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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경제부장

부동산 정책 실패로 궁지 몰린
문재인 정권이 던진 승부수는
내편네편 가르는 증오의 정치

23차례 반복된 집값 폭등 패턴
여권 내 자성론도 귀 기울이고
反시장 기조부터 버려야 해결

연내 부동산감독기구가 새로 출범할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시장교란 행위를 때려잡겠다고 9월 정기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없던 처벌 조항도 신설하고, 기존의 처벌보다 높은 수위로 다스리겠다는 복안을 숨기지 않고 있다.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조직이다. 굳이 따지자면 베네수엘라에 유사한 기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왜 하필 참혹한 실패로 평가받는 베네수엘라 사례를 벤치마킹하려는 건지 의문이다. 1960년대 한때 세계 4위 경제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1999∼2013년 장기 집권한 우고 차베스(56∼59대 대통령) 정권을 거친 뒤 빈곤 국가로 전락했다. 토지공개념, 무상교육·무상복지, 반시장·친노동을 핵심으로 한 차베스주의는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됐다.

새 정부기구가 효용성이 있다면야 남들이 하건 안 하건 상관없다. 부동산 대란에 전 국민이 아우성이니 유례없는 기구를 만들어서라도 해결할 수 있으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범법행위는 말 그대로 이미 단속 대상이자 사법 당국의 처벌 대상이었다. 한 발 나아가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국세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검찰, 경찰 관료 100여 명이 투기와의 전쟁을 위해 ‘부동산감독원’으로 총동원되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보게 된다. 새 기구는 탈세, 자금출처, 집값 담합, 호가 조작, 허위매물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광범위하게 운영되고 있는 부동산카페, 개인 간 SNS를 다 들여다보고 증거를 수집하겠다는 방침이다. 전 국민의 통신망을 거르겠다는 ‘패놉티콘(panopticon)과 다름없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愚)를 넘어서는 극단적인 시장통제다.

행정력 낭비도 불 보듯 뻔하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뤄진 매매·전세·월세 거래 기준 175만 건을 다 들여다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령 증거를 모았다고 해도 경제행위 속성상 합법·위법의 경계가 모호한 사례가 적잖다. 일선 세무사도 정확한 법 내용을 모르는 판이니 죄형법정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정부가 갖가지 방식으로 난수표 세법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집을 팔려고 해도, 사려고 해도, 그냥 갖고 있으려 해도 온갖 올가미에 자칫 범법자가 된다.

실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편 가르기 효과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그랬고, 4대강 논란도 그랬다. 이쯤 되면 행정이 아니다.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국정도 아니다. 내 편을 결집하고, 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의 불길을 저편에 돌려 책임 소재를 흐리려는 꼼수다. 국가백년대계를 이런 유의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희석시키기를 반복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흐름상 장기간 지속되는 저금리, 코로나19 효과까지 더해진 과잉 유동성을 배경으로 주택문제의 근본적 해법인 공급 대책은 닫아놓고 특정 집단을 희생양 삼아 부동산 시장과 싸우려는 생각뿐이다. 국가 통계는 입맛에 맞는 결과만 취사선택한다. 정부가 규제책을 내놓을 때마다 서민들은 아파트에서 다세대주택, 연립, 빌라로 주택 난민처럼 떠도는 신세가 됐다.

“증오의 굿판을 벌인다”는 비난은 야당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언제부턴가 우리 편과 저편을 가르기 시작했고, 이중 잣대로 가늠했다” “국정 철학의 주요 축인 평등·공정·정의의 가치는 우리에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며 자성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부동산감독기구가 없어 부동산 가격이 올랐느냐” “자칫 정상적 거래를 위축시킬까 봐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독재자 차베스의 말로와 오버랩되지 않기를 바라는 충정이 읽힌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그린 스마트 스쿨’ 현장(18일 창덕여중) 방문에서 한 교사로부터 “그래프를 그려 변화를 관찰해 패턴을 분석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패턴은 모두가 안다. 현 정부 출범 후 23차례의 부동산 대책 발표 때마다 집값이 올랐다는 사실이다. “정책 효과는 발표 후 최소 6∼7주가 지나야 나타난다”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공언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문 대통령이 “필요 시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도 검토하겠다”(10일 수석·보좌관회의)고 했던 만큼 지금이라도 ‘필요 없다는 판단이 섰으니 중단하겠다’는 재지시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차근히 찾아가야 한다. 한국에 차베스 망령을 불러낼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