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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빗나간 예술 영재교육

기사입력 | 2020-09-18 11:37

김대진 피아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영재는 99.9%가 선천적
영재교육은 바라봐주는 것

한 차원 높은 그들의 상상력이
더 넓고 깊어지게 다리 놔줘야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김연아
감수성·기술 통합적으로 연결돼


최근 들어 예술 영재교육에 관심이 대단하다. 클래식은 물론이고 국악·트로트·K-팝 등 각 분야에서 영재들이 무섭게 출현하고 있다. 영재교육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져서 다양한 책이 출판되기도 하고, 당연히 학부모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예술 영재교육에 대해서 필자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영재교육에 대해 한마디로 말한다면 ‘영재는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그냥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재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신에게 특별한 그릇을 부여받은 아이다. 또한, 영재라고 모두 행복한 것만은 아니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재능을 바라봐주는 섬세한 관심과 관찰이 필요하다.

전에 한 초등학생이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곡이 어떤 곡인가? 베토벤이 죽음을 앞두고 인생의 모든 고통을 뛰어넘어 최후를 관조하는 시선으로 쓴 곡이다. 그렇기에 더욱 슬프고도 아름다운 곡이다. 그런데 인생의 경험이 전무한 어린아이가 그 곡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정말 설명도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연주가 끝나고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떤 느낌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연주한 것인지 물었다. 나의 예상대로 그 아이는 “그냥 쳤는데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삶의 그늘을 겪어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곡을 그 아이는 그냥 본능적으로 알고 연주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자기도 자기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본능적으로 연주하는 것, 이런 아이가 바로 내가 정의하는 영재다. 무엇인가를 습득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표현하는데도 그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에게 영재교육을 하겠다고 베토벤의 음악은 어떤 것이라는 등의 정보를 심어주는 방식은 오히려 아이의 영재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영재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도 많은 곳에서 영재에 대한 연구가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재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기대에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영재교육이 오히려 그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차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교수 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영재를 지켜본 결과 영재는 99.9%가 선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연구나 프로젝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많은 부모와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다량의 정보를 제공하고 효율적인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를 보고 ‘영재가 탄생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동안 성과 위주의 교육을 하다 보니 200% 얻어낸 결과를 가지고 ‘혹시 영재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영재는 배운 적도 없고, 사전 정보도 없는데 막상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이해 못 하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과물을 만드는 아이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영재는 사실상 가르쳐서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교육 과정을 거치는 도중에 자기 자신도 몰랐던 영재성을 지니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만, 기본적으로 영재는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영재들은 보통의 아이들보다 한 차원 높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영재교육이란, 아이의 특정한 영재성이 다른 분야와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들의 상상력이 다른 분야의 예술과 융합돼서 더 넓고 깊게 발전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는 식이다. 만약 악기 영재인데 연주를 하는 수준과 본인의 정신 수준이 맞지 않으면 그 정신적인 측면을 채워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영재교육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를 꼽는다. 그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단순히 피겨스케이팅만 잘하는 게 아니다. 음악에 대한 감수성과 섬세한 리듬감, 유연함 및 안무 등의 기술은 물론 예술적인 면에서 그의 연기는 모두 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영재라면 미술이나 문학 등의 분야와 접목해서 융합교육을 시키는 게 더욱 폭넓고 깊이 있는 예술가를 키워 낼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영재는 성장할수록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많아지는데, 워낙 특별하고 상상력이 남다르므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가정과 학교에서 이들을 섬세하게 챙겨주고 돌봐줘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은 변화의 폭과 가능성이 무척 넓은 아이들이다. 즉, 순간순간 변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니 ‘내버려 두고’ 그저 바라보고 지켜봐 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훗날 성인이 돼서 확실한 가치관이 형성될 때까지 영재성을 잘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그 독창성이 소멸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영재는 가르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라봐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래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영재교육원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어머니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제목은 ‘선물, 그리고 과제’였는데, 도중에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말을 한 게 기억난다. “결국, 될 아이는 어떻게든 됩니다.” 그리고 모두의 마음을 뜨끔하게 하는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가 너무 앞서 나가서 아이를 교육시키면 결국 엄마처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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