로 다투지 않는 것이다. 헤어지는 사람들은 대개 처음엔 사랑이라고 쓰지만 나중엔 사업이라 고쳐 쓴다. 그때 화음은 소음이 된다. 유리상자 속에 욕심 대신 조심을 넣은 게 장수비결이다.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 내 볼래요/(중략) 그대에겐 늘 좋은 것만 줄게요’(2001·‘사랑해도 될까요’ 중).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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