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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사찰에 갤러리·카페를 덧입히다

기사입력 | 2020-08-14 11:53

원철 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휴가차 방문한 제주 사찰 갤러리·카페 분위기 물씬 건물 중심에 직사각형 연못 금붕어들 여유롭게 떠다녀 벽화처럼 새긴 ‘해인도’그림 이것 없으면 사찰인지 모를 뻔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이의 손에 끌려서 간 곳은 공항에서 멀지 않은 카페였다.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창 넓은 커피숍을 겸한 브런치 가게다. 제주도 카페 투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할 만큼 특색 있는 카페가 많다고 한다. 이제 꼰대 세대까지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방문지는 카페가 된 것이다.

숙식할 휴가 사찰도 갤러리와 카페를 겸한 모습이다. 이른 아침 절 구석구석을 살폈다. 검은 벽돌과 현무암으로 마감한 미음(ㅁ)자로 된 현대식 2층 건물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일본 안도 다다오(安藤忠雄)풍의 햇빛과 바람 그리고 물이 함께하는 기본 스타일을 차용한 뒤 그 위에 검은 벽돌과 현무암으로 마감했다. 화산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건물에 충분히 반영한 것이다. 제주도 토박이 스님의 정체성을 그대로 입혔다고나 할까. 사찰에 갤러리와 카페를 덧입힌 게 아니라, 갤러리와 카페 속으로 사찰을 밀어 넣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 같다.

건물 중심에 직사각형 연못이 중정(中庭)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련과 수석 사이로 크고 작은 금붕어들이 여유롭게 떠다니고 있다. 천장 없는 하늘에는 가로세로로 금속 줄을 쳤다. 그 이유를 물었다. 왜가리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서 금붕어를 줍듯이 마구 먹어 치웠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으면 금붕어가 일주일 동안 바위틈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생명을 위협당한 트라우마의 치유 기간이 최소한 일주일이 걸리는 셈이다. 바람 많은 제주도를 그대로 느끼기 위해 대문 없는 건물을 지향했더니 바람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왜가리까지 들어왔다. 하는 수 없이 촘촘한 간격을 둔 육중한 나무 대문을 달았다. 집안의 안정감이 더해졌고 심한 바람은 완화해 주는 효과가 덤으로 얻어졌다.

그런데 얼마 후 왜가리가 하늘에서 지붕 쪽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다. 금붕어들이 혼비백산했다. 하는 수 없이 굵은 철사로 그물 천장을 만들었다. 어느 날 왜가리가 철사 그물에 걸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안타까워 구조했다. 생포해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덩치가 엄청 컸다. 그놈을 앞에 두고서 일장 훈시(?)를 한 다음 다시 날려 보냈다. 그 후로 연못 정원에는 완전한 평화가 찾아왔다.

새로 지은 사찰에는 왜가리 손님만 찾아오는 게 아니다. 제비도 와서 2층 처마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어미가 들어올 때마다 새끼들이 노란 주둥이를 벌린다. 그 와중에 과격한 동작을 하다가 떨어진 녀석은 주워 둥지로 되올려주기도 해야 한다. 제주도 진흙은 점성이 떨어지는지 어떤 때는 둥지가 통째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단다. 제비 똥을 받느라고 바닥에 골판지를 까는 건 기본이다. 청소 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 휘청거리면서도 힘들게 날갯짓하며 새끼를 위해 먹이를 찾으러 가는 모습을 보면 짠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벽화처럼 새겨 놓은 ‘해인도(海印圖)’ 문자 그림만이 이 집이 사찰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것도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 기호인지라, 또 다른 다빈치 코드가 됐다. 입구에는 커다란 현무암 판석 덩어리를 세웠다. 글자 없이 그냥 입구를 알리는 선돌의 역할만 할 뿐이다. 안내문 없는 안내판인 셈이다. 장독대와 소대(燒臺·태우는 곳) 입구 그리고 여기저기에 돌하르방이 다소곳하게 정원석처럼 서 있다.

1층은 살림집인 요사채였고, 2층은 법당과 객실이 자리 잡았다. 1·2층 회랑에는 간이 탁자와 의자를 필요할 때마다 설치할 수 있도록 준비해 뒀다.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화산석으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길게 둘러 차밭과 경계 지었다. 산책하다가 차나무의 새순을 씹는 재미도 괜찮다. 차밭 뒤로는 나지막한 긴 언덕이 안산(案山) 노릇을 하며 바람을 막아준다. 언덕에 빽빽하게 자란 나무에 달린 가지와 나뭇잎은 연신 바람 지나가는 소리를 내면서 흔들린다. 그야말로 바람의 언덕이다. 코는 물론 가슴속까지 뻥하니 뚫렸다. 육지에서 홍수 뉴스가 계속 들려온다. 여기는 바람이 비를 대신하는지 첫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불어댄다.

대구에서 당일치기로 찾아온 도반과 함께 카페 투어에 나섰다. 인기 있는 카페는 이 사찰처럼 주차장, 카페 건물, 실외 정원 콘셉트가 기본이다. 유명 카페 인근에 있는 일행의 지인이 운영하는 살림집을 겸한 가죽공방도 거의 카페 분위기다. 바다가 호수처럼 들어온 자리에 멀리 산이 보이는 장소를 오랫동안 찾았다고 했다. ‘입도(入島) 1주년 기념’으로 신랑이 그려줬다는 인물화가 한쪽 벽면을 장식한다. 챙 넓은 모자에 선글라스 차림이다. 검은 안경 너머는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다고 함께 간 ‘비바리’들이 질투 섞인 입방아를 찧는다. 안주인은 2주년이 지났는데 또 그려주지 않는다는 농담으로 방문객들의 ‘썰렁한’ 웃음을 유도했다.

어쨌거나 카페형 건물은 이제 대세가 됐다. 가정집과 공방 그리고 꽃집, 책방, 사무실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짓는 사찰도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중의 취향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누룽지죽으로 주인장과 연못 정원에서 아침을 먹었다. 일본 교토의 사찰 정원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이다. 하지만 그 곁에서 아침을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겐 이 정원이 최고라는 찬사를 연발했다. 마지막 날, 그 자리에서 차를 마시는데 연못 정원 위로 장맛비가 후드득후드득 쏟아지면서 장관을 연출했다. 떠나는 이를 위한 카페 사찰의 피날레 행사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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