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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고요한 석굴, 나홀로 가부좌… 일상의 불안이 사라진다

박경일 기자 | 2020-08-20 10:17

충북 단양 황정산에 깃든 작은 암자 원통암 뒤편으로 이어진 오솔길 끝에 있는 ‘나옹선사 석굴’. 원통암을 창건한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가 여기서 참선을 하고 불법을 닦았을 것이란 추정으로 나옹선사의 이름이 붙여졌다. 집채만 한 바위 아래 오목한 자리는, 한 눈에도 가부좌를 틀고 마음을 닦는 명당자리라는 게 느껴진다. 충북 단양 황정산에 깃든 작은 암자 원통암 뒤편으로 이어진 오솔길 끝에 있는 ‘나옹선사 석굴’. 원통암을 창건한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가 여기서 참선을 하고 불법을 닦았을 것이란 추정으로 나옹선사의 이름이 붙여졌다. 집채만 한 바위 아래 오목한 자리는, 한 눈에도 가부좌를 틀고 마음을 닦는 명당자리라는 게 느껴진다.


■ 단양 나옹선사 석굴·운선구곡

근육질 화강암 기기묘묘한 바위로 뭉친 황정산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나옹선사의 작은 암자
작은 오솔길 따라가면 사람 한둘 들어설 만한 석굴이…
생각없이 건너편 산자락 바라보며 지친 마음 힐링

50m 거대한 수직석벽으로 늠름한 단양팔경‘사인암’
찾는 이 많지 않지만 도교 흔적 가득한 ‘운선구곡’에도 꼽혀
류성룡이 머물던‘수운정’· 병풍처럼 석벽 펼쳐진 ‘도광벽’
‘신선이 사는 곳’ 꿈꾸던 풍경 속에서 마음의 평온 얻어


고려 말의 고승 나옹선사를 모른대도, 그가 지은 이 시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의 ‘뜬구름’이란 시는 또 어떻습니까.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인데/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함이 없나니/태어남도 죽음도 모두 이와 같다네/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있어/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네’ 가을을 앞둔 지금, 무르익은 가을에 썼을 나옹선사의 시 속 문장 한 줄을 더 꺼내봅니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제 자리에 있는데/처마 가득 가을빛, 반은 붉고 반 푸르네…’

나옹선사의 시에서 한결같이 느껴지는 건, ‘선(禪)’의 향기입니다. 마음으로 내면을 응시하며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이 그의 문장 안에 있습니다. 폭우에 뒤이은 폭염으로 세상은 달궈지고, 정치와 경제, 종교와 질병이 얽혀 갈등과 다툼은 일상이 되고, 감염병은 또다시 창궐할 조짐입니다.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상의 가장 반대쪽 풍경과 만나러 나선 길. 그 길 위에서 좌선하고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들여다본 이를 생각합니다.


# 칠성바위의 기도가 깃들다…원통암

나옹선사는 줄곧 바위굴과 토굴을 전전하며 수도를 했다. 10년 기한을 정하고 토굴에 들어 참선하며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한 칸 토굴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쯤 열고…’로 시작하는 ‘토굴가(土窟歌)’를 쓰기도 했다. 그가 남긴 여러 편 선시(禪詩)는 곧, 토굴에서의 오랜 참선으로 얻은 깨달음의 답이었으리라.

나옹선사가 좌선하고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석굴이, 충북 단양의 황정산에 꼭꼭 숨겨져 있다고 했다. 단양의 황정산(959m)은 북쪽 능선 끝이 단양 팔경 사인암 앞에 닿아 있는 산이다. 아찔한 기암괴석과 노송 군락의 경관만으로도 여느 명산에 빠지지 않지만, 단양 사람을 빼면 황정산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단양의 관광지도를 보면 금세 이해가 된다. 단양에 이름난 명승이 워낙 많으니 여행자들의 발길이 황정산까지 닿을 여유가 있겠는가 말이다.

황정산의 매력은 바위다. 단양은 석회암 지대지만, 황정산은 근육질의 화강암으로 단단하게 뭉쳐있다. 능선 이곳저곳에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거대한 돌무더기로 쌓여있다. 거대한 바위틈에는 붉은 둥치의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기이하게 자란다. 황정산 산행은 만만치 않다. 아찔한 바위 벼랑에 매듭 묶은 밧줄에 매달려 아슬아슬 오르내려야 하는 구간이 곳곳에 있다. 산행 초심자라면 오금이 저려 두 발이 딱 얼어붙을 만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산세와 바위 경관이 근사한 데도 산이 알려지지 않은 건, 이렇게 산세가 험해 좀처럼 발을 들이기 쉽지 않은 탓도 있겠다.

황정산 허리춤에 나옹선사가 창건했다는 자그마한 암자 원통암이 있다. 원통암까지는 산길로 1㎞ 남짓. 가쁜 숨을 고르며 40분 정도를 걸어 올라야 한다. 나무 덱으로 경사를 누이고 험한 구간에는 계단을 놓아, 황정산의 다른 등산코스와는 달리 길은 편안한 편이다.

나옹선사가 도를 닦았다는 석굴은 원통암 뒤쪽 짙은 숲 속의 가느다란 오솔길 끝에 있다. 목적지는 석굴이지만, 석굴이 아니었대도 원통암은 그곳만을 목적지로 따로 가볼 만하다. 숲에 파묻히듯 자리 잡은 암자도 매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암자 한쪽에 우뚝 솟아있는 칠성바위 때문이다. 합장한 손바닥 모습의 칠성암은 단양군이 정한 ‘신(新) 단양팔경’ 중 하나다. 단양의 팔경과 구곡 얘기는 뒤에 다시 하기로 하자. 높이 30여m쯤 될까. 세로로 쩍쩍 갈라진 칠성암은 거대한 수석작품을 이루고 있고,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 마음을 다스리는 자리… 나옹선사 석굴

원통암은 본래 황정산 아래 유서 깊은 절집 대흥사의 부속 암자였다. 대흥사는 신라 때 자장율사가 양산에 통도사를 창건할 무렵 단양에 지은 절집이다. 한때 법당건물이 202칸을 헤아렸고 1000명이 넘는 승려를 거느린 대찰 중의 대찰이었다. 150년 전쯤 큰불이 나서 대흥사가 폐사되면서 기댈 곳을 잃은 원통암은 법주사의 말사로 들어갔다. 근래 대흥사가 말끔하게 복원됐지만, 원통암은 여전히 법주사 말사다.

법주사의 말사지만 원통암 오르는 길은 대흥사를 거쳐 가는 게 좋겠다. 지난 2016년 복원된 대흥사는 법당 건물이 그리 많지 않지만, 대웅보전을 비롯한 법당의 풍모에서 대찰의 위용이 그대로 느껴진다. 사찰의 규모나 격식으로 보면 지난 2001년 황량한 폐사지에서 컨테이너 2개로 시작한 불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원통암은 대흥사 경내를 지나 절집 뒤편의 거대한 미륵대불을 지나면 거기서부터 원통암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나온다.

산길로 접어들자 광고판을 방불케 하는 원통암 이정표가 길을 안내했다. 이정표에는 ‘전설의 약수’와 ‘칠성 기운’을 앞세워서 결혼부터 사업, 취직, 시험에 이르기까지 무차별로 소원을 이룬다는 기도 얘기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칠성바위 아래에는 기도 자리를 만들어놓고 종을 매달아 놓았다. 이른바 ‘소원성취 종’인데 종 앞에는 ‘종 치는 가격’을 적어 두었다. 그러고 보니 암자 곳곳에 단청불사, 탱화불사, 인등 기도 참여 가격이 식당의 메뉴판처럼 적혀있다. 이리 외지고 깊은 산중에 얼마나 찾아온다고…. 외딴 암자의 어려운 형편을 엿본 듯해 안쓰러웠다.

암자의 관음전과 칠성바위 사이에 석굴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있다. 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1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시멘트를 쓱쓱 발라 마감한 외벽에 양철로 문을 달고, 지붕에는 통나무 굴피를 올린 한 칸짜리 집이 있다. 양철 문 안에 아직 걸지 않고 놓아둔 ‘도솔암’을 새긴 현판이 있다. 나옹선사 석굴은 도솔암 바로 옆에 있다. 집채만 한 바위 아래 오목하게 사람 한둘이 들어설 만한 자리가 있는데, 한 눈에도 그곳이 석굴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바위는 굴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마치 퍼즐의 조각 몇 개를 들어낸 것처럼 사람이 들어설 자리를 비워놓은 듯하다. 굴 모양의 바위만 보면 어딘지 비어있는 듯한데, 누구든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딱 맞는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나옹선사 석굴에서는 거기에 앉아 그저 무념으로 저 건너편의 산자락과 숲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기설기 헝클어진 생각의 실타래를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한 번이라도 이곳에 와본다면 힘들고 지쳐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 또 온전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싶을 때 여기가 생각날 게 틀림없다. 다시 오지 못한다고 해도 어떨까.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찾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 않겠는가.


# ‘거리두기’ 단양팔경보다 운선구곡…

이제 미뤄둔 ‘팔경’과 ‘구곡’ 얘기를 꺼내보자. 단양을 대표하는 명승 ‘단양팔경’이야 모르는 이가 있을까만, 조선 영조 때 참판을 지낸 오대익이 설정했다는 단양 ‘운선구곡(雲仙九谷)’의 이름은 낯설다. 운선(雲仙)은 ‘구름 속의 신선’이다. 운선구곡의 아홉 굽이는 단양 대강면 남조천, 그러니까 단양 팔경의 사인암을 끼고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높이 50m의 거대한 수직석벽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사인암은 단양팔경의 ‘제4경’이자 운선구곡의 ‘제7곡’이기도 하다.

팔경과 구곡은, 뭐가 다를까. 팔경의 바탕은 ‘천지 만물이 여덟 가지 괘(卦)로 이뤄졌다’는 주역이다. 주역에서 팔(八)은 우주의 현상과 자연의 이치를 나타내는 기본 원리를 담은 숫자로 본다. 팔경의 원조는 중국 동정호 인근의 빼어난 경관인 ‘소상팔경(瀟湘八景)’이다. 북송 때 그림으로 그려진 소상팔경은 관념산수 시대 아름다움의 정점이었다. 팔경이 주역에서 왔다면 구곡은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자에게서 왔다. 주자가 무이산에서 노닐며 무이구곡을 노래한 뒤로 조선의 선비들은 명승마다 구곡의 이름을 붙였다. 선비들은 자연의 원리에서 모름지기 지켜야 할 도리와 법도를 읽었으니, 구곡의 자연은 선비들에게 ‘한 권의 책’이었던 셈이었다.

단양팔경에도, 운선구곡에도 이름을 올리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니, 사인암은 주역과 유학에 한 발씩 넣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사인암에는 도교 흔적까지 깃들어 있다. 도교의 이상향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옛사람들은 풍광이 좋고 기암괴석이 있는 곳을 신선이 사는 곳이라 생각했고, 그런 곳에 정자를 세워 신선처럼 노니는 꿈을 꾸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렇게 사인암에다 지은 정자가 ‘서벽정’이었다. ‘서벽(棲碧)’이란 정자 이름은, 봉황이 깃드는 오동나무를 말한다. 신선이 깃든 곳으로 안내하는 건 봉황새다. 선비들이 꿈꾸던 도교적 이상향이 바로 사인암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주역과 유교와 도교를 넘나드는 공간. 그곳이 바로 사인암이라는 얘기다.


# 이름으로 더 각별해지는 풍경들

사인암 몇 발자국 뒤에는 자그마한 암자 청련암이 있다. 청련암은 원통암과 마찬가지로 나옹선사가 창건했으며, 황정산 자락에 있던 대흥사의 말사였는데, 대흥사가 폐사되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사인암 곁으로 옮겨왔다. 암자는 덕절산의 산세를 병풍처럼 뒤로 둔 자리에 들어서 있다. 청련암에서 유심히 봐야 할 곳은 삼성각의 자리다. 사인암 뒤편의 바위틈에 끼인 듯이 들어서 있다. 삼성각이 들어선 자리가 바로 신선을 꿈꾸며 봉황을 불러들이려 했던 서벽정이 있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운선구곡으로 명명한 아홉 곳 명소는 남조천 변에 뚜렷한 글씨로 남아있지만, 그렇다고 굳이 구곡 모두를 다 둘러보려 애쓸 필요는 없겠다. 사인암 상류 쪽으로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며 서애 류성룡이 북인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을 당한 뒤에 머물며 지었다는 정자에서 이름을 딴 3곡 ‘수운정(水雲亭)’과 사인암 상류에 병풍처럼 펼쳐진 석벽인 4곡 ‘도광벽(道光壁)’ 등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수운정은 울타리로 닫아놓은 사유지라 물 건너편에서 먼발치로 볼 수밖에 없는 게 아쉽지만, 천변에 솟은 바위벼랑에 서 있었을 정자의 모습을 마음속에서 그려볼 수 있다. 도광벽에서는 붉은 기운이 묻어나는 바위벽의 웅장한 모습과 함께 1980년대 식량증산이나 간첩 신고 따위의 표어까지 수백 년에 걸친 글씨를 볼 수 있다.

경관은, 이름으로 더 각별해진다. 하나하나 아홉 곳의 이름을 듣고 경관을 살피다 보면, 이름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던 경관이 구곡의 이름을 얻어 비로소 각별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사인암의 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암각문 중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난가장(爛柯狀)’이란 글씨였다. 난(爛)은 ‘문드러지다’라는 뜻이고, 가(柯)는 도낏자루를 말하니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뜻인데, 그 글씨 옆에는 장기판과 바둑판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거기가 신선놀음을 즐기는, 신선의 공간임을 비유한 것이리라.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중 암자의 석굴이, 그리고 신선이 깃든 풍류의 공간인 팔경과 구곡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건, 마음의 평온과 신선놀음의 위안이다. 깊어져 가는 사회적 갈등, 그리고 타인에 대한 증오와 경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염병의 창궐로 지친 우리에게 평온과 위안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 단양 일대 전망 보려면 발길 뜸한 양방산으로

단양팔경은 관동팔경과 함께 이름값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명승이다. 단양팔경의 여덟 곳 명소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사인암, 구담봉, 옥순봉, 도담삼봉, 석문이다. 관광지로 골라낸다면 사인암과 도담삼봉을, 트레킹 목적지로는 구담봉과 옥순봉이 으뜸이다. 단양에는 ‘신(新) 단양팔경’도 있다. 신 단양팔경은 단양팔경에서 빠진 지역을 배려하기 위한 정책적 작명이다. 영춘면과 가곡면, 어상천면, 적성면, 단양읍 등 단양팔경이 없는 지역에서 각각 명소를 뽑아 신 단양팔경으로 정해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정했다. 신 단양팔경은 죽령폭포, 칠성암, 북벽, 구봉팔문, 금수산, 온달산성, 일광굴, 고수동굴이다.

요즘 단양에서 단양팔경과 신 단양팔경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는 곳이 상진대교와 단양읍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인 만천하스카이워크와 단양역 건너편 강변 단애에 길을 매달아 만든 단양강 잔도다. 코로나19의 재확산 우려로 ‘거리 두기’가 필요한 만큼 밀집 접촉이 이뤄지는 인기 관광지는 피하는 게 낫겠다. 대신 조망명소로 만천하스카이워크 개관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진 양방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추천한다. 양방산 전망대가 해발 664m라 만천하스카이워크보다 훨씬 더 조망의 스케일이 크다. 다만 활공장까지 가는 길이 좁고 가팔라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 나옹선사 수행처

나옹선사의 수행처는, 강원 평창 오대산 월정사의 산내 암자인 북대 미륵암에도 있다. 중대의 적멸보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다. 경기 양주의 회암사지에는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이 있고, 나옹선사가 입적했던 경기 여주의 신륵사에도 승탑과 석등, 탑비가 남아있다. 경북 영덕 창수면의 장육사도 나옹선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옹선사 탄생지인 창수면 신기리에는 영덕군이 2011년 나옹선사를 기려 팔작지붕의 2층 누각으로 지은 정자 ‘반송정’이 있다. 나옹선사가 출가하면서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를 하면서 꽂아둔 소나무 지팡이가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다가 1965년 고사하자, 그 자리에다 세운 정자다.

글·사진 =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사인암을 끼고 흐르는 남조천 물길의 상류에 있는 운선구곡의 제4곡인 ‘도광벽(道光壁)’.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바위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황정산의 허리춤에 들어선 암자 원통암과 합장한 손바닥 모양의 바위 칠성암. 칠성암은 ‘신 단양팔경’ 중 하나다. 계속된 장맛비로 잔뜩 몸집을 불린 충주호. 오른쪽의 큰 산이 말목산이고, 왼쪽 구름에 뒤덮인 산이 제비봉이다. 물길이 밀고 들어간 저 안쪽이 충주호 유람선이 뜨는 장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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