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절대다수 의석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법안들에 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후속 3법’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항의 끝에 전원 퇴장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의회 정치 전문가인 미국의 전 드폴대 마이클 L 메제이 교수는 ‘의회의 정책형성력’과 ‘의회에 대한 국민 신뢰’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각국 의회 유형을 분류했다. 전자는 어느 정도 행정부의 제안을 수정하고 용이하게 거부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 후자는 의회가 국민으로부터 어느 정도 지지를 받고 있는가를 지칭한다. 미국 의회는 행정부의 제안을 대폭 수정하고 용이하게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대안을 제시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강한 정책 형성력과 국민에게 높은 지지를 받는 ‘능동형’(active) 의회의 전형이다. 한편, 우리 국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행정부에 제한적 수정을 가할 수 있을 정도의 정책 형성력을 갖고 있었지만,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는 상당히 낮은 ‘주변형’(marginal) 의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21대 국회는 출범하자마자 군부 독재 시절의 ‘통법부’로 전락했다. 여당은 청와대가 하명한 입법(立法)과 예산안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정부를 견제·감시하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하는 ‘꼭두각시’ 국회가 됐다. 분명 무(無)법부보다 더 나쁜 것이 통(通)법부다.

집권 세력에게 묻는다. 현 정부는 진정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민주정부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40조, 66조 4항, 101조에는 입법·행정·사법 등에서 삼권분립을 채택하고 있다. 국회법 58조에 따르면, 상임위 안건 심사는 대체토론과 축조심사 및 찬반 토론을 거쳐야 하며, 소위원회에 회부해 심사·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삼권분립 헌법 정신과 토론·조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국회법을 깡그리 무시하는 집권당이 어떻게 민주 세력이라 할 수 있겠는가. 가장 정의롭지 못한 독재자 전두환이 만든 정당이 ‘민주정의당’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분노케 한다.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열풍에 힘입어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였지만 결국 실패했고 정권마저 빼앗겼다. 가장 큰 이유는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닫힌 너희당’이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더불어민주당에는 ‘더불어’가 없고 ‘민주’도 없다. 단언컨대, 여당이 당명과는 반대로 ‘나홀로 독재당’으로 간다면 결코 미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21대 국회는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반드시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여당은 53년 만에 국회를 단독 개원하고, 18개 국회 상임위를 모두 독식했다.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1000억 원의 추경 예산을 단 5일 심사한 후에 단독으로 처리했고, 각종 쟁점 법안들을 야당 불참 속에서 군사 작전하듯이 밀어붙였다. 국회에서 장관이 의원을 호통치고 면박 주는 일도 발생했다. 이렇게 반민주적이고 반의회적인 행동을 하면서 어떻게 협치를 들먹일 수 있는가. 오죽하면 정의당이 “민주당발 법안 처리를 위해 상임위를 당정협의회로, 본회의를 민주당 의원총회로 만드는 행태는 민주주의를 벗어난 것”이라고 비판했겠는가? 2020년 대한민국에서 토론과 합의가 실종되고 위선과 폭주가 판을 치는 검은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은 분명 비극이다. 하지만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누가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반드시 심판하고 응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