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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말하는 ‘법에 의한 평등’은 기만…착한 동기·착한 말로 차별이 사라질까?

나윤석 기자 | 2020-09-23 10:19

신창섭 기자 신창섭 기자

- ‘진보는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 펴낸 김진석 교수

조국 등 진보도 자녀교육 올인
‘권리의 평등’ 외치며 현장 외면

차별 비판해왔던 여성주의자들
트랜스젠더에게 또다른 차별도

차별,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
해법 모색 위해 현실 직시해야


“2019년 ‘조국 사태’에서 드러났듯 평등이나 인권 같은 진보적 이념만으로는 뿌리 깊은 차별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기우뚱한 균형’ ‘우충좌돌’ 등을 통해 좌우 프레임을 뛰어넘는 중도의 가치를 제시한 김진석(62·사진) 인하대 철학과 교수가 ‘진보는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개마고원)를 펴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심층 분석한다. 최근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다. 나이,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그는 차별금지법에 찬성하지만, 법과 제도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는 선을 긋는다. 김 교수를 지난 18일 경기 의왕시에서 만났다.

그는 차별을 ‘나쁜 차별’과 ‘사회가 정당하다고 용인하는 차별’로 구분한다.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가 전자에 속한다. 이런 차별은 인권의 관점을 중시하는 차별금지법으로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 문제는 후자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넣는다고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한 ‘학력 차별’이 사라질까. 김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학력 차별처럼 각자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차별은 법으로 규제하기 힘든 상황이 됐어요. 차별금지법을 만든다고 사교육을 금지하는 건 불가능하죠. 대학 입시, 스펙 쌓기, 취업 경쟁에 부모나 조부모의 재산이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걸죠. ‘조국 사태’는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입니다. ‘기회의 균등과 공정’을 강조하고, ‘권리의 평등’을 말하는 진보의 전통적 주장은 오히려 교육현장의 실제 모습을 가리는 구호입니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차별은 점점 폭력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구별 짓기’를 위한 은밀한 기제로서의 작동을 넘어 ‘혐오 표현’ 등의 형태로 노골적인 공격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른바 ‘팩트 폭격’은 차별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행태입니다. ‘지잡대’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 거침없는 표현은 특정인을 향한 폭력인 동시에 시험 성적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사회의 폭력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김 교수는 사람들이 차별을 바라보는 이중적 감정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설명한다. ‘차별은 옳지 않은 것’이라는 명제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자신의 성적과 점수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중위권 대학 학생은 ‘서울·연세·고려대(SKY)’로 대변되는 초일류 대학생에게 느끼는 피해의식을 자신보다 낮은 순위의 학교 학생을 통해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여요. 학력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취업할 때는 ‘지방대생’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죠. 이런 양가적 태도를 쉽게 부정하거나 비난할 수 없는데, ‘진보’의 이름으로 ‘모든 차별이 나쁘다’고 간주하는 건 비현실적이죠.”

김 교수는 평등 이념에 의존해서는 해결하기 힘들 만큼 차별이 확대되는 또 다른 사례로 ‘트랜스젠더 갈등’을 설명했다. “올해 초 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숙명여대에 입학을 신청하자 여성주의자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일이 일어났죠. 여성에 대한 차별을 비판해온 이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여성성을 근거로 또 다른 차별을 만든 것이죠.”

김 교수는 이 같은 차별의 복잡한 양상을 살필 뿐 마법 같은 해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서문에 “그럴듯한 대안은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혀 놓고 있다. “그저 착한 동기를 갖고 착한 말을 하면 정의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순진한 기만’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균등과 공정에 대한 거대담론을 내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폭력적인 차별을 마주하는 일이라도 제대로 해야 해법에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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