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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조사팀장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한 해 농사가 잘 이뤄지기를 기원하며 내거는 기치로 많이 쓰였다. 지금은 사전 속에서나 존재하는 말처럼 됐지만,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게 ‘식량의 무기화’다. 시대가 바뀌어도 농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6월 일가(一家)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김한중 전 연세대 총장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현대적 농산물 재배와 상품화로 사회에 기여한 농업인을 발굴해 테드(TED)에 버금가는 강연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라며 농부의 역할을 강조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요즘 농부의 탈을 쓴 가짜 농사꾼이 판을 치고 있다. 공직자 중에도 많다. 현 정부 고위공직자 10명 가운데 4명꼴로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김현미 국토교통부·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박능후 보건복지부·이재갑 고용노동부·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등도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로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지난해 기준 3명 중 1명이 농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헌법 제121조에는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명시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농지 소유를 ‘솔선수범’하고 있다. 퇴임 후 머물 사저 부지로 매입한 경남 양산시 땅에 농지가 포함돼 있어 농지법 위반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향후 ‘대지’로 형질 변경할 계획이라고 밝혀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의 처남 김모 씨도 농지법 위반 혐의로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앞서 김 씨는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사들인 경기 성남시 고등동 소재 그린벨트 토지 7011㎡(2120평)가 2011년 그린벨트가 해제되면서 46억 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공직에 종사하며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농사를 짓겠다며 헐값으로 농지를 산 뒤 용도를 변경해 땅값을 올리는 것은 투기다. 은퇴 후 낙향이나 전원생활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더라도 관련 법규는 지켜야 한다. 공직자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국내 농가 48%가 농지가 없거나, 0.5ha 이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농부의 피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라도 가짜 농사꾼들을 걸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