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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프로이트 또는 카사노바

기사입력 | 2020-09-04 11:28

김이재 지리학자, 경인교대 교수

여행이 에너지였던 프로이트
伊서 독창적 이론 잇달아 발표
다재다능한 엘리트 카사노바

패션·언어 탁월했던 뇌섹남
프로이트 ‘정신의 지도’ 그려
카사노바 ‘쾌락의 지도’ 남겨


아이 여섯을 둔 가장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중년 남자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베네치아로 향했다. 계속 망설이다 마흔 무렵 어렵게 떠난 이탈리아 여행으로 그는 다시 태어났다. 1895년부터 거의 매년 여름 남유럽을 여행하며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해온 프로이트는 거꾸로 읽으면 ‘사랑(AMOR)’이 되는 도시, 로마를 가장 좋아했다. 그는 현지에서의 체험·관찰을 그리스·로마 신화와 연결시켜 독창적인 이론을 계속 발표했고, 지형도의 원리를 응용해 ‘자아, 초자아, 이드’의 관계를 설명하는 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지리학자 뺨치는 여행광으로 진화한 프로이트는 고된 답사 일정 속에서도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자유를 만끽했다.

1923년, 구강암이 심해져 더는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되자 프로이트는 낙담했다. 33차례나 수술을 받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의사의 모르핀 투약을 거부했다. 몽롱한 정신 상태에서는 제대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각지를 여행하면서 수집한 수백 점의 골동품으로 장식된 프로이트의 집 벽에는 이탈리아 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진통제 대신 행복한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학문에 매진했다.

엄격하고 가부장적이었던 프로이트와 달리, 122명의 여성과 사랑을 나눈 조반니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는 연애의 달인이었다. 가면 축제로 유명한 관능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그는 다재다능한 엘리트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다. 프랑스에서는 복권 사업에 뛰어들었는가 하면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모차르트에게 자신의 여성 편력 이야기를 들려주며 ‘돈 조반니’ 대본 수정에 참여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온다. 2m나 되는 장신에 세련된 패션 감각까지 갖춘 카사노바는 라틴어·프랑스어·히브리어 등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원조 ‘뇌섹남’이었다.

쾌락을 느끼는 감각의 촉수가 예민했던 카사노바는 요리·연애·사랑·도박·음악·미술·연극·과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이탈리아를 넘어 터키·영국·프랑스·스페인 등지를 여행하며 환락의 제국도 계속 확장해 나갔다. ‘즐겁게 보낸 시간은 절대 낭비가 아니다. 인생의 권태로운 시간만 낭비일 뿐’이라는 소신을 몸소 실천하며 평생을 치열하게 살았다.

‘저술·출판·독서의 사회사’를 집필한 존 해밀턴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는 ‘카사노바가 여자보다 책을 더 사랑했다’는 주장을 편다. 실제로 책 때문에 위기에 빠진 그를 책이 구원한 적도 있었다. 파도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젊은 성직자였던 카사노바는 ‘외설적이고 이단적인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수감된다. ‘성서’를 이용해 탈옥한 그는 ‘납이라 불리는 베네치아 감옥에서 탈출한 내력’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냈다. 이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그는 연극·문학 평론 잡지를 출간하는 등 책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그가 쓴 40여 권의 책 가운데는 ‘폴란드 사회 불안의 역사’ ‘철학자와 신학자’ ‘도덕·과학·예술에 관한 비판적 에세이’ ‘조지 왕조의 역법 개혁에 따른 공통 시간 측정에 관한 생각’, 5부작 유토피아 소설 ‘20일 이야기’ 등 진지한 주제도 많다. 노년의 카사노바가 체코 보헤미아의 둑스 성 도서관에서 사서(司書)로 일하며 마지막으로 쓴 책 ‘회고록’도 12권짜리 대작이었다. 벨기에 작가 리뉴 공은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계시가 되고, 무슨 생각을 하든 책이 된다”며 카사노바의 천재성을 부러워했다.

1960년대 무삭제 원본 ‘회고록’이 공식 출간되고 학자·예술가로서 카사노바의 업적이 재조명되면서 실추됐던 그의 명예도 회복되는 중이다. 이제 카사노바는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를 소재로 한 문화 예술 작품도 쏟아지고 있다. 카사노바에 관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모임이 결성되고, 그를 추종하는 ‘카사노비스트’까지 출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그의 원고가 파손될까 염려했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카사노바의 광팬이었다.

위선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표현한 카사노바의 책들은 ‘18세기 유럽인의 삶과 문화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귀한 사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2010년 프랑스 정부는 근대 유럽 상류층과 지식인의 공통어였던, 우아한 프랑스어로 쓰인 그의 ‘회고록’을 국보(國寶)급 문화재로 인정해 고가에 사들이기도 했다. 세인의 비판과 조롱이 쏟아져도 끝까지 당당했던 카사노바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여인을 사랑했다. 하지만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 카사노바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은 현대인이 늘어나면서 ‘사랑과 예술의 유혹자’로서 그의 매력은 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에 빛을 발하고 있다.

반면, 20세기를 대표하는 스타 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린 프로이트의 명성은 그의 사후에 무너지는 중이다. 결정타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가 날렸다. ‘우상의 추락’(2013)이라는 책에서 프로이트의 인간적 약점이 낱낱이 파헤쳐지며 거장의 인생은 너덜너덜해졌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불안했던지, 프로이트는 죽기 직전까지 문서를 파괴하고 자신의 행적을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그가 집필한 방대한 분량의 책들은 다행하게도 전 세계 도서관에 여전히 남아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의 지도’를 그렸고, 카사노바는 ‘쾌락의 지도’를 남겼다. 올가을 마음에 드는 지도를 선택해 ‘프로이트 또는 카사노바’와 함께 독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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