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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대중 관여에서 反中 선회 EU
중국발 코로나와 홍콩 사태 탓
中공산당 체제 우려도 전면화

외골수 친중 심해지는 文정부
시대착오적인 安美經中 접고
동맹 기반해 경제·안보 지켜야

국제사회에서 요즘 중국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중·유럽연합(EU) 화상 정상회담은 신랄한 말싸움장이 됐고 중국 외교부장의 유럽 방문 때엔 반중시위대가 따라붙었다. 지난 14일 중·EU 회담 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열린 자세로 나눴다”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우리에게 인권 설교를 하는 대신 당신들 문제나 잘 해결하라”고 했다. 블룸버그와 신화통신이 전한 대화의 한 토막인데 정상 대화 자리에서 이견과 충돌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U는 미·중 대립 상황에서도 대중 관여정책을 견지해 미국과의 관계 악화 요인이 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 등을 겪으며 확 달라졌다. 그 결과 양측은 안 하느니만 못한 최악의 회담을 하게 된 것이다.

유럽의 반중 기류는 이달 초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5개국 방문 때 확연해졌다. 시 주석이 독일 방문 계획을 접고 화상 회담으로 대체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시 주석은 물론이고 왕 부장을 환영하는 나라는 선진국 중 어디에도 없다. 미국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중국이 코로나 발발 후 보여온 전체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 때문에 나라다운 나라는 다 돌아선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 8일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 우한(武漢)발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확진자가 3100만 명, 사망자도 100만 명에 육박하는데 중국의 체제 우월감만 과시했다. 중국의 코로나 조기 종식이 철저한 봉쇄 덕분이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다. 베이징(北京)에서 코로나 사태를 겪은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 대사가 CNN 인터뷰에서 “우한에서 끝날 수 있었던 일이 중국 시스템 때문에 팬데믹이 됐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반중은 중국 공산당이 바뀌지 않는 한 중국발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뿌리를 두고 있어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나 홀로 중국 밀착에 열을 올린다. 홍콩 사태와 신장위구르 문제에 눈감고 화웨이 문제에 대해서도 입닫고 있다. 아시아판 나토 구상이나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대해선 검토하려는 움직임조차 없다. 대중 수출의존도와 대북 공조 필요성을 고려해 중국을 불편하게 할 언행은 하지 않겠다는 게 문 정부 입장인 듯하다. 이수혁 주미 대사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주장도 그런 논리의 연장이다.

미·중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코로나 사태로 디커플링 2.0으로 전면화하며 글로벌 공급망이 나뉘는 상황에서 안보와 경제는 분리할 수 없다.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약간 작지만, 대중 수출의존도는 32%로 우리의 26%보다 훨씬 높은 호주가 홍콩 사태를 비판하고 코로나 중국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그 때문이다. 법치를 존중하며 자유주의 진영과 연대하는 게 국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문 정부는 코로나 발원론에 대해선 언감생심이고, 중국에 문을 닫지 않았던 코로나 대응도 적절했다고 우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참 잘했다”고 했다. 문 정부 인사들의 이런 비정상성은 국제 정세 변화에 눈감은 채 중국이 세계 중심이라는 중화(中華)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한·중 동일시 인식은 결국 ‘중국은 뜨는 나라 미국은 지는 나라’인 만큼 중국 편에 서야 한다는 친중적 세계관의 반영이다. 중국 파워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란 주장은 유독 한국 좌파 진영에서 신념으로 공유된 것일 뿐 근거는 부족하다. 국제 정세분석가 조지 프리드먼은 저서 ‘100년 후’(2010)에서 “중국이 세계 패권국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지난 18일 최종현학술원 강연에서도 “어느 나라든 미국을 대체해 세계 패권을 잡는 일은 21세기에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10년 전 중국의 패권국 부상에 회의적이었던 것은 중국의 내부 한계 때문인데, 이번에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코로나 사태는 중국의 그런 체제 약점을 확인시켜줬다. 문 정부는 시대착오적 친중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코로나 이후 시대 동맹의 가치와 효과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국익이자 안보·경제를 함께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