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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한국의 재벌 기업들

기사입력 | 2020-07-31 11:36

이신우 논설고문

현대건설과 막 출범한 현대자동차의 경영주 정주영이 울산 앞바다 미포만에 독(dock)을 지으면서 조선업 진출을 선언한 것은 1970년. 물론 조선에 대한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었다. 그는 무작정 영국의 애플도어 조선소를 찾아가 은행 차관을 좀 주선해 줄 수 없냐고 물었다. 애플도어 회장의 답은 당연히 ‘노’였다. 그러자 정주영은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였다. “이 돈을 보시오. 이것이 거북선이라는 거요. 우리는 이미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었던 실적과 두뇌가 있습니다. 영국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300년이나 앞섰소.” 정주영의 설명에 회장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바클레이즈 은행을 연결해주었다. 현대중공업의 시작이었다.

1983년 2월 7일, 이병철 회장은 도쿄의 한 호텔 방에서 진눈깨비 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반도체 시장에 진출할 것인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를 놓고 밤새도록 고민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수화기를 들고 결단을 전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 해야겠습니다.” 그 유명한 2·8 구상이다.

현대차는 지금 전기차 분야에서 테슬라에 이어 세계 2위의 위상을 자랑한다. 2013년에 세계 첫 수소전기차 생산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 6일엔 수소전기트럭 10대를 스위스로 수출했다. 바로 며칠 전엔 현대중공업 등 우리 조선업이 23조6000억 원 규모의 카타르 LNG선 100척을 수주했다. 한국 조선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임을 입증하는 쾌거였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최강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스마트폰은 미국 애플과 양강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세계에서 전기차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중국·일본뿐이며, 세계 1위인 LG화학을 위시해 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사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4.7%나 된다. 한화의 K9자주포는 세계적인 명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최빈국에서 출발한 우리 기업들은 재벌 3∼4세대 만에 이렇듯 놀라운 기적을 연출하며 세계를 향해 포효하고 있다. 지구촌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신기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신기한 것이 또 있다. 이들 재벌 기업이 국내에 들어오기만 하면 반기업 정서와 온갖 기업 규제 등으로 제대로 기도 펴지 못한 채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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