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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시각]

언택트 시대 사라진 것들

최현미 기자 | 2020-09-10 11:28

최현미 문화부장

8일 개막한 대전비엔날레는 코로나 시대이기에 더 흥미로운 전시회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AI) ‘샤오빙’이 쓴 시집 제목에서 빌려온 ‘AI: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라는 타이틀처럼 AI를 예술 도구로 적극 활용해 인간과 AI 그리고 그 관계를 조망하는 자리다. AI가 관람객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고, 컴퓨터가 만든 뮤즈가 예술적 영감을 줄 수 있을지 실험하며, 주가 데이터로 AI가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전시는 온라인으로 전환됐고 개막식도 유튜브로 실시간 스트리밍됐다. 하지만 이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인간과 기계, 인간과 AI의 공진화를 모색하는 비엔날레의 목적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관람객들도 디지털 온라인으로 관람함으로써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는 이제 일상이 됐다. 흔히 개인과 집단이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고통과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부인-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라고 하는데 적응력 뛰어난 한국 사회는 몇 달 만에 수용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듯 비대면 문화도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K-팝 그룹의 온라인 공연은 새로운 글로벌사업 모델이 됐고, 전시부터 음악, 연극, 패션쇼까지 현장성이 필수였던 모든 문화예술이 온라인 콘텐츠로 대체되고 있다. 이번에 새로운 가능성이 증명된 비대면 콘텐츠는 코로나19가 종식된 뒤에도 기술 발전이라는 큰 동력에 힘입어 더 발전해 나갈 것이다.

문제는 ‘비대면 문화’가 많은 소중한 것들을 사라지게 한다는 점이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기술이 활용되긴 하지만 ‘비대면 콘텐츠’는 인간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 특히 시각에 집중한다. 인간 진화에서 가장 오래된 감각인 후각 그리고 미각과 촉각은 쓰지 않는다. 좋아하는 가수와 열정을 다하는 배우의 피땀·눈물을 볼 수는 있어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신경학자들은 인간은 오감 외에 주변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여러 감각이 모여 복합 감각, 예를 들어 시간에 대한 감각 같은 초감각을 느낀다고 하는데 이 역시 위험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비대면 콘텐츠의 특징 중 하나가 ‘클로즈업’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거리다. 몇 해 전 ‘송혜교의 70초 클로즈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송 배우가 출연한 그 드라마는 유난히 자주 주연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는데, 화면 가득 채운 배우의 얼굴에 환호하는 반응만큼이나 잦은 클로즈업 때문에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배우의 신체 움직임이 사라졌고, 상대 배우가 사라졌고, 배경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비대면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무대가 사라지고, 조연이 사라지고, 피땀 흘리는 스태프가 사라지고, 우리를 둘러싼 배경을 사라지게 한다. 언택트 시대 위험을 무릅쓰고 ‘접촉’해야 하는 프레임 밖 노동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주인공’만 존재하는 세계다.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듯 잊어버리기 쉽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최근 책 ‘팬데믹 패닉’에서 많은 것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복종하되 사유하고, 생각의 자유를 지켜라!’는 칸트의 가르침을 따르라.” 비대면·언택트 시대 사라진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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