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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과학·공학 무시한 정치의 위험성

기사입력 | 2021-01-21 11:52

김영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과실연 상임대표

대통령 정무적 결정 가능해도
근거 조작하면 치명적 후유증
탈원전 신공항 4대강洑 걱정

안갯속 같은 초불확실성 시대
‘빨리빨리’보다 나쁜 ‘우르르’
공학적 합리성 무시 땐 대재앙


정치공학적 이분법, 선거공학적 계산…. 공학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에 붙여 ‘협잡’에 가까운 의미로 쓰고 있다. 정치인들과 언론은 물론이고 적절한 단어 사용에 자부심을 걸고 있는 일부 지식인조차 그렇다. 기술이라는 단어도 만만찮은 수모를 겪고 있다. ‘기술 그만 써라’에서 기술은 ‘속임수’에 가깝다. ‘정치공학’ 남발에 대한 필자의 평소 불만을 정치학자들에게 용기 있게 토로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기억이 있다. ‘정치’라는 단어가 홀대받는 것에 비하면 공학은 양반이라고! 하긴 나름 객관적인 발언이라고 자부했다가 ‘정치적 발언’이란 평가를 받으면 두고두고 섭섭하다.

사실, 공학과 정치 사이에서 최근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본 치명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공학적 판단(engineering judgment)이 정치 행위에 악용되는 것은 물론 공학적 판단의 기반이 된 과학적 자료가 정치적 결론을 위해 조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김해신공항이 그렇고 월성원전이 그러했다. 김해신공항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의 결과가 광역단체장 선거를 위해 김해신공항 백지화나 가덕도신공항 추진으로 급변침하는 중이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라는 정치적 결론을 위해 공학적 증거가 조작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직에 정무적 판단을 내릴 권한을 선거를 통해 부여했다. 그러니 정책 결정이 반드시 공학적 판단을 따를 의무는 없다. 정당한 이유를 밝힌다면 말이다. 경제성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낙도에 주민 ‘복지’를 위해 교량을 놓는 사업 등이 좋은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무적 권한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적 사실을 끼워 맞추거나 본질과 다르게 호도하는 현실만큼은 모른 체하고 넘길 수 없다. 이는 적극적 참여의식을 가진 신속 추격자(fast follower)로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 국민을 ‘빨리빨리’와 ‘우르르’ 사회의 일원으로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공학적 의사결정론(decision making theory)에서, ‘빨리빨리’는 미래의 모습이 매우 확실할(certain) 경우에만 택해야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초불확실성 사회다. 감염병 문제가 그렇고 기후변화 문제가 그렇다. 마치 어두운 밤, 그것도 안갯속에서 목표물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일사천리로 내달리다간 폭망할 수 있기에, 우리는 시행착오에서 배우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적응형(adaptive) 의사결정은 1868년 제임스 맥스웰에 의해 탄생한 환류형 제어(feedback control)라는 공학이론에 근거하고 있으며, 인류를 달이라는 목표에 착륙시킨 핵심 공학이론 중 하나다. 이렇듯 공학이론은 복잡한 숫자들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합리적 정책 결정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찬성과 반대를 떠나 4대강 사업 3년 동안 건설은 있었지만 공학은 상실됐고, 이에 질세라 10년도 안 된 보(洑)들이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료가 10개도 안 되면 회귀분석은 자제하라고 기초통계학 수업에서 배웠는데도 말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학적 합리성 여부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우르르’를 조장하는 사회는 ‘빨리빨리’보다 더욱 위험하다. 빨리빨리는 선점 효과 등 장점도 있다. 하지만 우르르에는 공학이 설 자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르르를 조장하는 정치는 건전한 이념보다는 포퓰리즘만 자극해 전문가의 합리적 판단마저도 진영 논리로 배척한다. 또한, 팬덤(fandom) 정치로 이어져 이성의 눈을 가리고 그 자리에 ‘자기 확신’과 ‘분노’가 자리 잡는다. 탈원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과학기술자는 4대강 사업의 찬성론자가 돼야만 하는 것이 웃지 못할 현실이다.

과학기술로 이룩된 초연결 시대, 대중의 과학 지식 이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알파고 때문에 인공지능(AI)을 접하게 됐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초미세먼지의 존재를 알게 됐으며, 코로나 때문에 감기와 독감도 구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정작 국정 운영은 과학적 사고와 공학적 합리성에서 멀어지고 있다. 정치를 위해 과학과 공학이 들러리 서는 사회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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