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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논단]

6·25 바르게 가르칠 국민운동 필요하다

기사입력 | 2020-06-26 11:32

송종환 경남대 석좌교수 前 駐파키스탄 대사

올해는 북한의 6·25남침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대한민국은 북한군의 불시 침략을 받아 수도 서울이 사흘 만에 함락됐고, 1953년 7월 27일 휴전됐다.

소련 붕괴 이후 1992년부터 러시아 측에 의해 공개된 문서들은 6·25전쟁이 스탈린 총감독, 김일성 주연, 마오쩌둥(毛澤東)이 조연한 남침전쟁임을 증언한다. 6·25전쟁은 남한의 북침에 대한 북한의 반격이라고 되풀이해온 옛 소련과 북한 측의 주장이 거짓 선전임이 드러난 것이다.

1997년 7월 14일 자 뉴스위크는 ‘역사의 교훈 제2장’이란 특집기사에서 중국공산당의 공식 기관지 ‘백년조류(百年潮流)’가 지난 40년간 중국공산당이 고수해 온 남한에 의한 북침 주장을 포기하면서 ‘마오쩌둥이 이오시프 스탈린의 수중에서 놀아나 중국에 큰 손해를 끼친 대실수를 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그 후 중국 측 문서를 활용한 마오쩌둥의 6·25 참전 결정 경위와 동기에 대한 연구도 속속 나오고 있다.

공산 국가들의 남침이 역사적 사실로 확인됐음에도 국가보훈처는 지난 5월 중 한국갤럽에 의뢰해 6·25전쟁은 남한, 북한, 남북한, 미국, 소련, 중국 등 어느 쪽이 일으켰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하다가 국민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지난 16일 북한이 남북 화해 협력의 상징이랄 수 있는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말 폭탄’을 거듭하는데도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일부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가 6·25전쟁 70주년 행사를 축소하거나 취소했다.

그러나 6·25남침전쟁 70주년을 맞아 남침전쟁을 조명하는 세미나와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9일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과 자유민주연구원 공동 주최로 ‘6·25전쟁 70주년 회고 반성’ 세미나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됐고, 같은 날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주최로 ‘거시적으로 본 6·25전쟁과 한국 사회’ 세미나가 인천에서 있었다.

지난 20일에는 서울 서초구 흰물결예술극장에서 6·25전쟁 70주년 기념 ‘자유와 지혜 축제’가 개최됐다. 6·25전쟁 개전 초기 북한군 600명을 태운 북한 군함을 부산 앞바다에서 격침한 백두산호의 갑판사관 최영섭(예비역 해군 대령·92세)의 생생한 증언, 2010년 폭침된 천안함 생존모임 회장의 증언에 이어 젊은 가수들의 공연과 자리를 채운 청중의 환호는 오늘날 기울어진 한국의 운동장을 잠깐이나마 잊게 했다.

교회에서도 6·25전쟁 70주년 주일예배에서 은혜 풍성한 교회 목사의 설교도 있고 영락교회에서 구국연합기도회도 열린다. 잡지 등에서 6·25전쟁 70주년 특집도 기획 보도되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10대였던 5명의 소년이 80세가 돼서 영어로 쓴 ‘다섯 소년의 한국전쟁 회고록’ 출간이다. 당시 서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후 미국으로 이주한 5명의 원로가 6·25남침전쟁을 경험한 생생한 기록들이어서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읽을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70년 전에 일어난 일을 겪은 사람도 기억이 흐릿해질 수 있다. 잘못된 교육을 받으면 그 내용은 인간의 뇌리에 잘못 입력되고, 게다가 오랫동안 정치적·사회적 영향을 받으면 참과 거짓의 자리가 뒤바뀔 수도 있다.

언젠가는 실현될 자유민주 통일을 위해 남북한 간에 화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선해야 할 것은 역사를 바로 기억하도록 하는 국민적 운동이다. 그 첫걸음은, 대한민국 국민이 학교와 가정에서 그 후손들에게 70년 전에 있었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도록 하는 교육을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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