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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 베르쿠이젠기후변화글로벌위원회 CEO

기후재앙은 국경 안가리는데… 트럼프 탈퇴는 근시안
貧國, 기후변화 원인제공 적지만 비용은 선진국보다 더 부담
온난화로 가뭄·산불 잦아져… 북극빙하 10년마다 13%씩 감소
코로나는 자연의 마지막 경고… 환경파괴 지속땐 팬데믹 반복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기후변화글로벌위원회(GCA·Global Center on Adaptation)를 이끌며 세계적인 차원에서 기후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패트릭 베르쿠이젠(51) GCA CEO는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은 뭔가를 주고받는 무역 협정이 아닌 ‘단체보험’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등가교환의 방식으로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협약에 소속돼 있는 전 국가가 함께 투자해 집단적인 보호를 받는다는 점에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행정부가 이 협약을 탈퇴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매우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다. 베르쿠이젠 CEO는 “전 세계인에게 위협이 되는 일명 ‘기후 비상사태’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면서 “협약 일부로 남아 있는 것이 곧 미국의 이익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리협약 탈퇴로 미국은 자국의 미래를 포기한 것”이라고 꼬집은 반 전 총장의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오는 9월 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문화미래리포트-기후와 포스트 코로나’ 포럼에서 기후 위기와 환경·보건 정책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인 그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미리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약 탈퇴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난해 11월 이 결정을 유엔에 통보하면서 실행에 옮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오는 11월 실제 탈퇴가 이뤄지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이 협약을 지지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가 된다.

“미국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추측하는 일이 내게 달려 있진 않지만, 나는 이것이 근시안적인 결정이라는 점만은 확신할 수 있다. 200개에 가까운 국가들이 맺은 협약을 탈퇴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캘리포니아의 산불은 더욱 치열하게 타오를 것이며 마이애미와 마러라고의 해수면은 점점 상승할 것이다. 파리협약은 무역협정이 아니다. 한쪽에는 디트로이트·영스타운·피츠버그가, 다른 한쪽에는 파리가 놓여 있어 상호 교환이 이뤄지는 방식이 아니며 관세나 경제 제재 등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파리협약은 이른바 ‘집단보험’이다. 협약 일부로 남아 있는 것이 곧 미국의 이익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는 식량과 수도, 에너지 자원, 교통, 집, 도시, 그리고 사업·재정을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지구상 모든 국가가 당면한 문제지만, 현재의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을 가리는 과정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견해 차이는 분명할 수밖에 없다. 기후 위기 대응 과정에서 개도국 지원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어떠해야 할까.

“가난한 나라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원인 제공은 가장 적게 했음에도 그로 인한 비용은 가장 많이 부담하고 있다. 이를 버려두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집단 도덕성에 오점을 남긴다. 우리는 ‘기후 아파르트헤이트’(climate apartheid·가난한 나라들이 폭염과 굶주림, 분쟁 등으로 고통받는 동안 부유한 나라들은 돈을 지급하고 안정적인 생존을 보장받는다는 개념으로, 유엔에서 빈곤과 인권을 연구하는 필립 앨스턴 특별보고관이 지난해 6월 제시했다)가 가져오는 심각한 부당함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녹색기후기금(GCF)은 개도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필수적인 금융 지원을 제공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속한 GCA는 GCF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로 구성된 ‘V20’(Vulnerable Twenty) ‘기후 취약 포럼’(Climate Vulnerable Forum) 등도 주요한 카운터파트다. GCA는 베이징(北京)의 기후 혁신 허브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 지역에 다수의 사무소를 개설하면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가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12년 독일, 멕시코, 스위스 등과의 경쟁 끝에 GCF 본부를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아시아권에선 최초로, 최대 규모의 국제기구를 들이면서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GCF 본부가 있는 송도와 바다를 맞대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미세먼지에 매년 고통받아 왔다.

“전 세계에서 매년 700만 명이 대기 오염으로 목숨을 잃는다. 정말이지 정신이 번쩍 드는 상황이다. 동북아 지역에선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심각한 환경 위험 중 하나다. 급속한 산업화의 부산물인 대기 오염은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기후변화와 달리 그 치명적인 영향이 즉각적으로 체감된다. 이 빠르고 강한 충격 때문에 전 세계의 대기 오염은 더욱 긴급한 대응을 요구한다. 우리는 기후 비상사태에 버금가는 ‘오염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 두 문제 모두 단순히 그 정도를 ‘완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에 ‘적응’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대기 오염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에 통합적인 적응 솔루션을 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기후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이 조금 생소하다.

“쉽게 말해 디젤이나 바이오매스(메탄·수소로 만든 합성 연료) 등을 덜 태움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시원한’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더러운 연료를 조금이라도 덜 태우고, 불에 타는 쓰레기의 양을 줄이며 자동차 엔진 사용을 줄임으로써 도시의 열섬 현상(난방 시설, 자동차 열기 등 인공 열로 도심 지역 기온이 교외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완화해 나가야 한다. 이런 도시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힘, 즉 기후 ‘회복력’(resilience)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녹지화된 도시는 빌딩으로 빽빽한 도시보다 갑작스러운 홍수에 따른 피해가 작을 것이다. 이를 잘 적용한 예로 2015년부터 중국 내 30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스펀지 도시’(海綿城市) 프로젝트를 예로 들고 싶다. 스펀지 도시란 도심 지역에서 폭우 등으로 넘쳐난 빗물을 재사용하거나 흡수하기 위해 녹지 공원, 수생 식물원, 특수성 포장재, 옥상 녹화 사업, 지하 저수지 등을 도시 설계에 통합하는 구상으로, GCA가 이에 협력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865억 위안(약 16조 원)을 투자한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 스펀지 도시를 600개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시베리아 지역의 기온이 38도를 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 왔다. 이에 대해 얼마나 우려하고 있나.

“더운 날이 더 더워지고, 추운 날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구의 온도가 유례없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가 북극 해빙의 급격한 감소다. 위성 자료가 기록되기 시작한 1978년 이후로 9월 기준 북극 해빙의 평균 범위는 10년마다 약 13%씩 줄어왔다. 특히 내가 태어난 네덜란드는 전체 국토의 30%가량이 해수면보다 낮아 해수면 상승에 따라 생존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댐이나 둑 등 별도의 장치가 없다면 네덜란드의 절반 이상은 물속에 잠길 것이다. 물과의 전투는 네덜란드인들에게 더는 새롭지 않다. 극심한 더위는 가뭄과 산불 등 또 다른 재난으로 이어져 인류와 생태계, 그리고 경제 체제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점에서 공포의 대상이다. 극한의 열은 미국에서 연간 6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다. 허리케인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기후로 인한 재난보다 인명 피해가 크다. 결국, 해법은 더위에 대한 탄력성을 길러내는 것이다. 기후에 특히 취약한 계층을 가려내기 위한 시스템과 냉각·녹색 지붕 설치, 나무 심기,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한 에너지 효율화 등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기후변화 과정에서 각종 전염병이 더욱 쉽게 창궐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우리는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을 치유해야 한다. 우리가 자행하고 있는 제한 없는 환경 파괴가 지속한다면 전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코로나19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에 만들어진 질병의 75%가 야생 동물에서부터 유래한다고 추정했다. 삼림 벌채, 동식물 서식지의 파괴, 상업적 목적을 위한 야생 동물 거래 등으로 인해 전에 없던 병원균들은 인간과 더욱 가깝게 접촉할 수 있게 됐고, 종을 넘나들며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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