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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 음악동네]

번안곡이지만… 사랑의 향기마저 원곡 압도

기사입력 | 2020-09-14 10:22

심수봉 ‘백만 송이 장미’

‘삐빠빠룰라 시스마이베이비…’. 초등학교 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들리는 대로 따라 불렀다. 흥나는 대로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부르면 임만 보는 게 아니라 이따금 뽕도 따게 된다. ‘비밥바룰라’(Be Bop A-Lula, 1956)의 원곡자 진 빈센트(Gene Vincent)가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됐다.

별생각 없이 부르던 노래도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르면 호소력이 짙어진다. 몇 번의 태풍이 지나간 후 ‘바람이 전하는 말’(1985, 조용필)을 음미하면서 들으니 느낌이 새롭다. 이 노래의 핵심은 맨 마지막에 나온다. ‘착한 당신 속상해도 인생이란 따뜻한 거야’. 태풍은 잠깐이고 태양은 영원하다. 바람이 전하는 말은 이렇게 따뜻한데 사람이 전하는 말은 어떠한가.

어떤 말은 전달하는 과정에서 직진하지 못하고 굴절한다. 사랑이 증폭되기도 하고 미움이 확산되기도 한다. 외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는 원제목이 ‘통역에서 길을 잃다’(Lost in Translation)인데 도쿄(東京)에서 만난 미국인 둘이 일주일 동안 서로를 이해하는 내용의 멜로물이다. 제목 번역이 재치 있지 않은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에도 통역하는 장면이 나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가 내뱉는 무력의 언어를 주인공(로베르토 베니니)이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옮기는데 글자 그대로 오역의 향연이다. 폭압의 원본과는 거의 반대의 온도로 전달한다. 그 따뜻함에는 의도가 있었다. 함께 갇힌 다섯 살 아들을 안심시키려는 거다. 수용소 생활을 점수 따기 게임이라고 속이고 아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연기한다.

음악동네에선 통·번역을 번안이라고 부른다. 6개월째 예능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사랑의 콜센터’(TV조선, 4월 2일 첫 방송) 주제곡도 번안가요다. 닐 세다카가 부른 원곡(1959)과 댄스그룹 이럽션(1978)의 리메이크 제목은 ‘외길승차표’(one way ticket)인데 한국어 제목은 ‘날 보러 와요’(1980, 방미)다. 편도는 왕복(a round trip ticket)과 다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Never comin’ back) 여행의 목적지는 외로운 마을(lonesome town)이고 숙박할 곳은 상심호텔(heartbreak hotel)이다.

번안곡은 제목부터 가사 내용까지 정반대다.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라는 부제에 딱 어울린다. ‘외로울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울적할 땐 나를 보러 오세요/ 깊은 밤 잠 못 들 땐 전화를 해요(중략) 가진 것은 없어 마음뿐이야/ 거짓 없는 마음 하나/ 당신께만 드리겠어요/ 아낌없이 드리겠어요’. 코미디언 출신 방미는 번안가요 ‘날 보러 와요’로 데뷔한 후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로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 노래의 작사·작곡가는 심수봉이다.

‘복면가왕’(MBC)에서 우리 동네 음악대장(하현우)이 9연승을 차지했던 번안가요 ‘백만 송이 장미’(1997)의 작사가도 심수봉이다. 오리지널은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이라는 라트비아 노래(1981)인데 여기서 마리냐와 소녀는 모녀관계다. 독일과 러시아에 침탈당한 모국의 비극적 역사를 우회적으로 풍자한 내용인데 이 곡을 러시아 가수 알라 푸가체바가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재창조했다. 가난한 화가가 여배우를 짝사랑하여 그녀의 정원을 장미의 바다로 만들어주었다는 내용이다. 심수봉의 한국어 버전은 장미의 숫자뿐 아니라 사랑의 향기도 원곡들을 압도한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의 꽃밭은 어떠한가. 이 노래에서 사랑만큼 수없이 반복되는 말이 미움이다. 해답은 알고 있으니 이제 사랑을 연습하자.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그때 비로소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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