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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600m 출렁다리·3㎞ 나무덱… 내년 꽃소식과 함께 ‘물의 길’ 열립니다

박경일 기자 | 2020-12-10 10:21

충남 논산 탑정호를 가로지르는 탑정호 출렁다리. 다리만 따지면 570m, 다리 양 끝 진입구간까지 합치면 600m로 국내 최장 출렁다리다. 주탑을 잇는 케이블에 촘촘히 매어놓은 강선에 LED 등을 달아 야간 시간대에 다리 전체를 스크린처럼 활용한다. 충남 논산 탑정호를 가로지르는 탑정호 출렁다리. 다리만 따지면 570m, 다리 양 끝 진입구간까지 합치면 600m로 국내 최장 출렁다리다. 주탑을 잇는 케이블에 촘촘히 매어놓은 강선에 LED 등을 달아 야간 시간대에 다리 전체를 스크린처럼 활용한다.


■ 논산 탑정호 힐링을 주는 풍경

내년3월 개장할 국내최장 출렁다리… 발 아래 호수 ‘아찔’
밤엔 제방 무대서 ‘멀티미디어 분수쇼’ 감상
잎 떨군 수몰나무·자맥질 물오리… 수변공원도 한폭 그림

쇠락한 강경엔 근대역사문화 거리… 1930년대서 멈춘 듯
옛 한약방·한일은행 지점·녹슨 대문 하릴없이 ‘기웃’
임리정·관촉사 은진미륵·세계유산 돈암서원도 명소


여행을 권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여행을 말하기조차 어려운 시간입니다. 여행에 대해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다녀온 곳이 논산의 탑정호에 놓인 국내 최장의 출렁다리입니다. 이미 다리는 다 지었지만, 출렁다리 개통은 세 달쯤 뒤로 미뤄졌습니다. 기반시설공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 또한 있습니다. 탑정호 출렁다리를 미리 올라가 걸어서 건너봤습니다. 한참 뒤에나 가볼 수 있는 곳을 지금 소개하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지금 말고 그때쯤 가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출렁다리가 개통할 때쯤에는 여행을 편하게 말하고 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자고 나면 기록…출렁다리 열풍

스포츠 경기도 아닌데,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게 있다. ‘국내 최장 출렁다리’ 타이틀이다. 시작은 2018년 원주 간현유원지의 소금산 출렁다리였다. 사상 초유의 기록적 성공이었다. 소금산 출렁다리를 찾은 관광객이, 원주 전체를 찾은 관광객 숫자보다 훨씬 더 많았을 정도였으니…. 지자체들이 저마다 출렁다리를 놓겠다고 나선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뒤로 전국 곳곳에 자그마치 100여 개의 출렁다리가 놓인 이유다.

출렁다리가 속속 만들어지면서 ‘국내 최장’ 타이틀 경쟁이 과열됐다. 타이틀 경쟁에 한 획을 그었던 것이 지난해 4월 개통된 충남 예산의 예당호 출렁다리다. 어정쩡하게 호수 한쪽에 걸쳐진 출렁다리의 길이는 402m. 그때까지 파주 마장호 출렁다리가 가진 국내 최장 기록(220m)을 멀찌감치 넘어섰다. 하지만 타이틀 보유 기간이 고작 1년 남짓일 거라는 건 예고된 바다. 논산시가 탑정호에 600m짜리 출렁다리를 놓기로 하고 공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국내 최장 기록’을 넘겨받을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가 최근 완공됐다. 기반시설 공사와 코로나 확산 등으로 개장일은 내년 3월쯤으로 미뤘지만, 탑정호를 가로지르는 국내 최장 길이의 현수교는 다 지어져 위용을 드러냈다. 탑정교 출렁다리의 공식 길이는 600m. 양쪽 진입구간을 제외하고 실제 다리 길이로만 따진다면 570m다. 어느 쪽이든 ‘국내 최장’인데, 한 뼘이라도 더 늘리고 싶었는지 논산시 관계자는 “그냥 600m로 해달라”고 했다.

기존의 기록을 200m 가까이 넘어섰으니 이쯤이면 한동안 대적할 상대가 없어 보였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경북 안동시가 내년 완공을 목표로 안동댐을 가로지르는 길이 750m짜리 출렁다리를 놓겠다며 공사를 시작했다. 논산 탑정교 출렁다리도 국내 최장 타이틀을 갖는 건 1년 정도라는 얘기다. 출렁다리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길이로는 상대하기가 벅찼는지, 경북 영천시는 보현댐에 530m짜리 출렁다리를 놓기로 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350m 경간장(주탑 간 거리)’이라고 자랑했다. 하다 하다 이제는 다리를 기능별로 잘라서 ‘내 것이 더 길다’며 경쟁을 하는 셈이다.

출렁다리 건설 붐을 놓고 일부에서는 지자체의 과열경쟁과 예산 낭비를 지적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 ‘새로 놓은 국내 최장 출렁다리’가 왜 궁금하지 않을까.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는 지자체로서는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요술방망이 같은 출렁다리는 좀처럼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다. 딱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와 유사하달까. 내년 3월 개장할 탑정호 출렁다리의 출발은 이런 한계에서 시작한다.


# 다리를 영상과 콘텐츠의 무대로

순백색의 탑정호 출렁다리는 한눈에도 환한 느낌이었다. U자 모양의 주탑 두 개가 교각 역할을 하고, 두 교각 사이에 교각이 하나 더 있다. 주탑과 주탑 사이의 교각 위는 지붕이 있는 전망대로 꾸며졌다. 다리 위에서 한여름 햇볕을 피할 곳을 만들어 둔 것이다. 산에 놓은 게 아니라, 물 위를 건너는 출렁다리에 적당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전망대에 붙여진 이름이 ‘스카이 가든’이다. 거기서 보는 잔잔한 호수의 경관이 평안하다.

다리 위에 올라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다리 상판이었다. 다리 상판의 절반 정도는 나무로, 나머지는 격자무늬 철망으로 마감돼 있다. 촘촘한 철망 아래로 호수가 내려다보였다.

보통 전망대나 스카이워크 바닥에 유리를 끼우거나 철망을 설치하는 건, 바닥이 보이도록 해 높이가 주는 공포감을 체감토록 하는 게 목적인데, 출렁다리 상판에 격자무늬 철망을 바닥에 깐 건 순전히 안전 때문이다. 강한 바람에 다리가 흔들리는 걸 막고자, 상판 절반을 바람이 통하는 철망으로 마감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철망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수면이 주는 고도감으로 아찔하다. 출렁다리라고는 하지만, 흔들린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 출렁다리는 다리 위의 사람 수에 따라 흔들림이 다른데 100명 이상이 올라오면 출렁거림이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지자체의 출렁다리 놓기 경쟁을 우려하는 건, 단순히 다리 자체만을 관광상품으로 삼는 데 있다. 비슷비슷한 관광콘텐츠의 범람이 결국 공멸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좀 다행인 건 탑정호 출렁다리에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출렁다리 건설은 탑정호의 대단위 수변 개발사업과 맞물려 계획된 것이었다. 출렁다리에 멀티미디어 분수를 결합하고 산책로와 둘레길과 연결하며 테마정원을 조성하는 등의 계획이 제법 촘촘하다.

가장 기대되는 건 한창 마무리공사 중인 멀티미디어 분수다. 출렁다리를 개방하면 제방 쪽에 마련된 관람 무대에서 야간 시간대에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멀티미디어 분수쇼를 상영한다. 이를 위해 출렁다리 주탑과 주탑을 연결한 케이블에서 수직으로 촘촘하게 늘어뜨린 강선마다 LED 조명이 설치됐다. 이 조명을 활용해 다리 전체를 스크린 삼아 다양한 콘텐츠 영상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 물 위를 걷는 서정적인 운치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4년에 완공된 탑정호는 예당저수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다. 만수 면적 662만㎡(200만여 평). 지금 봐도 내륙의 바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다. 논산 땅에다 이만한 저수지를 지었던 건 함경도 원산과 함께 ‘조선의 2대 포구’로 일컬어지던 강경의 경제력이 바탕이 됐으리라. 예전의 위세를 다 잃고 젓갈 시장으로 겨우 살아남은 쇠락한 강경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이어 하기로 하자.

‘탑정’이란 저수지 이름은 탑정리란 마을 지명에서 따왔다. 지금은 수몰된 저수지 한 가운데 ‘어린사(魚鱗寺)’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에 정자형상의 탑이 있어 ‘탑정(塔亭)’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탑정호 제방 인근에 어린사 탑의 부재를 옮겨 놓았는데, 우선 탑이 아닌 부도인 데다 그마저 대부분이 소실되고 남은 부재가 보잘것없다. 크기도 작은 석등 정도 규모일 따름이다. 논산 땅에 내로라하는 절이며 불교 유적이 한두 개가 아닌데, 이리도 초라한 탑이 어떻게 논산사람들의 마음에 또렷하게 자리 잡아 마을의 지명이 되고, 거대한 호수의 이름이 됐을까.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탑정호에는 수변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수변 습지를 잘 다듬어 나무를 심어놓고 호안(湖岸)을 따라 물 위에 나무 덱을 설치해 산책로를 이어놓았다. 이름하여 ‘힐링수변데크산책로’다. 3㎞ 남짓 이어지는 나무 덱은, 설명적인 이름과는 딴판으로 물 위를 걷는 서정적이고 운치 있는 길이다.

잎을 다 떨구고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수몰나무가 마치 펜화로 그린 그림 같은데, 그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물오리와 물닭들이 자맥질한다. 호반 풍경이야 신록이 물드는 때가 가장 좋겠지만, 차가운 겨울날 호반 산책을 하며 맡는 알싸한 박하 같은 겨울의 향기도 못지않다. 내키는 만큼만 걷다가 돌아 나와도 되지만, 산책로에서 출렁다리를 거쳐 탑정리석탑까지 이어지는 걷기 코스인 ‘수변데크둘레길’을 따라 편도 1시간 30분 코스를 붙여 걷는 것을 추천한다.

수변생태공원에 이어붙여 다녀올 곳이 인근의 백제군사박물관과 계백 장군 유적지다. 논산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훈련소’이겠고, 그다음이나, 그 다음다음으로 떠올리는 게 ‘황산벌’이 아닐까. 백제의 계백 장군이 5000명 군사로 신라 김유신의 5만 군과 결사항전으로 맞서 싸웠다는 그 황산벌 말이다. 백제군사박물관이 들어선 자리는 황산벌과 멀지 않다. 패전한 장군이 남기고 간 게 없으니 사실 박물관에는 그다지 볼 게 없다. 대신 눈길이 가는 건 야외 공간에 세운 말을 탄 계백 장군 동상이다. 크고 힘차고 역동적인 계백 장군의 모습이 굵은 붓으로 그린 그림 같다. 봉분 하나와 비석 하나 남은 계백 장군 묘도 들러보자. 추정일뿐, 그게 진짜 계백 장군이 묻힌 곳인지 알 도리는 없다. 그저 백제 유민들이 장군의 시신을 거둬 매장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올 따름이지만, 둥근 봉분 앞에 세워둔 ‘백제계백장군지묘’를 보니 계백 장군이 실재했던 인물이었음이 새삼스럽다.


# 시간의 녹슨 흔적을 만나는 곳

지금부터는 미뤄둔 강경 이야기. 강경이야말로 시간의 녹슨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만큼 긴 시간 동안 쇠락하고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지금은 하굿둑이 물길을 막았지만, 금강이 내륙의 수로로 활용되던 때 강경은, 한때 ‘물류의 집산지’로 번성의 영광을 누렸다. 그때 강경은 원산과 함께 ‘조선의 2대 포구’로 꼽혔다. 물산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장이 열렸고, 그렇게 열린 강경장은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에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물류의 중심이었던 강경에 배후 농지의 수탈을 노린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일본인의 자본이 더해져 나날이 도시는 번성했다. 1904년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여관과 병원이 들어섰고, 1906년에는 군산∼강경 간 전화가 개통됐다. 1909년 재판소가 들어섰으며 1911년에는 대형 극장까지 들어섰다. 강경은 당당한 근대상업도시로 떠올랐다. 그 무렵 강경 인구가 지금의 세 배가 넘는 3만 명이었다. 유동인구까지 합친다면 10만 명을 헤아렸다는 기록도 있다. 강경이 가장 번성했던,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지금 강경은, 젓갈 하나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쇠락한 소읍이다. 강경의 몰락은 1914년 대전∼강경 간 호남선 철로 부설로 시작됐다. 육로교통이 발달하면서 금강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물류는 서서히 쇠퇴했다. 고속도로 건설로 물류의 중심이 부산과 인천이 되면서 강경의 쇠퇴 속도는 빨라졌다. 1930년대 어디쯤에서 강경의 시계는 멈췄다. 지금은 강경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과 노동조합사무실, 옛 남일당 한약방 건물, 북옥감리교회에 멈춰진 시간이 있다.

논산시는 근대건축물을 관광에 활용하겠다며 근대역사문화 거리를 조성했다. 이런 노력에도 성과가 없자 이번에는 강경역사관 뒤편에다 일제강점기 양식으로 대여섯 동의 신축 건물을 지었다. ‘레트로’ 느낌의 레스토랑과 공연장 등을 들여 관광시설 겸 촬영세트장 등으로 활용하려 했던 것. 그러나 건물은 완공 후에도 쓰임새 없이 텅 비어있다.

강경의 멈춰진 시간은 손님 유치를 노린 번듯한 ‘가짜’나 진정성 없는 문화거리가 아니라, 좁은 골목의 녹슨 대문과 무너진 담벼락, 오래된 영화 포스터와 낡은 고물상 간판처럼 오래돼 허물어져 가는 것들에 있다. 그저 쇠락한 골목을 하릴없이 기웃거리는 게 강경을 보는 요령이란 얘기다.


# 교회와 절집, 그리고 서원

강경의 시간이 꼭 일본식 근대 건축물에만 새겨져 있는 건 아니다. 번성기에 근대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강경에 들어온 교회와 성당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바느질하듯 덧대어 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제관이자 성무 활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여기 강경이었다. 이를 기념하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강경성당 구내에 있다. 강경에는 또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 예배지가 있고,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옛 강경성결교회 전통 한옥 예배당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이뿐만 아니다. 시간의 태엽을 더 감으면 조선 예학의 거두로 일컬어지는 사계 김장생이 후학을 양성했던 죽림서원이 있고, 죽림서원 뒤 대숲 사잇길을 지나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는 자리에는 정자 임리정이 있다. 임리정을 바라보는 자리에는 김장생 제자 우암 송시열이 스승을 기리고자 세운 팔괘정도 있다.

강경에서 옥녀봉도 빼놓을 수는 없다. 옥녀봉은 강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 43m. ‘봉(峰)’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정도의 높이지만, 그래도 한때 ‘강경산’이라고 부르며 산 대접을 해줬단다. 옥녀봉 정상의 느티나무 옆에 서면 야트막한 동산 정도의 높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탁 터진다. 앞으로는 굽이치는 금강이, 뒤로는 강경읍의 경관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논산에는 별것 없어 보이지만, 하나하나 따져보고 나면 그제야 꼭 가봐야 한다고 밑줄칠 곳이 한가득 있다. 은진미륵이 있는 절집 관촉사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이룬 기념으로 창건한 개태사도 그렇고, 쌍계사의 화려한 꽃 문살과 소원을 들어준다는 칡 기둥도 그렇다.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묶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돈암서원도 빼놓을 수는 없다. 모름지기 타이틀은 따고 볼 일인 듯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뒤 돈암서원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서원 주변이 몰라볼 정도로 대대적으로 정비된 것도 그렇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주민들이 매일 아침 서원 건물의 마루를 쓸고 닦는다는 것이다. 시에서 지원하는 공공사업의 일환이겠으나 이른 아침 응도당의 반들반들한 마루를 꼼꼼하게 비질하는 주민들이 모습에서 마음을 담은 정성이 느껴졌다.


■ 논산 관촉사의 석불

은진미륵에서 느껴지는 건 파격적이고 과감한 미적 감각이다. 잘 맞지 않는 석불의 신체 비례는 어쩌면 무성의해 보이기까지 하다. 통일신라 때 석굴암 본존불의 세련된 미감이 200년 뒤에 이렇게 투박해졌다. 솜씨의 문제는 아니다. 귀족 중심의 불교가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서 불상은 미감이나 완성도가 아니라, 백성의 소망을 투사하는 상징으로서 가치를 가지게 됐으리라. 은진미륵이 캐리커처처럼 과장되고 선명한 인상을 갖게 된 연유다.

논산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충남 논산 탑정호의 ‘수변데크둘레길’. 호안을 따라 물 위에 놓인 나무 덱이 3㎞쯤 이어져 있다. 덱을 딛고 걷는 길 위에서 수몰나무와 물오리 떼를 볼 수 있다. 늦가을 색으로 물든 탑정호 수변생태공원. 사진 위부터 국보로 지정된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강경읍의 건재약방. 한식 목조건물로 1923년에 건축됐다. 백제군사박물관 앞 언덕에 세워놓은 계백 장군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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