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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물살을 ‘힘껏 젓다’… 태화강 낭만에 ‘흠뻑 젖다’

박경일 기자 | 2020-10-29 10:40


■ ‘패들보드’ 타고 관광명소 투어… 울산 태화강

1급수로 변신한 ‘죽음의 강’
관광公 공모로 투어상품 탄생

강 건너기부터 명소 탐방까지
사전신청뒤 안전교육 받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겨
태화루까지 생태체험은 무료


울산은 ‘경제와 환경이 상생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를 뜻하는 ‘에코폴리스’를 지향하고 있다. 에코폴리스로서의 울산을 드러내는 이즈음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태화강 수면에 떠 있는 ‘패들보드’다. 패들보드는 서핑보드보다 좀 더 큰 보드를 물에 띄우고 그 위에 두 발로 서서 패들(노)을 저으며 즐기는 신종레포츠. 바다나 강을 낀 선진국 대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패들보드는, 도시와 환경의 조화, 일과 레저의 조화를 보여주는 레포츠이기도 하다. 도시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낙조의 풍경 속에서 강물 위에 보드를 띄워놓고 서서 노를 젓는 모습은, 여유 있는 생활과 근사한 여가를 즐기는 도시생활의 로망을 보여준다. 도심 한복판의 강에서 패들보드를 타고 노를 저으며 여행하는 일이,울산 태화강에서는 가능하다.


# ‘죽음의 강’이 청정한 1급수로

울산 태화강에서 즐기는 패들보드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되살아난 태화강 얘기부터 하고 가자. 울산 도심을 흐르는 하천인 태화강의 극적인 수질개선 과정은 산업도시 울산의 정체성을 ‘친환경 생태 도시’로 바꿔낸 기적적인 지표다. 울산은 경제성장기 압축성장의 중심도시였다. 눈부신 산업발전의 영광을 맨 앞줄에서 누렸지만, 뒤편의 그늘에서는 ‘공해 도시’란 오명을 감수해야만 했다. 급격한 공업화에 몰두한 결과 경제는 성장하고 가계수입은 늘었지만, 거주공간의 환경과 생태는 날로 피폐해졌다. 그 무렵 태화강은 오·폐수로 그득했다. 1994년 태화강 수질은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 5급수 수준인 9.7PPM. 2년 뒤인 1996년에는 수질이 더 악화해 11.3PPM으로 농업용수는 물론,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

한때 ‘죽음의 강’으로도 불렸던 태화강은 울산시와 시민이 함께 벌인 태화강 수질개선과 생태계 복원사업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곳곳에 하수처리장을 새로 짓고, 생활 오·폐수를 하수처리장으로 연결하고, 하류 강바닥에 쌓인 오염물을 걷어냈다. 노력의 결과는 금세 나타났다. 2003년 태화강에서 기적처럼 연어가 잡혔을 때,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2년 뒤 태화강에서는 전국 수영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15년. 이제 태화강은 1급수의 청정한 강이 됐다.


# 공모사업이 만든 새로운 관광상품

태화강이 1급수의 청정한 강이 됐지만, 그동안 태화강에서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없었다. 해상 안전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까스로 되찾은 태화강의 수질을 다시 훼손할 우려 때문에 울산시는 공유수면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패들보드가 태화강에 처음 띄워졌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산학연관 협력 지방관광프로젝트’를 공모하자, 2018년부터 개인적 취미로 패들보드를 즐기던 김정기 울산대 스포츠 학부 겸임교수가 ‘태화강 패들보드 레저생태문화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원했고, 이 프로그램이 공모대상으로 선정됐다.

산학연관 협력 프로젝트란 기업과 학교, 연구소, 지자체 등이 협업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관광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관광공사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프로젝트에 사업화에 필요한 개발비와 운영비, 인프라 비용을 지원하고, 컨설팅, 대외 홍보 등도 맡아서 해주고 있다. 관광공사는 지난해 공모를 통해 9개 프로젝트를 선정했고, 1년 지원사업을 거쳐 성공 가능성이 높은 3개 프로젝트를 올해까지 육성 지원하고 있는데, 울산 태화강 패들보드 레저생태문화관광 프로그램이 그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은 태화강에서 패들보드를 타고 강변의 관광명소를 들르는, 레저와 관광을 결합한 상품이다.

관광공사의 ‘산학연관 협력 프로젝트’는 민간기업과 학계, 연구소, 지자체 등과의 협업을 전제로 하는 사업이다. 공모를 위해서는 학교나 지자체의 협조가 필수였던 것. 김 교수는 울산시를 찾아가 태화강에서 패들보드를 탈 수 있도록 협조를 받아야 했고, 울산대에는 체육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패들보드 수업을 지원하고 강사 확보 등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환경오염과 특혜시비를 우려해 울산시는 그동안 절대로 태화강에서의 레저스포츠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울산시가 마음을 바꿔 김 교수와의 협업에 나선 건 패들보드가 무동력 친환경 스포츠인 데다, 시민 대상의 무료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을 약속했기 때문. 지난해는 울산시와 협업했고, 올해는 패들보드를 지역의 명품 레포츠 체험으로 육성하려는 울산 남구청으로부터 협력을 받고 있다. 울산대에서도 흔쾌히 협조를 약속했다. 태화강 패들보드 레저스포츠 체험관광 투어 회사 ‘월드라온’은 이렇게 탄생했다. 관광공사의 공모와 지원사업이 지역의 매력적인 관광상품 탄생이란 결과로 이어진 사례다.


# 누구나 즐기는 레저…패들보드

월드라온은 태화교 아래 태화강 둔치에 있다. 이곳에서 하루 두 번 패들보드 체험과 투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체험객이나 투어 고객들이 패들보드를 타고 강 건너 태화루까지 강을 건너다니며 즐기거나 태화강 십리대숲이나 태화강 동굴피아, 태화강전망대, 삼호대숲 등 4곳의 목적지로 가는 투어를 즐긴다.

뜻밖에도 칠순이 넘은 노인이나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교 저학년이 부담 없이 패들보드를 탔다. 패들보드를 타다가 차가운 강물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생각보다 보드의 부력이 커서 체중을 안정적으로 넉넉히 받쳤다. 카약이나 카누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안심됐던 건 보드가 체중 이동에 따라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만약을 대비해 구명조끼를 입고 이용하지만, 물에 빠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잠깐의 안전교육을 받고 처음 패들보드를 탄 초등학교 저학년생도 주춤거리며 앉아서 노를 젓다가 10분도 안 돼 보드 위에 일어서서 능숙하게 노를 저었다.

휴일인 이날 오전에 태화강에 패들보드를 타러 온 이는 모두 14명이었다. 이용자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부모와 함께 나온 초등학생도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온 청소년도 있었다. 연인 사이의 남녀도 있었고 중년의 부부도, 노부부도 있었다. 오후에는 30명이 예약돼 있다고 했다. 주말이나 휴일은 예약 한도 인원을 넘겨 선착순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잦단다.

월드라온의 태화강 패들보드 체험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제법 알려졌다. 태화강 인근에 거주하는데 자녀들이 먼저 타보고 권유해서 그동안 패들보드를 여러 번 타 봤다는 칠순의 부부는 “그리 힘들지 않고 금세 배울 수 있어 노인에게도 좋은 운동”이라며 “이렇게 보드를 타고 노를 젓다 보면 몸과 마음이 다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처음 패들보드를 탔다는 노부부는 1주일에 한 번꼴로 태화강을 찾는 ‘단골 중의 단골’이다.


# 패들보드를 타고 도시를 여행하다

패들보드 이용의 문턱이 낮은 건 태화교 아래에서 태화루까지 가볍게 즐기는 패들보드 생태체험 프로그램이 돈 한 푼 받지 않고 무료로 진행되기 때문. 지역 주민이든, 여행자든 누구나 사전신청만 하면 무료로 안전 교육을 받고 패들보드를 탈 수 있다. 이렇게 운영하면 뭐가 남을까. 김 교수는 “패들보드의 저변 확대와 시민들의 여가생활 기회 제공 등의 취지 실현”이라며 “무료 이용으로 패들보드에 재미를 붙이고 나면 좀 더 멀리 가고 싶어지는데, 그런 이용자를 위해 패들보드를 타고 가는 태화강 여행상품 등을 개발해 요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요금을 받는다지만, 다른 레저스포츠에 비해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태화루 아래에서 벗어나 십리대밭교 구간을 2시간 동안 제약 없이 이용하는 ‘라온 프리’ 프로그램은 1만 원. 강변의 태화강 전망대나 철새대숲까지 다녀오는 3시간 프로그램이 가장 비싼 데, 그래 봐야 요금은 1만5000원이다. 여행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압축성장의 시대에 죽음의 강으로 전락했다가 울산의 대표적인 생태 명소가 된 태화강. 도심 빌딩 숲 사이의 강에 보드를 띄우고 노를 젓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즐겁다. 만추로 들어서는 지금은, 도시의 단풍과 태화강의 푸른 대숲이 그 즐거움을 더 해준다. 시민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울산을 여행 중인 여행자에게는 더 각별하게 느껴지리라.

울산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한국관광공사·문화일보 공동기획]

울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에서 시민들이 패들보드를 즐기는 모습. 패들보드는 여유 있는 도시에서의 여가생활을 낭만적으로 상징한다. 초보자들은 패들보드를 앉아서 타지만 강한 부력의 보드가 주는 안정감에 이내 일어서서 노를 젓게 된다. 강 건너편의 누각은 태화강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태화루다. 취수탑을 개조해 만든 태화강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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