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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회랑 |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마스크 의무화는 공공선인가
개인 자유 어디까지 보장되나
코로나가 오랜 쟁점 끌어올려

국가 강력하면 ‘독재’ 부르고
사회의 힘 지나치면 ‘무질서’
국가-시민 상호통제 작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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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은 정치철학의 오랜 쟁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감염을 막기 위한 이동 제한과 통행금지, 확진자 동선 추적,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은 국가의 권력 행사와 개인의 자유 사이에 균형점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질문을 던졌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의 신간 ‘좁은 회랑’(원제 The narrow corridor)은 이처럼 코로나 시대 인류가 맞닥뜨린, ‘국가와 자유’라는 가장 뜨거운 이슈를 다뤘다. 이 책이 지난해 코로나 창궐 이전에 쓰였다고 문제가 될 건 없다. 팬데믹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분명하게 자각했을 뿐, 이 질문은 이미 우리 앞에 던져져 있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인공지능(AI)에까지 이른 자동화, 금융부문의 과도한 팽창, 초거대 기업의 부상 등으로 인해 세계 각국은 이미 극심한 양극화와 끝 모를 진영 대결 등 많은 문제에 시달려 왔다. 이는 ‘국가’ 대 ‘개인’, ‘적극적 개입 요구’ 대 ‘자유 침해 우려’라는 가치 충돌로 이어졌다.

이 논쟁은 17세기 정치 철학자 토머스 홉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홉스는 국가의 기원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들의 계약에서 찾았다.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는 ‘욥기’에 나오는 바다 괴물에 비유할 정도로 국가는 두려운 존재지만, 홉스는 모두를 무서워하는 것보다는 리바이어던만 무서워하는 게 낫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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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홉스의 생각과 달리, 리바이어던은 때로는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한 개인들까지 잡아먹는 ‘진짜 괴물’로 출현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민주정과 공화정을 도입한 고대 그리스 아테네부터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 독재의 뿌리가 깊은 중국과 이슬람 세계, 정부 부재와 독재 사이를 오간 근·현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에 흔들리는 현재의 미국에 이르는 방대한 분석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이들에 따르면, 국가와 엘리트층이 지나치게 강력해지면 ‘독재적 리바이어던’이, 반대로 시민사회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부재(absent)의 리바이어던’이, 국가와 사회 모두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종이(paper) 리바이어던’이 나타났다. 셋 다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와 사회가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를 제어하는 게 이상적이다. 저자들은 이를 ‘레드 퀸 효과’라고 부른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레드 퀸이 주인공 앨리스와 함께 달린 데서 따온 말이다. 레드 퀸 효과가 발휘되게 하려면 “막강한 힘을 갖고 제멋대로 날뛰는 바다 괴물이 아니라 족쇄를 찬 국가”, 즉 ‘족쇄 찬 리바이어던’이 요구된다. 이는 “법을 집행하고, 폭력을 통제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역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잘 조직된 사회에 길들어져 제어가 가능한 국가”다.

저자들은 족쇄 찬 리바이어던을 설명하기 위해 국가(Y축)와 사회(X축)의 힘이 중첩된 그래프를 동원했다. 국가와 사회가 ‘함께 달리기’를 하면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지점은 그래프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뻗어 나가는 ‘좁은 회랑(복도)’의 형상을 한다. 국가의 역량은 극대화하고 개인의 자유는 번성하는 이 회랑에 족쇄 찬 리바이어던이 위치한다. 국가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 회랑에서 벗어나게 되면 나치 독일이나 중국과 같은 독재적 리바이어던이, 반대로 사회의 힘이 지나치면 무국가 상태와 같은 부재의 리바이어던이 나타난다.

이미지 크게보기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리바이어던의 파멸’. 토머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종식하기 위한 강력한 국가를 ‘욥기’에 나오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족쇄 찬 리바이어던이라고 무한정 신뢰할 수는 없다. 회랑은 문과 달리 연속되는 과정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리바이어던의 성격이 달라지고, 회랑에서 이탈할 우려가 있다. 더욱이 “리바이어던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독재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족쇄 찬 리바이어던으로 분류돼 온 국가들이 코로나 시대에는 독재적 리바이어던 뺨치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극도로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 게 그 증거다.

저자들은 한 세기 전 세계 대공황이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정반대 길을 간 독일과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국가가 어떠한 타협도 없이 시민사회를 제압한 독일은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전형이 돼 나치의 야만으로 향했다. 반면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 농민단체 등이 ‘살트셰바덴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국가와 사회가 ‘함께 달리기’를 실천한 스웨덴은 복지국가의 길을 열어젖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코로나 극복’을 공언하며 자화자찬에 빠진 것은 저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 코로나를 넘어섰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시민사회를 배제한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성과가 지속될 거란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14세기 아랍의 위대한 학자 이븐할둔의 표현을 빌려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운명은 “누에가 실을 내고 결국 자신이 지은 고치 안에서 최후를 맞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중국의 독재체제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혼란스러운 대응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이 ‘중국의 독재적 효율성’과 ‘서방의 민주적 무능력’을 넘어설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도 양극화와 제로섬게임으로 치닫는 진영 대결,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는 기관들, 경제위기, 포퓰리즘의 득세 등 저자들이 “가시화된 위험”이라고 표현한 위기 양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가 지나치게 양극화하면 타협과 연합은 불가능하다” “더 늦기 전에 공통의 기반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문을 남 얘기로 넘길 수 없는 이유다. 896쪽, 3만6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