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전체
사설
시평
시론
포럼
오후여담
[살며 생각하며]

‘꼰대 선생’ 탈출하기

기사입력 | 2020-08-21 11:23

김대진 피아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성공신화 부추김 당하는 학생들
진짜 성공은 자기 자신 아는 것

장점 파악하고 단점 보완하며
잘 이끌어주는 게 선생 역할

마음에 가 닿는 신뢰와 대화로
앞뒤 아닌 동반자처럼 걸어야


나의 교육 목표는 학생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선천적인 면과 자라면서 갖게 되는 후천적인 면으로 나뉜다. 우선, 자신이 선천적으로 소유한 것은 무엇인지, 소유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결국, ‘성공’이란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얼마나 보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장점은 모르면서 단점만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자신의 장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난 뒤에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들이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잘하는 것만 계속하게 하는 것은 좋은 교육이 아니다. 학생의 정확한 ‘검진표’가 없다면 선생은 무엇을 가르치고 채워 줘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게 중요하다. 선생은 학생에게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철저한 계획과 의지, 인내가 필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이 과정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게 선생의 진짜 과제다.

내 교육의 핵심은 저마다 각자 다른 성향을 파악해 각 학생에게 맞게 다른 모양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은 계속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때마다 가르치는 사람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한 학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없이는 결코 이뤄 낼 수가 없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성공’에 대한 신화를 부추긴다. 그러면 예술 세계에서 성공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장하는 일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얼마나 빨리 발견하느냐가 어떤 음악 인생을 살게 될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자기를 알고, 자기 삶을 사랑하고, 자기를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기여하는 것, 이것이 ‘참음악인’을 만들기 위한 교육의 진정한 목표다.

음악 전공자라면 무대에서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무대에서는 자신의 모든 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객으로서도, 연주를 들으면 연주자의 성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음악이 비슷하고 연주자의 성향과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음악에 담긴 이야기들이 너무 뻔해서 예측할 수 있다면 청중 역시 그 음악을 듣고 어떤 흥미나 감동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감동은 예측할 수 없어야 한다. 음악·미술·무용·문학 등 모든 분야의 예술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이다.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나’다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알고 끊임없이 가꿔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로 교수생활을 시작한 지 28년이 된다. 사반세기가 넘게 오로지 피아노만 가르쳤으면 이제 좀 편해질 때도 됐다. 그런데 아직도 가르친다는 게 힘이 든다. 내가 갓 교수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의 학생들과 요즘 학생들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요즘 신세대 학생들에게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다. 학생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어휘와 어법을 모르면 졸지에 ‘꼰대’가 되고, 그 순간 선생의 말은 구시대 유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꼰대 탈피’ 노력을 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됐다. 전부터 해 오던 획일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각자의 개성이 담긴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다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이제는 ‘다름’이 인정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전에는 내가 연주할 곡을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들어 보는 게 소원일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인터넷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너무 정보가 많아서 자기가 선호하는 연주자를 골라서 들을 수 있게 됐다. 옛날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상황이 이제는 현실이 돼 버린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선생의 역할에 많은 변화가 필요하게 됐다. 학생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일일이 곡을 가르쳐야 하는 수고는 덜게 됐다. 하지만 연주를 통해 나타나는 학생의 성향에 대해 좀 더 근원적이고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급한 성향이 있는 학생의 연주가 빨라지는 것, 내성적인 학생의 연주가 소심해지는 것 등을 보완해 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쯤 되면 학생을 모르고는 절대로 가르칠 수 없게 되고, 서로의 마음에 와 닿는 신뢰가 바탕이 되는 대화는 가르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우리 옛말이 있다.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말이라고 하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사제간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학생이 뒤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오게만 할 게 아니라, 나란히 그림자를 만들며 걷는 동반자로서의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개성이 표출되기를 바라면서.

많이 본 기사 Top5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