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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의사·벤처·교수로 성공한 安
정치 실패·좌절에도 살아남아
서울 선거 앞둔 野 재평가 시도

출마·불출마 정치적인 장단점
안, 먼저 결단하고 野 이끌어야
정치적 成長 스스로 증명 필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정치인으로서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돈이 많다. 의사·컴퓨터 프로그래머·벤처기업인·교수로서 성공했다는 증표이자, 남에게 손 벌리지 않도록 해주는 물적 토대다. 둘째, 도덕적이다. 정치인 9년간 부정부패, 막말 등으로 지탄받은 적이 거의 없다. 셋째, 사악(邪惡)하지 않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나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고도 아니라고 우기는 뻔뻔한 사람은 아니다. 정권을 잡는다면, 노인 은퇴금이나 서민 종잣돈을 갈취하는 펀드 사기 수사를 막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평등·공정·정의라는 측면에서 안 대표는 문재인 정권보다는 우위에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간 안철수와 달리 정치인 안철수는 실패가 더 많았다. 2011년 혜성같이 정치판에 등장해 ‘안철수 현상’까지 만들었지만, 서울시장·대통령 후보 양보, 대통령·서울시장 낙선 등 좌절의 역사를 써왔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제3당으로 이끈 것은 반짝 성공으로 그쳤다. 그런 과정에서 안 대표는 결단력이 없고, 주변 사람을 잘 챙기지 못하며, TV토론 등 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성장(成長)하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정략, 선전·선동, 편 먹기, 권력욕, 치열함에서는 문 정권 사람들에게 한참 뒤처져 있다.

한국 정치에서 최고의 경쟁력은 살아남는 것인데, 어쨌든 안 대표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에서도 후보로 거론된다. 야권에서는 “안철수가 왜 이렇게 무시당했던 거야?”라며 재평가하는 분위기도 있다. 지난주 안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물었는데 “생각이 없다”면서 “문 정권의 재집권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대선을 기준으로 정치 일정을 짜고 있는 것 같다.

안 대표를 만난 직후 거리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마주쳤다. 그는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된다. 김 전 대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달고 “신인이 나오기 어려운 언택트 선거여서 서울시장에 안철수, 부산시장에 나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에 김무성을 공천하면 알아서 이길 테니, 서울 선거 지원에만 전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며칠 뒤 김 전 대표가 주도하는 ‘마포 포럼’에서 김 위원장이 강연을 했는데, 행사 뒤 두 사람은 내년 보궐선거에서 현역 의원 공천은 배제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두 사람 간의 공감대가 있을 수도 있다.

안 대표가 내년 서울시장에 출마하면, 후년 대선 후보 구도까지 영향을 준다. 안 대표 출마에는 장단점이 모두 있지만, 사전에 몇 가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첫째, 불출마를 뒤집는 명분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야권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안 대표뿐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라도 있어야 한다. 둘째, 1년짜리 시장 후보인지,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다시 출마하는 5년짜리 후보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1년 서울시장 하고, 곧바로 대통령 선거에 나간다고 하면 다수 국민은 지나친 욕심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박영선·우상호·박주민 후보 등은 5년짜리 공약을 들고나올 것이다. 당선되더라도 곧바로 시험에 든다. 서울시 구청장 25명 가운데 24명이, 서울시의원 110명 가운데 102명이,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49명 가운데 4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누가 되든 야당 출신 서울시장은 1년 동안 예산안 통과도 어려운 ‘식물시장’이 될 것인데, 그걸 극복할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는 ‘김종인이 고민할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제1야당의 결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내년과 후년 선거는 단순히 야당을 넘어 이 나라의 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의 방향성을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안 대표가 대통령을 목표로 삼는 정치 리더라면 남의 결정에 따를 것이 아니라 어느 선거에 출마하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야권 전체가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결단력, 소통 능력을 갖춘 진정한 정치 지도자로 성장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10월 2일 추석날 아침, 한강공원을 산책했다. 반포대교 쪽에서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안 대표였다. 그는 마포대교 쪽으로 계속 뛰어갔다. 에너지는 충분한 것 같다. 그런데 적시(適時)에 적절한 결정을 내릴 만큼 정치적으로 성장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