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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1979년 2학기, 서울 용산구의 오산(五山)중학교에 강원 인제군에서 전학생이 왔다. ‘촌놈 박순철’은 순박하고, 축구를 잘해 같은 반 친구들이 금세 좋아했다. 인제에서는 제법 공부를 잘했다는데, 서울과는 수준 차이가 있다고 보고, 반에서 1·2등을 다투던 친구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데 2학기 첫 월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관악구에 있는 남강고를 거쳐 1983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장발로 세상에 저항했고, 민주화 운동 시기에는 사법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다. 1987년 개헌과 함께 민주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대학원에 진학해 시험을 준비했다. 그 때문에 대학 동기들에 비해 합격이 늦었다. 1995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초임 시절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을 해결해 ‘이달의 검사상’을 받았다. 서울지검·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대검 검찰연구관·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등 요직을 거쳤지만, 특정 정권이나 개인과 가깝다는 평을 들은 적이 없다. 고향에서는 국회의원 출마 권유도 있었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상법을 전공했고 ‘내부자 거래’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금융위원회 파견 근무도 했기 때문에 검찰 내에서는 매우 드문 금융전문가다. 로펌 등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검사를 천직으로 알고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경력을 보면 라임 펀드 사건 수사에 더 이상의 적임자가 없었다. 그도 3000명이 넘는 피해자, 1조6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라임 사건의 수사 대상은 분명하다. 첫째, 펀드 사건 전모 파악과 피해금 회수. 둘째, 권력 비호. 셋째, 야권 인사 관여. 넷째, 검사 로비. 중요도로 따지면 4:3:2:1쯤 될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정치화되면서 첫째·둘째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올바른 검사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사의를 표명하는 글에서 “또 한 명의 정치검사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추미애 라인’이라는 평가가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 수 있다. 의정부지검장 시절 윤석열 검찰총장 장모를 수사해 일부 기소한 것도, 죄가 되는 부분과 되지 않는 부분을 가려서 처분했을 뿐이다. 제정신을 가진 검사가 더 이상 직분을 수행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그래서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