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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文대통령 ‘재난 국가주의’ 위험하다

기사입력 | 2020-05-22 11:44

신보영 국제부장

코로나로 실종된 美 대선 경선
트럼프 ‘재난 자본주의’ 추진
유럽 지도자들도 지지율 급등

총선 압승 文은 남 탓할 수 없어
정책 안 바꾸고 독주 땐 치명타
재난 활용 말고 함께 극복해야


미국의 대통령선거 캠페인이 실종됐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21일 현재 미국의 확진자는 154만9052명, 사망자도 9만3214명이다. 4년 전 이맘때쯤 치열했던 경선 레이스도 잇따른 프라이머리(예비경선) 취소로 활력을 잃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5월 말이나 6월 초쯤 후보를 확정하고, 8월 후보 지명 전당대회를 개최하기까지 ‘붐’을 조성하는 식의 대선 공식도 사라졌다. 올해는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열풍’도 없었고, 사실상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사회적 거리 두기 여파에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논란까지 겹쳐 존재감이 확 떨어진 상태다.

덕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사실상 견제 세력이 사라졌다. 재선 여부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에게 달린 셈이다. 오는 11월 대선까지 코로나 방역과 경제회복 성과가 관건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택한 길은 2016년의 데자뷔다. 중국책임론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지도부 때리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남 탓’ 전략이지만, 강도·빈도는 훨씬 세다. 코로나 팬데믹 전후를 의미하는 BC·AC라는 신조어가 생기긴 했지만, 정치영역에선 탈세계화와 포퓰리즘 득세 등 기존 흐름이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도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코로나19는 역사를 바꾸는 게 아니라 미국 리더십 약화나 국제협력 쇠퇴 등 기존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최근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다자주의가 맞닥뜨렸던 도전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의 전형이다. 재난 자본주의는 1999년 캐나다 활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노 로고(No Logo)’라는 책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권력이나 엘리트가 위기를 활용해 반대가 많은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 이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재난지원금 무차별 살포와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 탈퇴 위협, 국제 공급망 자국화 등은 ‘미국 우선주의’를 가속화하겠다는 신호다. 유럽 국가들에서도 유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확진자 2위였던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 지지율은 71%까지 올랐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지지율도 각각 79%, 61%로 고공행진 중이다. 대중의 위기 심리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하자는 여론을 높이며 국정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이는 이들 정상이 기존 정책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5월 초 한때 지지율이 71%까지 치솟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도 글로벌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문 대통령도 수차례 “전례 없는 위기”를 강조하면서 5·18 민주화운동 등 과거사 청산과 전국민고용보험, 남북 철도 연결·비무장지대 평화지역 구상 등을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파 정책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재난 자본주의’보다는 국가의 결정권이 강해지는 ‘재난 국가주의’에 더 가깝지만, 이 역시 국내에서 적잖은 반발과 논란이 있는 사안들이다. 게다가 한국의 하반기 경제는 더 나빠질 전망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이어 미 의회예산국(CBO)까지 경제회복 시기를 2021년 말로 예측하는 데다, 미·중 패권 경쟁도 더 거칠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미·대중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가 올 하반기에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복합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문제는 ‘슈퍼 파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남 탓’을 할 여유를 부릴 수 있지만,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에 실수는 치명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과반 의석을 기반으로 코로나 재난을 활용해 소득주도성장 등 기존 경제정책의 경로를 바꾸지 않고, 과거사 청산 등 이데올로기적 정책 기조를 밀어붙여 전례 없는 위기가 닥친다면 중국 탓, 심지어 동맹 탓까지 하는 트럼프 대통령 흉내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과 정권뿐 아니라 전 국민이 ‘메아 쿨파(mea culpa·내 탓이오)’를 외치면서 가슴을 쳐야 할지 모른다. 국민이 4·15총선에서 압승을 안겨 준 것은 위기를 ‘활용하라’는 게 아니다. ‘극복하자’는 것이며, 여기에는 분명 ‘함께’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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