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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정치부 차장

2015년 12월 한 새정치민주연합 당직자에게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며 반대편을 설득하지 못하는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비판한 기사에 관해서였다. 이 당직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고, “정치적 행태를 비교했을 뿐, 문 대표는 민주주의자이고 박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답했다. 이는 출입처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친노(친노무현)계와 86세대가 패권주의라고 공격은 받지만,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을 적과 친구 두 부류로만 판단하는 현 여권을 볼 때 순진한 판단이었다. 지난달 22일 공식 출범한 친문(친문재인) 진영 싱크탱크 ‘민주주의 4.0’ 설립 취지문은 이를 확인해 줬다. 취지문에는 “아직도 혐오와 저주에 몰입하는 기득 권력, ‘좌는 악(惡), 우는 선(善)’이라고 믿으며 세상을 좌우 이분법으로 보는 냉전 기득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정권을 엄호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돼 있다.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 쫓아내기는 여권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나타난 대표적 사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전고검 검사이던 윤 총장을 고검장급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했고, 2년 뒤에는 검찰총장으로 승진시켰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수사할 당시 윤 총장은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여권은 최고의 검사로 칭송했다. 그러나 윤 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을 시작으로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기 시작하자, 태도는 돌변했다. 지난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윤 총장 부인과 장모 등 가족 관련 의혹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던 여당 법제사법위원들은 이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법, 절차를 무시하고 윤 총장 쫓아내기에 혈안이 돼 있다. ‘악’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합리화된다.

문제점을 지적한 인사들 역시 ‘우리 편’에서 제외되고 있다. 페이스북에 추 장관 등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친문 열성 지지자들은 비난을 퍼부었다. 검찰개혁의 진정한 목표, 추 장관 행위의 비합법성 등을 지적한 상식적인 문제 제기였으나, 돌아온 답은 “우리 당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이 “절차적 정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공정사회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조건이다”고 하자 ‘의장이 되고 싶어 한다’는 등 비아냥만 난무한다.

조 의원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다 ‘정윤회 문건’ 유출 배후로 지목돼 ‘팽’당했다. ‘최서원(최순실) 사태’는 비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판단한 조 의원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이런 조 의원을 민주당으로 데려온 건 문 대통령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영입한 인재다. 조 의원은 이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악’으로 규정된 듯하다. 건전한 내부 경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른바 ‘민주진영’이 박근혜 정부와 다른 점이 있을까. 문 대통령을 박 전 대통령에 빗대 비판한 게 더는 미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