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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한국여성의전화’는 1983년 크리스천 아카데미 출신 여성 운동가들이 남편에게 폭행당한 여성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최초의 성폭력 상담 단체다. 1986년 직장 내 여성 차별 및 성폭력 상담 창구를, 이듬해에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쉼터를 개설했다. 이후 성폭력 정당방위·청소년 성교육·부부 강간·가정 폭력·이주민 여성 보호 등을 이슈화하고 입법을 지원해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이 남녀 간 권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구조적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1991년 출범했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과 신부에 의한 유아 성폭력, 밀양 집단 성폭력 등을 사회 문제화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도 이 단체다. 피해자를 위한 심리적·법적·의료적 상담을 통해 피해 극복과 일상 회복을 목표로 한다.

국내 여성 운동을 대표했던 두 비정부기구(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성추행당했던 피해자가 그의 변호인과 함께 위력에 의한 성추행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과 22일, 한국성폭력연구소 이미경 소장과 김혜정 부소장,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와 송란희 사무처장은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장의 지속적 성추행과 비서실 직원 등의 방조·무마, 고소 사실 유출,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2차 가해 등을 고발하며 사실 규명과 관련자 처벌 등을 단호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박 전 시장이 국내 시민단체들과 오랜 인연이 있었고, 더불어민주당에 두 단체 출신 현역 국회의원도 있지만,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박 전 시장 장례위원회와 서울시 간부 등이 13일 회견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한국의 시민단체에는 시민이 없고, NGO는 다음정부기구(Next Government Organization)라는 비아냥을 받아왔다. 실제로 진보와 인권을 내걸고 관변단체(Near Government Organization) 역할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진짜 시민단체, 진짜 NGO 역할을 하고 있다. 첫 회견 이후 욕설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훨씬 많은 시민이 두 단체를 응원한다. 용기를 갖고 이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