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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속 썩고, 옹이 박혀도… 푸른 삶은 1400년을 버텼다

박경일 기자 | 2021-01-07 10:48

푹푹 빠지는 세 시간쯤 눈길을 걸어서 만난 두위봉 자락 1400년 수령의 주목.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나이 많은 나무다. 헤아려보면 여기에 뿌리 내린 게 삼국시대쯤이다. 긴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의 상처로 나무 둥치는 텅 비어버렸지만, 혹한의 서리를 뒤집어쓰고도 나무는 당당하고 늠름하다. 이 나무에 새겨진 시간에다 대면 ‘사람 사는 일’이란 게 얼마나 티끌 같은가. 푹푹 빠지는 세 시간쯤 눈길을 걸어서 만난 두위봉 자락 1400년 수령의 주목.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나이 많은 나무다. 헤아려보면 여기에 뿌리 내린 게 삼국시대쯤이다. 긴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의 상처로 나무 둥치는 텅 비어버렸지만, 혹한의 서리를 뒤집어쓰고도 나무는 당당하고 늠름하다. 이 나무에 새겨진 시간에다 대면 ‘사람 사는 일’이란 게 얼마나 티끌 같은가.


■ 정선 두위봉 ‘늙은 나무의 위로’

눈길 헤치고 세 시간 넘게 오르면 만나는 ‘주목 군락’
가파른 비탈 따라 1100·1400·1200살 거목들 당당한 위용
침묵하되 세상 이치 꿰뚫고 있는 ‘산중 賢者’ 만난 느낌

함백산 일대 겨울나무들 가지마다 ‘서리꽃 만발’
만항재 길 ‘적멸보궁’ 정암사… 새벽어둠 밝히는 수마노탑 불빛
화암팔경 중 ‘몰운대’ 눈 내리는 한겨울에 봐야 제격



신년 초는 누구에게나 선물처럼 주어지는 기대에 들뜬 시간입니다만, 올해는 다릅니다. 해를 넘겨서도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니까요. 모두의 안부가 흔들리는 촛불 같으니 그저 견디고 있을 뿐, 새해가 함의하는 ‘희망’과 ‘기대’마저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새 출발을 다짐하는 기지개 같은 신년의 여행조차 언감생심. 집 밖으로의 외출마저 불안합니다. 일상이 중단된 때에 불편한 일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행을 이야기하기로 합니다. 떠나지 못한다면 위로로라도 소임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신축년 첫 여정의 목적지가, 눈 속에 파묻힌 거칠고 가파른 길 끝에 있습니다. 지금의 여행은 위로도 돼야 하지만, 그에 앞서 마땅히 무겁고 힘들고 고된 것이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가볍고 편하고, 즐거운 여행은 뒤로 미뤄두기로 합니다.


# 늙은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

강원 정선에 두위봉(1446m)이 있다. 정선 땅 깊은 골까지 신록으로 물드는 늦은 봄 정상 능선에 피는 연분홍 산철쭉으로 이름난 산이지만, 다른 계절에는 인적이 드물어 적막하다. 그간 두위봉을 세 번 다녀왔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그리고 겨울에 또 한 번. 가을과 겨울, 두 번 모두 두위봉 구분 능선의 가파른 비탈에 산신(山神)처럼 나란히 서 있는 세 그루의 주목을 보러 간 길이었다.

주목은 오래 산다. 주목을 두고 흔히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 이야기대로 두위봉 자락 아래에서 위로 세 그루 주목의 나이가 순서대로 1100살, 1400살, 1200살이다. 세 그루 중 가운데에서 자라는, 가장 오래된 나무가 산 시간이 1400년이다. 합계 나이 3700살. 주목이 죽어서도 ‘천년’ 더 남는다면, 이 세 그루의 나무는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 것인가. 두위봉의 주목은 나무에 깃든 시간으로, 또 거대한 위용으로 그 앞에 선 사람을 한순간에 ‘압도’해버린다.

속수무책의 낭패감에다 ‘코로나 블루’의 우울로 가득한 신년이다. 누군가 ‘살면서 가장 큰일을 겪었을 때’를 묻는다면 ‘지금’이란 답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신년 벽두에 ‘위로’를 생각하며 떠올린 것이 두위봉 가파른 비탈에 우람하게 서 있는 주목이었다. 혹독한 한파와 폭설에도 1400년 동안 단 한 번도 푸르름을 잃지 않았던 그 주목 말이다. 믿어지는가, 이 나무가 이 비탈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첫 잎을 낸 것이 ‘삼국시대’ 무렵이라는 게.

두위봉 주목은 경건한 위압감을 갑옷처럼 두르고 서 있다. 첩첩한 시간이 쌓인 노거수 앞에서 느끼는 건 ‘세상사의 하찮음’ 같은 것들이다.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면 저 아래서 아웅다웅 살았던 게 헛된 것처럼 느껴지듯, 두위봉 주목의 긴 시간 앞에 서면 인간의 시간이란 그저 찰나에 불과하다. 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일’이란 게 얼마나 티끌 같은가. 가파른 비탈에서도 자세를 잃지 않고 서 있는 나무 앞에서 ‘담대한 마음’을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선 자리는 나무가 선 가파른 비탈과 매한가지니, 두위봉 주목을 보러 간 세 번째 여정의 감회는 앞서 다녀온 두 번의 여정과 달랐던 것은 물론이다.


# 혹한의 눈길을 따라 두위봉 오르는 길

두위봉을 오르는 길은 여럿이지만, 주목을 보러 가는 코스는 하나다. 출발지점은 두위봉 아래 도사곡 자연휴양림이다. 겨울 두위봉에는 인적이 드문데, 이쪽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정상까지 가는 가장 멀고도 거친 길이어서 더 적막하다. 푸르스름한 새벽. 눈으로 뒤덮인 산길 앞에서 등산화 끈을 단단히 고쳐 맸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다가 그치다가 했다. 첩첩한 산중의 겨울산행이니 얼음을 찍으며 걸을 수 있는 아이젠도, 등산화 안으로 눈이 들어오는 걸 막는 스패츠도 필수다.

도사곡 휴양림에서 두위봉 정상까지는 5㎞ 남짓. 주목 군락까지 거리는 3.1㎞다. 두위봉 정상까지 5㎞라면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듯하지만, 소요시간은 5시간에 육박한다. 1시간에 고작 1㎞를 간다는 건 그만큼 산행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주목 군락지까지 가는 것만도 3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것도 겨울 아닌 다른 계절에 그렇다는 얘기고, 산행 내내 발목까지 혹은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길인 지금은 시간이 더 걸린다. 눈도 눈이지만, 눈 아래가 돌밭이라 걸으면서 발목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었던 이유 중에는 두통까지 느껴질 정도의 혹한도 있었다.

두위봉은 산세가 밋밋하고 이렇다 할 게 없지만, 그중에서도 도사곡 휴양림에서 오르는 길이 더 그렇다. 한마디로 ‘재미없는 길’이다. 무엇보다 주목 군락지까지 오르는 길에 전망이라곤 아예 없다. 계곡 안쪽을 따라 들어가는 길이라 시야가 탁 트이는 자리가 없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계곡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물길이 워낙 작기도 하고, 그나마도 꽝꽝 얼어붙었다. 이쪽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도 아니고 무시로 드나들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그럴싸한 이야기도 없다. 그러니 지명으로 붙일 만한 변변한 이름도 없었을 것이다. 안내판에 써 있는 등산 코스의 경유지명이 ‘첫 번째 샘터’ ‘두 번째 샘터’‘갈림길’…. 뭐 이런 식이다.

눈 덮인 산길에는 먼저 간 발자국만 눈 아래로 희미할 따름이다. 몇 개의 발자국 위에 눈이 쌓였다. 사람이 지나간 뒤로 두세 번 눈이 더 내릴 때까지 이 길로 드나든 사람은 없는 듯했다. 눈 내린 산은 진공 같은 적막이다. 가빠지는 제 숨소리와 함께 걷는 길이다.


# 존재만으로도 스스로 답이 되다

휴양림에서 주목 군락지까지 거리의 절반쯤 되는 지점에 ‘두 번째 샘터’가 있다. 여기를 지나면 경사는 가팔라지고, 눈 덮인 길은 더 희미해진다. 눈밭에 찍는 발자국 깊이도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깊다. 기온도 뚝 떨어져 급속 냉동고 속으로 들어선 기분이다. 바람마저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처럼 매섭게 분다. 그래도 오전에 일찍 산행을 시작했다면, 이 길 위에는 모든 수고에 값하고도 남는 보상이 있다. 대기의 수분이 나뭇가지마다 얼어붙어 일대의 나무들이 온통 순백의 얼음꽃으로 피어나는 ‘상고대’다. 아래쪽 숲의 겨울나무들이 잉크를 찍어 그린 펜화 같았다면, 두 번째 샘터 위쪽 숲은 순백의 눈꽃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눈부신 크리스마스 카드 속 풍경 같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주목 군락은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주렁주렁 서리꽃을 매달고 있다. 열린 철제 울타리 안의 비탈에 줄을 맞추듯 나란히 서 있는 세 그루 주목의 첫인상은 뜻밖에도 ‘실망’이다. 비탈의 가장 아래쪽에 있어 먼저 만나게 되는 게 1100살 주목인데, 나무의 크기와 위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이유는 순전히 ‘착시’ 때문이다. 비탈진 사면에 서 있는 나무를 비탈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나무의 높이가 실제 크기의 절반에도 못 미쳐 보인다. 실제로는 훤칠한 나무가 뚱뚱해 보이는 이유다.

두위봉 주목의 위용은 경사 위쪽에서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비탈진 경사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목의 위용은, 아래서 봤던 나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또 당당하다. 수형(樹形), 그러니까 나무의 모양은 앞뒤에서 힘차게 자라고 있는 1100살, 1200살 주목이 더 근사하지만, 시간의 깊이와 흔적은 가운데의 1400살 주목에 더 깊이 새겨져 있다. 심재가 썩어 빈 나무의 밑동, 기이하게 뒤틀린 가지, 몸에 새겨진 옹이가 1400년 시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시련이 지나갔을까. 늙은 주목이 보여주는 원숙미는 바로 옆에 딱 붙어 자라고 있는 물오른 청춘 같은 잣나무 거목과 대비돼 더 감동적이다. 침묵하고 있되 세상 이치를 꿰뚫고 있는 산중의 현자(賢者)를 만난 느낌이랄까. 두위봉의 주목은, 아니 오래된 모든 나무는 존재만으로도 티끌 같은 세상사의 질문에 훌륭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노거수가 몸에 새긴 두 가지 나이

두위봉 주목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나이 많은 나무다. 최고령 나무는 울릉도 도동항 뒤 행남봉 절벽 위에서 밑동만 남은 채 숨을 놓지 않고 있는 2500살 향나무다. 두 번째는 강원 홍천 계방산의 주목 군락지에서 자라는 1500살짜리 주목이다. 두위봉의 비탈에서 자라는 1400살 주목은 세 번째로 나이가 많다. 비록 나이는 세 번째로 밀렸지만, 울릉도 향나무나 계방산 주목은 ‘보호수’인 반면 두위봉 주목은 당당히 ‘천연기념물’이다.

보호수와 천연기념물은 상위와 하위의 개념은 아니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을 역사와 경관 학술 가치를 따져 지정한다면, 산림청은 보존하거나 증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나무를 모두 보호수로 지정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180여 본(本)에 불과하지만, 보호수는 자그마치 1만3900본이나 되는 이유다. 굳이 가치의 순위를 따지자면 더 희귀한 천연기념물을 위에 올려둘 수 있겠다. 보통 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면 보호수에서 빠지는데, 이걸 ‘승진’의 개념으로 본다면 가치의 무게를 비교할 수는 있다.

보통 노거수(老巨樹)는 두 종류의 나이를 갖고 있다. ‘생물학적 나이’와 ‘민속학적 나이’다. 생물학적 나이는 나무에 구멍(생장추)을 뚫어 나이테 숫자를 세는 과학적인 진짜 나이고, 민속학적 나이는 전설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인문적인 나이다. 이를테면 두위봉 주목의 1400살 나이는 나이테를 헤아려서 판별한 생물학적 나이다. 인문적 나이는 나이테를 세는 대신 이렇게 정해진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꽂아두고 간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니 1100살, 함양군청 마당의 느티나무는 김종직이 함양 군수 시절에 심었다고 전해지니 600살…. 과연 그게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한 그루 한 그루 나무의 나이를 헤아리는 게 쉽지 않기도 하거니와 구태여 그걸 가려야 할 이유도 없다. 한 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걸 알아낸들 그게 무슨 큰 쓸모 있는 일이겠냐는 얘기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 순위도 산림청의 보호수 목록과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목록을 놓고 따져 본 결과일 뿐이다.


# 함백산의 겨울나무, 그리고 몰운대 소나무

꼭 노거수가 아니라 해도 어떤가. 잎을 다 떨구고 비장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에서 겨울을 견디는 법을 본다.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여름의 비바람과 겨울의 혹한을 견뎌 다시 한 해를 제 안에 한 줄의 나이테로 그리고 서 있는 겨울나무의 가르침을 듣는다.

그런 겨울나무를 만날 수 있는 숲이 바로 정선의 함백산 일대다. 두위봉의 주목을 만나러 가는 길이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숨이 턱에 차 걷는 고해와도 같다면, 정선의 만항재에서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숲 터널은 수정으로 깎아 만든 듯하지만, 이른 새벽마다 제설작업이 이뤄져 차로 편히 갈 수 있는 느긋한 길이다. 기온이 뚝 떨어진 날 아침에 이 길의 숲은 온통 상고대로 뒤덮이는데 가지마다 만발한 서리꽃으로 숨이 다 막힐 지경이다. 만항재 정상 바로 아래 낙엽송 숲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눈 이불로 덮이고 그 위에 나무들이 모조리 크리스마스트리로 서 있는 모습이라니….

만항재로 오르는 길옆에는 이른바 ‘오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꼽히는 절집 정암사가 있다. 이른 새벽 함백산 일출을 보러 오르는데, 정암사 위쪽 산자락이 환했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수마노탑에 켠 불이 새벽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누군가 수마노탑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었다. 무엇이 저리도 간절할까.

정선의 화암리와 몰운리 일대에 ‘화암팔경’이 있다. 동강의 최상류인 동대천의 물길을 끼고 424번 지방도로를 따라 이름 붙인 8곳의 명승이다. 8곳의 경관 중에서 겨울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제7경인 ‘몰운대’다. 겨울 몰운대에서는 박정대 시인의 시 ‘몰운대에 눈 내릴 때’가 썩 잘 어울린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중략… / 불현듯 가슴으로 밀려드는 그리운 이름들 / 바람이 달려가며 호명하고 있었네/… (후략) 몰운대에도 이미 죽기는 했지만 노거수가 있다. 까마득히 솟은 벼랑인 몰운대 끝에서 아슬아슬 몸을 뒤튼 채 죽은 소나무 고사목의 비장미는 지금과 같은 겨울이 제격이다. 여러모로 비장하게 맞는 새해다.


■ 톡 쏘는 맛 ‘화암약수’

몰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화암약수가 있다.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알싸한 탄산의 차가운 화암약수를 신년의 시작을 격려하는 뜻으로 마셔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약수터 풍경도 바꿔놓았다. 화암약수에는 약수를 마시는 이들이 한 장씩 빼서 쓸 수 있는 일회용 종이컵을 차곡차곡 비치한 디스펜서 홀더를 설치해 놓았다. 약수터에서 바가지 하나로 돌려쓰던 일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정선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강원 정선의 고갯길 만항재로 오르는 길 위에서 본 함백산 서남 사면의 모습이다. 나무마다 가득 피어난 서리꽃이 온통 순백의 세상을 이뤘다. 이즈음 같은 혹한의 시기에는 매일 아침 펼쳐지는 풍경이다. 강원 정선의 ‘화암팔경’ 중 제7경인 몰운대. 오른쪽 위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가지를 뒤튼 채 그 자리에서 화석이 된 소나무 고사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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