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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비키니 미녀보다 제주 해녀

기사입력 | 2020-08-07 11:41


김이재 경인교대 교수, 지리학자

서양에선 남자들 수영 장려
여자들엔 오랫동안 금기시

장비 없이 해저 20m 잠수
제주 해녀들의 당당한 삶

저승 돈 벌어 이승 자식 교육
어떤 페미니스트보다 위대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주장한 프로이트에게 물은 ‘출산, 정자, 오줌’을 상징했다. 어머니 자궁에서 헤엄치는 태아였던 우리는 ‘수영하는 인간(Homo Aquaticus)’이 아닐까? 5주 된 인간의 배아는 물고기와 비슷하고, 인도네시아에는 바다에서 아기를 낳는 종족도 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물속에서 숨을 참고 팔다리를 휘젓는 기본 동작을 구사하다가 생후 2∼3개월이 되면 그 능력을 잃어버린다. 정신과 의사 카를 융은 물을 ‘생명의 탄생, 몸과 마음의 정화’로 해석했는데, 환생을 믿는 힌두교도들은 바라나시 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인더스 강 유역 모헨조다로 유적지에 있는 세계 최초의 수영장은 사제를 위한 의례 공간으로 추정된다.

그리스·카르타고·로마제국의 남자라면 반드시 수영을 할 줄 알아야 했다.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 수영을 못했다면 귀향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과 친했던 로마인들은 목욕을 즐겼고 다양한 수영법을 발달시켰다. 반면 종교가 과학을 압도하던 중세는 수영의 암흑기였다.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을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모세는 신에게 부탁해 홍해를 가른 건 아닐까? 중세의 지도에서 쪼그라든 바다는 괴물이 사는 무서운 공간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자 ‘수영하는 인간’의 본능이 부활했다. 건강과 군사 전략에 도움이 되는 즐거운 취미활동으로 수영을 예찬하는 고대 기록들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 콜럼버스, 제임스 쿡 등 탐험가들은 아시아·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뛰어난 수영 솜씨에 감탄했다. 섬나라 영국에서는 위험한 바다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는 수영을 장려했고, 수영 교재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온천이 유명한 배스(Bath)는 런던 못지않게 화려한 도시로 급부상했다, 브라이턴, 디에프 등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치료용 해수(海水)요법이 도입됐고 리조트가 발달했다. 유럽 전역에서 사교와 치료를 겸한 스파가 재개장했고, 서구의 대도시에서는 수영장 건설 붐이 일어났다.

목욕과 달리 수영은 오랫동안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다. 긴 드레스를 입고 해변을 산책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여성이 수영복을 입게 된 역사는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1907년 호주 수영·다이빙 우승자 애넷 켈러먼은 미국에 도착한 후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동부 해변을 거닐다 풍기문란죄로 체포된다. 몸을 거의 다 가렸음에도 육감적인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돼 유명해졌다. 할리우드로 진출한 그는 전신을 노출한 최초의 여배우라는 명성과 함께 돈도 많이 벌었다. 이후 미국 영화감독들은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피할 목적으로 수영하는 장면을 늘렸고, 수영복을 입은 매혹적인 여배우의 인기도 올라갔다.

여성 수영복 혁명은 1, 2차 세계대전 중 전개된 여성 해방운동과 연계돼 유럽 전역으로 번져갔다. 1946년 프랑스에서는 ‘전쟁 직후라 천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배꼽을 드러내는 획기적인 수영복이 출시됐다. 당시 핵실험 장소였던 태평양 환초의 지명을 따 ‘비키니’로 명명할 정도로 원자폭탄 못지않게 충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위선에 저항하고 자유를 외쳤던 68혁명의 영향으로 수영장은 더 섹시한 해방 공간으로 진화했고 나체 해변까지 등장했다. 최근 미국에선 ‘비키니 입은 여의사는 비전문적’이라는 논문에 분개한 여성 의료진이 SNS에 ‘비키니 셀카 올리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제 수영복은 성차별적인 의료계를 공격하는 무기로 부상했다.

마초적인 서구와 달리 아시아의 바다에선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모계사회 전통이 강한 동남아시아의 여성들은 배를 타고 강과 바다를 누비며 장사를 했고, 한국과 일본에서는 약 1500년 전부터 여성 잠수부가 있었다. 거대한 몸집의 여신 ‘설문대할망’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제주도는 예로부터 ‘수영하는 여성들’의 섬이었다. 해녀(海女) 또는 잠녀(潛女)로 불리는 제주 여성들은 해산물과 진주를 채취했다. 땅이 척박해 농사가 힘든 제주 동부의 구좌읍 성산 지역과 우도는 해녀들의 천국이 됐다. 미역·다시마·우뭇가사리가 풍성하니, 해조류를 먹고사는 전복·소라도 많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양갱·화장품·화약의 재료였던 감태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수입이 증가했다.

제주도에선 ‘딸이 많을수록 부잣집’이 됐고, 바다 밭을 일구는 게 육지 농사보다 나았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해저 20m 이상 잠수하는 해녀들의 보람과 긍지는 대단했다. 뭍에서는 관절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꼬부랑 할머니도 바다에선 돌고래처럼 유연하게 헤엄치는 자유를 누린다. 19, 20세기 부산·진도·독도 등 국내를 넘어 일본·중국·러시아 바다까지 진출할 정도로 진취적이었던 제주 해녀들의 삶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특별하다. 하지만 비싼 전복을 더 채취하려고 물속에서 너무 오래 숨을 참으면 정신을 잃고 죽을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해녀들은 늘 조심하고 긴장해야 한다.

내 연구실엔 추운 겨울, 잠수복을 입고 미역 줄기를 몸에 칭칭 감은 채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해녀 사진이 걸려 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선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전사의 카리스마가 작렬한다. 영화 ‘아쿠아맨’(2018)의 여주인공, 니콜 키드먼보다 더 멋진 여성 캐릭터다. ‘저승 돈 벌어 이승 자식 공부시킨다’는 해녀들의 삶이 그 어떤 페미니스트의 책과 말보다 내게 힘이 됐다. 올여름 세상 시름을 다 잊고 제주도 바다에서 그녀들과 함께 수영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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