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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美대선 3개월 앞 바이든 약진
변수 많지만 트럼프 황혼 기미
10월 ‘美北 깜짝 쇼’ 우려 여전

核폐기 없이 한미동맹만 위험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 압박
文 ‘평화 쇼’ 집착 땐 안보 흔들

도널드 트럼프 시대가 저물 조짐이다. 11·3 미국 대선이 3개월 남은 상황에서 트럼프와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의 지지율은 두 자릿수로 벌어졌고, 공화당 내 반 트럼프 기류도 확연해졌다. 물론 대선까지 3개월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고 ‘10월의 충격’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대선 당락을 판가름하는 위스콘신과 오하이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경합주에서도 ‘트럼프 마법’이 통하지 않고 있다. 24∼27일 개최 예정인 공화당 전당대회는 노스캐롤라이나주가 백기를 드는 바람에 플로리다 잭슨빌로 급히 옮겼지만 코로나19 재확산세로 인해 취소되면서 공화당은 혼란에 빠졌다.

트럼프 시대의 황혼 징후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지난 7월 23일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센터를 방문, ‘공산당 지배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연설했다. 이 자리에서 공산당 체제가 유지되는 한 미국의 대중관여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세계의 단결을 촉구했다. 1972년 베이징(北京) 방문으로 대중 관계 정상화 물꼬를 튼 닉슨의 유산을 기리는 기념관에서 폼페이오가 미국의 대중 외교정책 전환을 천명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트럼프 수행 때 늘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보스에게 충성심을 보여왔던 그가 정권 재창출보다 “다음은 나”라며 자신의 2024년 대선 도전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폼페이오의 마이웨이 행보로 트럼프 단임 가능성은 더 뚜렷해지는 기류다. 천재지변급 상황 변화로 재선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하원 선거 판세를 볼 때 하원은 물론이고 상원도 민주당이 장악할 듯하다. 재선되더라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탄핵 위기를 재차 맞을 수 있고, 민주당이 주도하는 상하원의 견제로 북한과 무리한 거래는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미 대선 전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 집착하며 트럼프에게 올인하고 있다. 여기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최근 언급한 것처럼 “바이든 전 부통령 당선 시 미·북 관계가 풀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조급증이 깔려 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센터 한반도연구소장이 지난달 22일 tbs 프로그램에서 “백악관이 10월 미·북 회담 개최에 희망을 갖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워싱턴에서 드물게 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해온 카지아니스는 “미·북 대화를 보고 싶다면 바이든에게 투표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해 논란이 됐다. 트럼프 재선 당위성을 강조한 나머지 반 바이든적 입장을 펴는 내용이 서울시 예산이 지원되는 라디오에서 방송된 것은 문제다.

문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하며 한·미 동맹을 위협해온 트럼프에게 베팅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미·북 쇼를 위해서다. 문 대통령의 서훈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인사도 남북관계에 정권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자주와 외세배격, 평화통일을 내건 학생운동조직 전대협의 초대 의장 출신인 이인영 의원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한 것도 대북 진정성을 과시하려는 제스처다.

문 정부 바람대로 미·북 정상회담이 열려도 북핵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 김정은은 이미 7·27 노병대회 연설에서 영구 핵 보유 선언을 했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바꿀 때까지 비핵화는 없다는 것이다. 북핵 폐기가 의제에서 빠진 미·북 정상 쇼를 해봐야 한국의 안보만 흔들리게 된다. 그런 만큼 문 정부가 미국 대선전이 본격화하는 이달부터 할 일은 미·북 회담 바람잡기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주독 미군 감축 결정과 같은 돌발 카드로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하지 않도록 하는 리스크 관리다.

미국 민주당은 17∼20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화상 전당대회를 앞두고 발표한 강령 초안에서 “트럼프 시대 훼손된 한·미 동맹의 원상회복 및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북한 비핵화에 대해선 “동맹국들과 조율된 외교 캠페인을 통해 북한의 호전성을 억제하며 장기 목표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식 동맹 폄훼 외교, 독재자와의 톱다운식 외교 쇼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미국 외교 정상화 선언이라 할 만하다. 문 정부도 트럼프-김정은 쇼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트럼프 재선 여부와 상관없이 강력한 동맹을 기반으로 북핵 폐기를 이끌 수 있도록 외교·안보 정책을 바꿔야 한다. 대선까지 딱 3개월, 김정은을 위해 한눈을 팔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