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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美 민주주의 ‘중도 3%’가 살렸다

기사입력 | 2020-11-20 11:32

신보영 국제부장

트럼프 불복으로 혼란 美 대선
전세계 ‘민주주의 사망’ 탄식
4년 전 트럼프 당선부터 추락

‘영끌’ 투표율로 反트럼프 전선
3% 중도층이 되돌린 민주주의
한국도 내년 補選 중도가 좌우


2020년 미국 대선은 지난 3일 선거일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세, 다음 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역전, 접전 끝에 지난 7일 바이든 후보의 승리 선언과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에 이어 20일까지도 공식 당선인이 없는, 보기 드문 선례를 만들었다. 또 역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승자가 탄생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패자도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패배 뒤에도 대중 압박부터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철수까지 강행하면서 역사적으로 손에 꼽을 만한 떠들썩한 권력 인수·인계 기간도 보내고 있다. 한국과 전 세계가 “미국의 민주주의가 사망했다”고 탄식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이번에 비로소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2016년 대선 때 사실상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중우(衆愚)정치와 독재 방지를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틀을 뚫고 대통령에 오른 유일한 포퓰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제도를 잘 파고들어 권력도 맘대로 휘둘렀다. 4년 전 워싱턴DC에서 만났던 엘리트들이 쏟아냈던 “미국의 제도는 견고하기 때문에 트럼프의 전횡을 막아낼 것”이라는 장담도 금세 무색해졌다.

그래도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단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를 위해 트럼프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연령·계층·인종 불문 모두 똘똘 뭉쳤다. 민주당도 당내 진보 세력의 강력한 목소리를 뚫고 중도 성향의 바이든을 대선 후보로 내세워 외연을 확대했다. 그 결과가 ‘영끌’ 투표율(66.5%)이다. 1900년 이래 12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그런 점에서 올해는 미국 민주주의가 사망한 해가 아니라 ‘민주주의 재생(rejuvenation)’ 원년이다.

미국 대선은 어떻게 ‘반(反)트럼프’만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답은 중도층(moderate)에 있다. 가운데에서 합리적·이성적 고민을 하는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와 이들의 선택에 대세가 결정 나는 것이다. AP통신 분석에 따르면 올해 대선 결과를 바꾼 ‘스윙 보터’ 비중은 딱 3%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을 찍었다가 민주당으로 돌아선 유권자가 6%, 반대의 경우가 3%이기 때문이다. 중도층 3%의 변심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부실 대응이다. 2017년 1월 취임식 참석 인원 부풀리기부터 시작된 트럼프 행정부의 대안적 사실(alt-facts)을 비롯한 각종 행태에 쌓여 왔던 반감이 코로나를 계기로 분출했다.

한국 상황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징벌적 성격을 띤 부동산 정책과 부실 전세대책, 탈원전에서 김해 신공항 추진 중단까지 일방적 정책 결정에 합리적 성향의 중도층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조국·윤미향·추미애로 이어진 정권 핵심 인사들과 관련된 논란을 보면 ‘대안적 사실’ 부분에서 문재인 정부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문 대통령은 트럼프와는 반대로 ‘정치적 천운’이 따랐다. 3월엔 코로나 급증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4월 총선 당시에는 다른 선진국에서 창궐하고 한국에선 진정세로 접어들면서 세계적 찬사를 받고, 전화위복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적 희비가 교차하지만, 미국은 이번 선거로 민주주의 부활을 위한 출발점에 먼저 섰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18일 표현한 대로 “미국 민주주의는 재앙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다시 한 번 확인된 분열을 통합해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가 놓여 있지만, 비민주적 통치 행태를 심판하는 선거의 역할은 다 해냈기 때문이다.

우리도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통해 출발점에 서야 한다. 재·보선 원인이 된 성추행 과오를 심판하고, 공당에 약속을 지키라고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이 과제의 성공 여부도 역시 합리적 이성을 가진 중도층에 달려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양극단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지만, 역사에서 방향을 정하는 것은 객관적 균형 감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스윙 보터다. 중도층이 균형추 역할을 하기 위해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있다.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였던 존 루이스 미국 하원의원이 지난 7월 타계 직전 NYT 기고문에서 밝힌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적인 상태(a state)가 아니다. 동적인 행동(an ac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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