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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수직으로 내리꽂는 폭포서… 벼락치듯 만난 깨달음

박경일 기자 | 2020-10-15 10:09

전북 부안의 선계폭포. 비 온 뒤에만 쏟아지는 폭포다. 비가 넉넉히 내리고 나면 이틀쯤, 큰비가 오면 사나흘이 넘게 60m 높이의 폭포가 암봉에 내걸린다. 선계폭포 바위 위쪽에 변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는 선계사 절터가 있는데, 절터의 분지에 고인 빗물이 쏟아져 폭포의 물줄기를 이룬다.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부안 채석강 입구에 세워진 매창 동상. 매창은 조선 중기 부안의 기생이자 문인으로, 허균과의 드라마틱한 로맨스로 널리 알려졌다. 전북 부안의 선계폭포. 비 온 뒤에만 쏟아지는 폭포다. 비가 넉넉히 내리고 나면 이틀쯤, 큰비가 오면 사나흘이 넘게 60m 높이의 폭포가 암봉에 내걸린다. 선계폭포 바위 위쪽에 변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는 선계사 절터가 있는데, 절터의 분지에 고인 빗물이 쏟아져 폭포의 물줄기를 이룬다.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부안 채석강 입구에 세워진 매창 동상. 매창은 조선 중기 부안의 기생이자 문인으로, 허균과의 드라마틱한 로맨스로 널리 알려졌다.


■ 미답의 절경 ‘변산’

낙조 명소 솔섬… 울금바위의 동굴… 발길마다 ‘숨은 보물 찾기’

‘첩첩산중’ 내변산, 채석강 접한 외변산보다 더 아름다워
남여치~월명암~내소사 ‘변산8경’ 중 3경 만나

직소천공원 건너편 깊숙이 자리잡은 50m 벼락폭포
비 오는 날에만 모습 드러내는 귀한 절경

대불사 인근 세로로 길게 찢어진 굴바위도 가볼만
신라 고승 진표 수행하던 의상봉 ‘부사의방’은 출입통제


전국 스물두 곳 국립공원을 생애주기에 비유해본다면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청년’입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은 이미 오래전에 ‘모든 발견이 다 끝난’ 원숙한 노년이고, 근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백산이나 무등산도 장년쯤으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청년을 연상하는 건 아직 발견이 다 되지 않은 미답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발을 디딘 곳보다 아직 딛지 않은 곳이 더 많습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32년이 됐지만, ‘확장의 가능성’이 무궁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찾아 나선, 아직 모르는 내변산 속살의 이야기입니다.


# 산의 무리를 부르는 이름, 변산

변산은 하나의 산의 이름이기도 하고 일대 산의 무리, 즉 ‘산군(山群)’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최고봉인 의상봉(508m)을, 혹은 관음봉(424m)을 변산이라 부르는 이도 있지만, 의상봉을 필두로 10여 개의 산을 합쳐 ‘변산’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이 독립된 산이 아니라 산군을 일컫는 이름인 것과 마찬가지다. 변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산군을 부르는 이름이라는 건, 그만큼 ‘큰 산’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삼한시대 ‘변한(卞韓)’의 이름도 여기 변산에서 나왔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그때만 해도 변산은 변(邊)과 변(卞)을 혼용했다. 변(卞) 자는 ‘맨손으로 치다’는 의미. 독립해 솟은 변산의 거대한 무리가 마치 호남정맥이 맨손으로 툭 쳐 던져놓은 듯하다 해서 그렇게 불렀다.

여러 봉우리가 모여 독립된 산군을 이루고 있는 변산을, 조선 시대에는 ‘영주산’ 또는 ‘봉래산’이라고도 불렀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 속 세 개의 ‘신산(神山)’, 그러니까 ‘신선이 깃든 산’은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다. 이 중 두 개의 이름을 변산에다 쓴 셈이다.

변산의 풍경을 보면 그 이유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먹으로 찍어 그린 수묵화 속 풍경 같은 기이한 산세를 보며 신선의 출현을 떠올린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변산을 신산에 빗대 부른 게 도가라면, 불교에서는 변산을 ‘능가산’이라고 했다. 변산 아래 내소사 일주문에 능가산의 이름이 걸려있다. ‘능가산 내소사’. 불교에서 능가산은 석가모니가 대혜보살에게 설법을 베풀었다는 산이다. 도교에서도, 불교에서도 변산은 특별 대접을 받았다.


# 다 보여주지 못하는 변산 탐방코스

변산은 최고봉인 의상봉을 필두로 400m를 오르내리는 세봉, 관음봉, 신선봉, 쌍선봉 등의 봉우리들이 성곽처럼 둘러쳐져 있다. 산봉우리들이 늘어선 안쪽의 첩첩산중을 내변산이라 하고, 탁 트인 바다에 면한 바깥쪽을 외변산이라고 부른다. 변산이라면 대개 채석강과 적벽강이 있는 바닷가 쪽 외변산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첩첩하고 내밀한 아름다움은 단언컨대 내변산에 있다.

내변산은 산의 몸집도 크고 경관도 다채로운데 탐방코스는 지극히 단순하다. 변산이 가진 매력을 다 보여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남여치에서 출발해 월명암을 넘어 내소사로 건너가는 길이 내변산의 대표 탐방코스. 탐방객 대부분이 이 길을 이용한다. 이 코스를 택하면 관음봉을 오를 수도, 그냥 지나쳐 갈 수도 있는데 관음봉 정상까지 딛고 내려오면 5시간 남짓의 제법 꽉 찬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아침 안개에 휩싸인 월명암, 30m의 물줄기가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직소폭포, 은은하게 울리는 내소사의 저녁 종소리…. ‘변산 8경’ 중 3가지 경치를 만날 수 있으니 나무랄 데 없는 코스지만, 문제는 산행코스가 단순하다는 점이다.

그나마 2011년 쇠뿔바위 탐방코스 개방으로 ‘다른 탐방로’가 생겼다. 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출입금지 지역이 됐던 쇠뿔바위 코스는 내변산의 가장 깊은 곳을 지난다. ‘쇠뿔’이란 이름은 봉우리의 암봉 두 개가 소의 뿔처럼 솟아있어 붙여진 이름. 산 아래서 보면 뭉툭한 두 뿔의 형상이 완연하다. 쇠뿔바위 코스는 유동마을 어수대에서 출발해 비룡상천봉과 고래등바위를 지나 쇠뿔바위에 올랐다가 청림마을로 내려오는 3시간 정도의 코스. 거대한 고래등바위를 딛고 올라서 보는 장쾌한 전망과 군 시설이 들어서 오르지 못하는 변산 최고봉 의상봉을 마주 보는 서쇠뿔바위봉 전망대에서의 경관도 압도적이다.


# 산중호수가 빚어내는 풍경

변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내변산은 아직도 다 알려지지 않았다. 기암의 바위와 협곡 사이로 미처 알려지지 않은 미답의 절경이 내변산의 곳곳에 있다. 수묵화에나 나올 법한,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만큼 근사한 경관들이다. 이런 경관이 왜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을까.

변산의 알려지지 않은 명소 중의 하나가 부안호 일대다. 부안호는 내변산의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을 담은 호수다. 부안과 고창의 먹는 물을 대기 위해 1996년에 높이 50m, 길이 282m의 댐을 세웠고, 이 댐이 물을 막아 거대한 산중 호수가 생겼다. 오염원이 없는 국립공원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인 데다 식수원으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물이 깨끗한 건 당연한 일. 게다가 여름 끝에 큰비를 몰고 온 태풍의 내습으로 부안호는 지금 둑을 넘쳐흐를 정도로 만수위다. 부안댐이 만수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새만금의 바다와 가까워 폭우로 방류량을 늘린다 해도 곧 바다로 흘러들어가니 수해의 염려가 없어서다.

이름난 명승이 한두 곳이 아닌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부안호는 명소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거나 비가 내린 이튿날이라면 다른 목적지를 지우더라도 꼭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아는 이가 적어 인적이 뜸하지만, 그렇다고 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거리 두기’ 원칙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비 오는 날이면 폭포의 물줄기가 여기저기 걸리는 부안호 일대는, 변산의 다른 명소를 족히 능가하는 경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무협지 속 풍경일까… 벼락폭포

부안호 가는 길은 외길이다. 내비게이터에 ‘부안호’를 입력하면 새만금방조제 쪽에서 직소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 길에 올랐다면 따로 귀띔해주지 않아도 물 건너편에 마치 금강산이나 설악산 비경의 한 자락을 떼어다 놓은 듯한 풍경 앞에서 저절로 차를 멈추게 된다.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진 기이한 경관이 발길을 붙잡는다. 그 경관이 잘 보이는 자리에 잘 다듬어진 아늑한 공원이 있다. 이곳이 부안댐 아래 직소천 공원이다. 고즈넉한 벤치나 정자에 앉아 수묵화를 감상하듯 풍경을 보며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직소천 공원에서 직소천 물 건너편으로 보이는 기암 안쪽의 깊숙한 곳에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폭포가 숨겨져 있다. 비 오는 날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벼락폭포’다. 비가 내리면 폭포에 높이 50m는 족히 되는 큰 물줄기가 협곡에 걸리는데, 큰비가 내린 뒤에는 사나흘까지 폭포 물줄기가 이어진다. 직소천 공원에서는 아쉽게도 멀리 폭포의 상단 부분만 보인다. 바위를 타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위용이 장쾌하다. 변산에는 여기 벼락폭포 말고도 비 올 때만 쏟아지는 아찔한 위용의 폭포가 두 개 더 있다. 다른 폭포 얘기는 잠깐 미뤄두고 우선 부안호 얘기부터.


# 부안호를 다 보는 자리… 두호봉

깊은 산중의 호수인 부안호는 기암괴석이 물과 어우러져 독특한 절경을 이룬다. 부안호는 수평의 시선보다는 수직의 시선으로 내려다보아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직소천 공원에서 부안댐 쪽으로 1㎞쯤 더 들어가면 부안댐 물 문화관이다. 문화관 앞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 댐까지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댐에서 보는 부안호는 수평이다. 여기서는 부안호의 경관이 일부만 눈에 들어온다. 부안호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다 보는 기막힌 자리는, 부안호의 중심에 솟은 봉우리를 겨눠 호반산행을 해야 한다. 부안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봉우리가 두호봉이다.

해발 300m 남짓의 두호봉에는 정식 탐방로가 없다. 두호봉뿐만 아니라 부안호를 둘러싸고 있는 군관봉과 기산봉에도 탐방로는 없다. 짙푸른 코발트색 호수와 흰 이마를 드러낸 수직 암릉이 어우러지는 빼어난 절경을 품고 있는데도 그렇다. 변산 외곽에 그리 높지 않은 산의 능선이 이어져 있어 걷기 편하니 탐방로만 내면 제법 인기가 있을 듯한데 말이다. 개방과 활용보다는 늘 통제와 제한을 앞세워서 그럴까, 아니면 국립공원 외곽 지역이라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럴까. 훼손이 우려되는 구간도, 위험한 구간이 아닌데도 부안호 일대는 이른바 ‘비지정 탐방로’로 묶여 있다. 두호봉 아래 묘를 쓴 성묘객이나 간혹 지도를 펴들고 알음알음 찾아드는 개별 등산객들만 발을 들일 뿐이다. 두호봉 산행 들머리는 내변산을 가로지르는 736번 지방도로를 타고 남여치에서 중계터널을 지나서 원광선원 쪽으로 가다 왼쪽으로 상수원보호구역을 알리는 흰색 199번 표지석을 찾으면 된다.


# 비 오면 걸리는 거대한 폭포

이제 비가 오면 걸리는 폭포 얘기를 해보자. 변산의 폭포는 벼락폭포 외에도 수락폭포와 선계폭포가 있다. 하나같이 높고 큰 거폭(巨瀑)이다. 변산에서 가장 이름난 폭포는 단연 직소폭포지만, 폭포의 위용이나 운치를 순위로 잰다면 직소폭포는 이 3개 폭포에 밀려서 겨우 말석이나 차지할 수 있을까 싶다. ‘비 내린 뒤’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벼락폭포는 부안댐 아래 직소천에 있고, 수락폭포는 아름답기로 이름난 솔섬 낙조를 마주 보는 자리(전북학생해양수련원 해변)에서 뒤로 돌아서 멀리 마주 보이는 산의 구분 능선쯤에 있다. 선계폭포는 저수지 우동제 뒤편의 병풍 같은 바위틈에서 쏟아진다. 비가 오든 안 오든 풍부한 수량을 가진 직소폭포야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세 개의 폭포도 모두 산길을 밟아 찾아갈 수 있다. 가장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은 선계폭포. 우동저수지 옆에다 차를 대고 불과 200m만 걸으면 까마득한 폭포의 물줄기 아래 닿는다. 선계폭포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이곳 절벽 위 암자에서 무예를 수련하다 뛰어내리면서 칼을 휘둘렀는데 그때 절벽 바위가 길게 잘렸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벼락폭포와 수락폭포에도 길이 나 있긴 하지만 비지정 탐방로인 데다 코스가 길고 밧줄 구간이 나오는 등 길이 험한 편이어서 구태여 발을 들이지 않는 편이 좋겠다. 이 두 폭포 탐방을 만류하는 건 접근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폭포가 크고 높아서 멀찌감치서 보는 것만으로도 위용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벼랑 끝에서의 용맹정진

기암과 천애절벽으로 이뤄진 변산에는 기이한 자연동굴이 곳곳에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개암사 뒤편의 울금바위에 있는 굴이다. 원효가 수도 정진했다는 이 동굴은, 수직의 직벽에 바위를 파내듯 뚫려있는데 크고 작은 두 개의 동굴이 방의 형상이라 ‘원효의 방’이라고도 부른다.

기이한 형태의 원효의 방도 범상치 않지만, 변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공간은 단연 의상봉 병풍바위 벼랑에 있는 ‘부사의방(不思議房)’이다.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험한 수행처로 꼽히는 곳. 부사의방은 동굴이라기보다는 바위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좁은 공간인데, 한두 발만 앞으로 내디디면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자리다. ‘부사의(不思議)’는 ‘세간의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다’는 뜻. 여기는 1400여 년 전 진표율사의 수행처다. 하루 쌀 한 줌으로 버티는 3년간의 용맹정진. 그러나 3년간의 치열한 수행에도 수기(受記·부처로부터 내생에 부처가 되리라고 하는 예언을 받음)를 받지 못하자, 진표는 낙심한 나머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그를 받아 다시 벼랑 위로 올려놓았다. 그때부터 진표는 제 몸에 시련을 가하며 참회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의 수행법을 이어갔다. 제 몸을 돌로 찧으며 기도하던 그는 온몸이 터져 피투성이가 됐다. 이때 지장보살이 나타나 그의 상처를 어루만졌고, 진표는 비로소 계(戒)를 얻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얘기다. 부사의방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공간이자, 나아가 죽음의 문턱에서 법을 구했던 치열한 구도의 삶을 보여주는 자리다.

아쉽게도 부사의방은 출입통제 지역이라 가보는 건 불가능하다. 비지정 탐방로라 길을 찾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암봉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해 수직의 벼랑을 내려가야 하는 코스가 워낙 위험해서 그렇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여기만큼은 그냥 마음에 담아두기를….


# 굴바위에서 ‘페트라’를 생각하다

선계폭포에 갔다면, 아니 변산에 갔다면 꼭 가보라고 추천할 곳이 ‘굴바위’다. 부사의방은 세 시간쯤 걸은 뒤 밧줄을 타고 절벽을 내려가야 닿고, 원효굴도 가파른 산길을 40분쯤 숨 헐떡이며 올라야 만날 수 있다. 한데 굴바위는 고즈넉한 절집 마당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따라 고작 150m 정도만 오르면 도착한다.

거대한 암봉의 밑동에서 세로로 찢어진 형태의 굴바위는 다른 변산의 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동굴이라기보다는 ‘터널’에 더 가깝다. 깊이는 그리 깊지 않지만 동굴 안쪽에는 제법 넓은 공간이 있다. 동굴 안쪽은 점점 좁아지며 캄캄한 어둠에 잠겨있어 신비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동굴 안에 서면 세로로 긴 동굴의 입구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과장과 상상력을 좀 보탠다면 여기서 요르단의 페트라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굴바위는 선계폭포가 있는 우동저수지 근처의 작은 절집 대불사에서 올라간다. 대불사 불전 앞에 서면 우뚝 솟은 거대한 암봉이 보이는데, 굴바위는 그 암봉 뿌리쯤에 있다. 절집 마당 끝에 샘이 있고, 그쪽에 변산 용각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등산로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물길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 이어지는 길 끝에 굴바위가 있다. 쉬운 접근과 기이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굴바위를 아는 이들은 적다. 낯선 공간이 일깨우는 새로운 감각. 코로나19의 시대에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여행의 느낌이다.

변산(부안)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전북 부안의 낙조 명소인 솔섬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전북학생해양수련원에서 이런 경관을 볼 수 있다. 솔섬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180도 뒤로 돌아 멀리 투봉바위 능선을 올려다보면 수락폭포가 보인다. 수락폭포도 선계폭포와 마찬가지로 비가 와야 만들어지는 폭포다. 내변산 한복판으로 이어지는 736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만난 부안호 습지. 지난 여름 장마의 기록적인 폭우로 습지의 나무가 허리춤까지 물에 잠겨 독특한 정취를 빚어내고 있다. 굴바위로 가는 들머리인 절집 대불사. 사진 오른쪽 수직의 바위 아래에 굴바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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