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전체
사설
시평
시론
포럼
오후여담
[시평]

‘데이터 시대’개막과 빅브러더 암초

기사입력 | 2020-07-28 11:53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내달 ‘마이 데이터’ 사업 시작
뉴딜에 ‘데이터 댐’ 방안 포함
데이터·水 차이는 주권자 유무

산업과 개인 존엄성 균형 중요
빅데이터-빅모델 결합 바람직
정보 보호 못하면 좌초 위험성


코넌 도일의 소설 속 명탐정 셜록 홈스의 외침이다. “점토 없이 벽돌을 만들 수 없다”는 홈스는 세상을 향해 근거 없이 단정 짓지 말라고 충고한다. 우리는 종종 사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데이터의 뒷받침 없이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숫자, 문자, 음성, 영상, 동영상, SNS 등 각종 디지털 흔적이 모두 데이터가 되는 세상이다. 데이터는 일반 재화와 다르다. 비슷한 동종의 자료가 쌓일수록 또 다양한 이종의 자료가 결합될수록 가치가 급증하는, 규모의 경제성과 범위의 경제성을 가진다. 아무리 사용해도 닳지 않는 내구성이 있다. 데이터는 한 개인의 사용이 타인의 사용과 경합하지도 않고 타인의 사용을 배제하기도 어려운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 손쉬운 복사나 이동이 가능하다. 영원히 잊히지도 않는다. 한번 기록돼 널리 보급되면 일일이 그 많은 데이터 쌍둥이를 다 지울 수 없다.

8월 초부터 본인신용정보관리업, 이른바 ‘마이데이터’ 사업이 시작된다. 정보 주체인 개인이 마이데이터 플랫폼에 데이터를 제공하면 희망 기업은 이를 활용해 서비스를 개발하는 구조다. 관련해서 최근 정부는 한국판 뉴딜사업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데이터 댐’을 소개했다. 댐을 지으면 물을 모아 필요에 따라 쓰고 관리할 수 있는 것처럼 데이터 댐도 짓고 나면 데이터를 모으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데이터는 물과 다르다. 데이터에는 주권자가 있다. 주권자를 무시한 데이터 접근·수집·활용·거래는 자연이 주는 물을 관리하는 치수(治水)와 다를 수밖에 없다. 물과 데이터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데이터 댐이 붕괴되거나 데이터 난리가 일어나는 등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 활성화는 필요하지만, 데이터 댐의 바람직한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선결 조건이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는 필수적이다.

바야흐로 ‘내 손에 내 데이터(My Data in My Hands)’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요즈음 젊은 세대는 TV 프로그램도 모바일로 시청한다. 금융도, 마이데이터 사업도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될 여지는 상당하다. 이 경우 내 모바일에 있는 개인정보와 데이터 댐의 자료 유출입 관계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프로 선수라면 마이데이터의 주체인 개인은 아마추어 선수다. 개인이 자기 자료 제공에 한 번 동의했다는 근거만으로 사업자가 개인 데이터를 과도하게 가져다 온갖 용도로 영원히 사용한다면 이는 타인의 궁박함을 이용한 불공정 거래다. 단기적으로 마이데이터 산업 발전을 촉진할지언정 장기적으론 데이터 산업의 발전을 크게 위축시킨다. 마이데이터 산업이 계속 발전하려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법에는 묵비권도 있고 잊힐 권리도 있지만, 데이터엔 디지털의 속성상 애당초 그런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다. 인간의 위대함은 기술 발전에 발맞춰 관련 제도를 정비해 예견된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 마이데이터 산업의 활성화가 논의되면서 담당 규제기관이나 사업자는 데이터의 사용가치 위주로 논의를 진행시키는 느낌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 우리나라의 마이데이터 산업이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한 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데이터에 극심한 내구성이 있고 잊힐 권리가 부재한 만큼 걸음마 단계에서의 실수는 걸음마를 떼고 나서도 잊히지 않아 영원히 회복 불가능한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데이터 사용 가치에 대한 논의와 함께 데이터 보안, 개인 정보의 침해 방지, 개인의 존엄성(dignity) 및 품격 유지 등을 위한 제반 장치 마련에 대한 논의도 균형을 맞춰 활성화돼야 한다. 운동장이든, 저울이든, 관점이든 기울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데이터 경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데이터를 경제학에 적용하는 필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지금 조심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한 번의 실수 역시 데이터처럼 잊히지 않는다. 개인 정보가 계속 뚫리면 마이데이터 사업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좌초할 수 있다. 마이(My) 데이터가 유어(Your) 데이터가 되고 급기야 아워(Our) 데이터가 되는 세상은 위험천만하다. 빅데이터와 빅모델의 결합은 바람직하지만 빅브러더는 안 된다.

많이 본 기사 Top5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