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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장성택 ‘효수’와 봉건왕조 북한

신보영 기자 | 2020-09-16 11:40

신보영 국제부장

시신 전시된 北 장성택의 최후
金 지시 따른 속전속결 처리는
‘北=근대 왕조국가’ 새삼 확인

淸 옹정제 만기친람 정치 단명
3대 세습 金도 北 정권 갈림길
연구 출발점은 정권 성격 규정


2013년 12월 국가전복 음모 혐의로 전격 체포돼 처형된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시신은 당 간부들이 자주 이용하는 계단에 전시됐다고 한다. 장성택의 ‘잘린 머리는 시신의 가슴 위에 놓인’ 상태였다고 15일 발간된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에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과 2019년 2차례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우드워드에게 전한 것이다.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고모부였는데, 당시 29세였던 김정은은 가차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례를 통해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른 데 있다. 바로 북한 체제의 작동 방식이 지극히도 전근대적 봉건왕조와 유사하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는 점이다. 장 부위원장의 시신 전시는 조선 시대에나 등장했던 ‘효수(梟首)’다. 장성택을 비롯해 북한 고위 간부들이 적절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약식재판을 통해 처벌받고 있으며, ‘자의적 양형’의 상징인 인민재판이 여전히 북한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대북단체뿐 아니라 유엔도 지적한 정치범 수용소와 만연한 인권유린, 여성 성폭력 등 인권 문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 체제에서는 봉건왕조의 가장 큰 특징인 세습도 극명하다. 북한 국명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지만, 3대 세습은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근대 국가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 중국·러시아에서도 세습은 없었다. 왕조 국가에서는 한배에서 태어났지만, 권력을 쥔 천자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지위가 급격하게 갈리는 게 불문율로,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위임통치’설에 대해 전문가들이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한 북한인권단체 인사가 전해준, 김일성 주석의 아들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이었던 ‘곁가지’ 김평일이 평양에 나타나면 “주변에 있던 고위 간부들이 모두 피했다”는 이야기는 그저 웃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 정권의 본질을 보여주는 일화이기 때문이다.

‘북한 = 봉건왕조’론을 다시 꺼내 든 것은 북한 정권의 성격을 제대로 규정해야만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북한 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하면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내재적 접근법도 필요하지만, 정권의 성격 규정이 제대로 돼야만 이 역시 설명력이 커진다. 김 위원장의 리더십 연구도 정권의 성격과 구조를 함께 살펴봐야 완결될 수 있다. 특히 집권 8년째인 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은 올 들어 분명 변화가 있다. 경제 실패를 자인하는가 하면, 대남·대미 외교를 일부 김여정에게 떼어준 듯한 징후도 감지된다. 북핵 협상과 한반도 미래 준비를 위해 향후 김 위원장의 통치 방식을 예측하는 것은 중요한 외교·안보적 사안이다.

이를 위해 참조할 만한 인물이 바로 중국 청나라 황제 옹정제다. 청의 베이징(北京)입성 후 3대 황제인 옹정제는 정사(政事)가 끝난 뒤에도 매일 지방관리들이 황제에게 직보하는 ‘주접(奏摺)’을 훑어보고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관리들과 주고받은 주접을 묶은 책도 112책에 달했다. 하지만 옹정제의 ‘만기친람’식 정치는 관료에게 일정 부분 정치를 맡겼던 아버지인 강희제(재임 60년), 아들 건륭제(재임 60년)보다 훨씬 짧은 12년 만에 막을 내렸다. 체력적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통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중국사 대가였던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는 저서 ‘옹정제’에서 “옹정제가 아니었으면 이런 정치는 불가능했으며, 옹정제의 독재정치는 그야말로 정점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김 위원장도 체력적 부담을 느꼈을 수 있고, 현행 통치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봉건왕조식 독재정치라는 형식 때문에 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과가 적은 데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이유가 뭐든 “왕조가 흥할지 쇠할지는 대체로 3대째 정도에 결판나므로 옹정제는 청조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는 미야자키의 지적처럼 지금 북한도 중요한 시기에 진입하고 있을 수 있다. 북한의 ‘쇄국’ 문을 열기 위해서라도 우리 역시 이념이나 편견 없이 북한 체제의 본질과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통해 북한을 올바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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