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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논단]

대한민국은 北주민 희망이어야 한다

기사입력 | 2020-08-28 11:19

이경수 前 駐독일 대사 前 외교부 차관보

베를린 장벽 붕괴 전에 이미 시작된 동독 주민의 대량 탈주는 동독의 급변을 초래했으며 통일로 이어졌다. 분단 시기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인은 모두 460만 명에 이르며 대부분은 탈북민과 같은 탈주민이었다. 이 중 1989년부터 1990년 3월까지 53만 명이 ‘엑소더스’를 이뤘다.

서독은 처음부터 전체 ‘독일 국민’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동독 주민 전원 수용을 정책화했다. 석방거래(Freikauf)를 통해 동독 정치범 3만3000명 이상을 석방했으며, 25만 동독 주민의 합법적 서독 이주도 성사시켰다. 1989년 7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국경 개방 이후에는 헝가리와의 비밀 협상과 폴란드, 체코 정부와의 협조를 통해 동독 탈주민을 직접 기차 편으로 이송해 왔다. 헬무트 콜 총리는 사회 일각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건 없는 전원 수용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동독 주민의 희망이 됐다.

통일 주역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교장관도 25세에 목숨을 걸고 서독으로 건너온 탈주민이다. 동독의 독재 체제와 열악한 인권 상황을 체험한 그는 유럽 안보·협력의 틀을 구축한 헬싱키 프로세스의 3대 원칙의 하나로 ‘인권과 자유 보장’을 포함시키는 데 기여했다. 통일 시기에는 외교장관으로서 독일 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한 주민의 탈주가 1990년대 중반 시작된 이래 현재 해외 탈북민은 15만∼20만,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도 3만5000여 명에 이른다. 탈북민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북한에서 벗어나는 순간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국내 정착 시에는 차별 없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는 국제인권법규상 정착국에 부과된 의무이기도 하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통일도 북한의 급변과 주민의 대량 탈출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시작된 탈북 행렬이 말해 준다. 현실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탈북의 동인(動因)은 북한 주민의 한국에 대한 동경과 기대다. 따라서 자유와 풍요의 한국은 북한 주민의 기대 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북한 주민의 공감과 동의를 끌어내는 원천이요 통일의 굳건한 기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탈북민에 대한 차별적·비우호적인 행태는 우려스럽다. 지난해 11월 북한 어민의 일방적 북송, 최근 알려진 신변 위협으로 인한 탈북민의 제3국 망명도 매우 놀랍다. 대한민국이 쌓아온 인권국으로서의 평판이 손상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국익을 해치며, 탈북민에게 절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어 두렵다. 우리 정부가 그간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해 일관되게 국제난민협약상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 준수를 요구해 왔음에 비춰 앞으로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 것이며 북한 주민에게는 어떻게 희망의 메시지를 다시 전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와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설치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2월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 및 관련국에 대해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 존중과 탈북민에 대한 비호 및 항구적 보호 제공을 권고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관련국’에 대한 권고가 우리를 향한 것으로 읽히리라고는 당시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정부는 대한민국으로 오는 모든 탈북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또,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론의 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리를 온전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통일은 남북한 간 가치와 체제의 수렴을 통해 실현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 주민의 희망이자 대안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오는 10월 통일 30주년을 기념할 독일을 바라보며 분단 75년을 이어온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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