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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정치 양극화와 뉴스 소비의 정파성

기사입력 | 2020-10-15 11:35

한규섭 서울대 교수·언론학

정치 진영에 따라 평가도 갈려
44%가 같은 관점의 보도 선호
다수의 신뢰 받는 매체 불가능

지상파의 진보적 정파성 독특
정권 따라 변신해 신뢰층 제한
유튜브는 野 성향 선명성 강화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서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조사 대상에 포함된 2016년부터 5년 연속 최하위를 차지했다. 제도적 언론 자유가 보장된 지 30년이 넘지만, 언론은 오히려 ‘파수견’이 아닌 감시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 역설적 상황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치적 양극단화다. 진영에 따라 모든 언론 매체에 대한 평가가 갈리다 보니 다수의 유권자로부터 신뢰받는 매체가 존재할 수 없다.

지난 5월 실시된 동아시아연구원의 ‘한국인의 정체성’ 조사는 모두 34개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를 묻는 설문을 포함했다. 지상파 3사, 종편 4사, 뉴스 전문 채널 2사 등의 방송사, 그리고 10대 전국 종합 일간지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례적으로 시사 문제를 주로 다루는 주요 유튜브 채널 상위 15개(구독자 수 기준)도 포함했다.

필자는 각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 여부를 5점 척도로 측정한 설문에 ‘다분 문항 반응 모형(Polytomous Item Response Model)’을 적용해 같은 사람들이 더 신뢰하거나 덜 신뢰한다고 답한 언론사들끼리 유사한 점수가 주어지도록 모형화했다. 이를 통해 언론사와 응답자들마다 점수가 부여됨으로써 동일 선상에서 비교가 가능해졌다.

우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대 정당의 평균적 지지자 사이에 존재하는 언론사는 전체 34개 매체 가운데서 9개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매체에 대한 평가가 양극단화돼 있고 서로 신뢰층이 겹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지상파 매체와 뉴스 전문 채널이 평균적인 민주당 지지자보다 왼쪽에 위치했다. 유튜브 채널 한 곳을 제외하면 모 지상파 매체가 전체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뢰층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경향에 비춰 보면 강한 정파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매체들이 가장 진보적인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는 점이 특이했다.

신문 매체 중 가장 진보적인 신뢰층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모 신문사는 모든 공중파와 뉴스 전문 채널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신뢰층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대표적인 진보 성향의 신문도 20개 기성 매체 가운데 왼쪽에서 8번째에 해당해 비교적 온건한 신뢰층을 가졌다.

그 반면에, 15개의 유튜브 매체 가운데 12개가 평균적인 국민의힘 지지자보다 오른쪽에 위치해 전반적으로 보수층 유권자들의 신뢰가 강했다. 한마디로 지상파는 진보, 유튜브는 보수 진영을 대변하는 매체로 인식되는 양상을 보여준 것이다.

또, 진보와 보수 모두 양극단에는 유튜브 매체가 위치했다. 대다수의 유튜브 채널은 주로 보수층의 신뢰를 받았으나,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은 한 유튜브 채널에 대한 신뢰가 강했다. 이념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위치한 두 유튜브 매체의 구독자 수도 상당했다. 이념적 ‘선명성’이 구독자 확보에 유리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은 정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진보든 보수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이 교체되고 인사 대이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 방증이다.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을 신뢰하는 유권자층이 뒤바뀌고 특정 진영의 정파성이 강한 유권자들로 신뢰층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반면, 이런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셜 미디어는 야권 지지층에 대안(代案) 미디어로 인식된다. 보수 정권 시절의 트위터가 그랬고, 현 정부 들어 유튜브가 그렇다.

우리나라 유권자의 성향도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2020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에서 한국의 응답자 가운데 44%가 자신과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언론사의 뉴스’를 선호했다. 40개국 중에서 터키(55%), 멕시코(48%), 필리핀(46%) 다음으로 높았다. 전체 평균은 28%였다. 영국·독일·일본 등은 70% 이상이 ‘특별한 관점이 없는 뉴스’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4%에 불과했다.

보수와 진보로 정치적 양극단화가 극에 달한 우리 사회에서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는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이 돼 버렸다. 이런 언론 지형이 정치적 양극단화로 강화되는 견고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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