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전체
사설
시평
시론
포럼
오후여담
[뉴스와 시각]

민주주의 흔드는 음모론

김석 기자 | 2020-10-16 11:47

김석 워싱턴 특파원

차기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는 대선을 3주 앞둔 미국 사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뿌리는 음모론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위기에 빠지자 선거를 뒤집기 위해 각종 음모론을 퍼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정책 실패나 지연 책임을 민주당과 연계된 딥스테이트(정부 내 기득권 세력) 탓이라는 음모론을 펼쳐왔는데 최근에는 식품의약국(FDA) 내 딥스테이트가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방해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내놓았다. 또 자신과 가족들은 이번 대선에 우편 투표를 통해 표를 던졌으면서 우편 투표가 사기라는 음모론도 퍼뜨리고 있다. 이런 음모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인 극우파를 자극해 시위나 혼란 등이 벌어지게 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 투표 부정선거 음모론을 근거로 대선 결과 불복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대선 이후 자칫 양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벌어질 우려도 나온다. 뉴욕과 볼티모어 등 미국 주요 도시 경찰들은 대선 이후 폭동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시위 진압 훈련에 들어간 상태다.

음모론은 칼 포퍼가 저서 ‘추측과 논박’에서 지적했듯이 모든 사회적 현상을 권력 집단의 음모로 바라보는 현상이다. 음모론은 포퍼가 원시적 형태로 예를 든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호메로스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평원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올림포스 산에 사는 신들이 꾸미는 다양한 음모의 결과로 그려진다. 포퍼는 신의 시대가 끝나면서 신의 자리를 여러 강력한 집단과 개인들이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아폴로 11호 달 착륙이나 9·11테러를 둘러싸고 퍼진 음모론이 전형적이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가지 않았는데 미 항공우주국(나사)이 영상 등을 조작했고, 9·11테러는 정부 지지율 반등과 군수 산업 이익을 위해 미국 정부가 조작 또는 묵인했다는 설이다. 이런 음모론은 사회적으로 회자되며 불안을 야기시키기는 하지만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릴 만한 힘은 갖지 못한다. 음모론을 퍼뜨리는 세력이 기본적으로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음모론을 위정자들이 퍼뜨릴 때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일 정부 부처나 정보기관의 보고를 받으며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위정자가 음모론을 펼치면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음모론은 국민이 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이 음지에 있는 집단이 결정한 일이라는, 사실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음모론을 퍼뜨리면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 영향으로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QAnon)이 공화당 중심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큐어넌과 관련된 인물 중 24명이 11월 선거에 나서는데 이 중 22명이 공화당(2명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들에게는 조 바이든 후보의 대선 승리는 딥스테이트가 꾸민 모략이고, 우편 투표 조작의 결과에 불과하다. 미국 대선이 끝난 뒤에 내전에 준하는 사회적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현 상황에 신경이 쓰이는 건, 정치권은 물론 세금으로 운용되는 방송사 진행자까지 앞다퉈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는 한국의 내일이 미국의 오늘과 같아질까 두려워서이다.

많이 본 기사 Top5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