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전체
야구
축구
농구
골프
[골프와 나]

“하반신 마비 1년만에 ‘기적의 재활’… 클럽챔피언까지 올라”

최명식 기자 | 2020-05-01 10:19

지난달 20일 경기 여주의 360도컨트리클럽 1번 홀에서 스윙연습을 하는 김영철 대표를 그의 아내가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달 20일 경기 여주의 360도컨트리클럽 1번 홀에서 스윙연습을 하는 김영철 대표를 그의 아내가 카메라에 담았다.

김영철 ㈜사람과환경 대표

8년전 3층 건물서 추락해 중상
“이 악물고 재활하면 골프 가능”
골프 동료였던 주치의 한마디
초인적 힘 발휘 재활…또 재활
병원서 600만불 사나이라 불러

퇴원 1주일 뒤 주치의와 라운드
260m 펑펑… 비거리 늘어 놀라


김영철(53) ㈜사람과환경 대표는 골프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골프 덕분에 12m 높이의 건물에서 추락해 온몸이 으스러지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골프가 그에겐 은인인 셈이다.

지난달 23일 강원 원주시 ㈜사람과환경 사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에게 8년 전 사고와 눈물겨운 재활 스토리를 전해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1970년대 후반 방영된 미국 TV드라마 ‘600만 불의 사나이’처럼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 초능력자가 된 것같이 여겨졌다.

김 대표는 충북 괴산 출신. 하지만 20년 전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곳 원주에서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건물 외벽을 청소했다. 지금은 기업의 경비, 단순노무 등 인력관리를 하고 있다. 깔끔하고 완벽한 성격 덕에 단골기업이 많다. 한창땐 700∼800명을 고용, 연 매출 150억 원을 이뤘다. 지역 내에서 ‘성공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김 대표는 8년 전 작업현장에서 관리·감독 업무를 하다 3층 건물 옥상에서 추락했다.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갔다. 성한 곳이 없었다. 척추와 팔다리 양쪽 뒤꿈치는 으스러졌고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이었다. 온몸에 깁스를 하고 1년 가까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3명의 의사가 동시에 수술을 집도했다. 척추를 비롯해 ‘칼’을 대지 않은 부위가 없었다. 3주 만에 정신이 들었다. 주치의가 보였다. 주치의는 그와 같은 골프 멤버였다. 주치의가 온몸에 깁스를 한 그에게 던진 첫 말은 “이 악물고 재활하면 좋아하는 골프를 칠 수 있을 것”이었다. 김 대표는 골프를 다시 칠 수 있다는 말에 힘을 냈다. 초인적인 힘으로 재활에 열중했다. 치료사가 10분만 하라고 하면 30분을 버텼다. 이렇게 1년을 병원에서 보냈다. 병원에서 그의 별명이 바로 ‘600만 불의 사나이’였다. 그는 병원에서 퇴원한 지 일주일 만에 주치의와 라운드했다.

재활 후 놀랍게도 김 대표의 비거리는 늘었다. 자신보다 비거리가 더 나는 사람과 대결한 뒤 힘을 싣는 연습을 했더니 거리가 늘었다. 한 달쯤 지나니 드라이버로 250∼260m까지 보냈다. 근육이 땅겨 스윙 폭이 줄면서 불필요한 동작이 사라졌다. 골반이 회전하면서 몸통 스윙을 하니 임팩트 때 파워가 더욱 실렸다. 몸의 꼬임이 확연히 달라지니 가속이 붙었다. 김 대표는 사고 직전 언더파까지 쳤던 아마추어 강자였다. 그는 골프 입문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70대 타수에 진입하더니 2년도 안 돼 언더파까지 기록했다. 골프에 한창 물이 오르던 시기에 사고가 났던 것. 사고 직전 베스트 스코어는 2언더파 70타였다. 강원도민체전 원주시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원주에 정착한 지 5년쯤 지나 골프채를 잡았다. 어렸을 때 몸이 허약했던 탓에 집단 괴롭힘을 당하면서 이를 극복하려고 태권도를 2년간 배웠고, 공인 3단이 됐다.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성격도 바뀌어 자신감이 붙었다. 골프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배웠다. 골프 시작 1년도 안 돼 지인들이 멀리하는 눈치였다. 너무 잘 쳤기 때문에 경계했던 것. 김 대표가 골프를 새롭게 깨친 것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김효주의 훈련을 지켜보면서부터다. 김효주가 중학생 때 배우던 연습장에 함께 다녔다. 김 대표는 김효주가 비거리와 힘을 키우기 위해 폐타이어를 야구방망이로 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역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훈련했고, 이는 큰 도움이 됐다. 당시 70대 중반 정도의 기량이던 김 대표는 이때 비거리가 늘었고 실력도 향상됐다.

김 대표의 골프 인생 15년은 사고 전과 사고 후로 나뉜다. 사고 후 8년이 지난 지금은 골프기량이 무척 향상했다. 김 대표는 2017년 처음 출전한 미드아마추어대회 브리지스톤배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해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미드아마추어연맹 회장배에선 첫날 2언더파를 쳤고 마지막 2일째 전반까지 4언더파로 선두를 달렸지만, 후반에 급격한 난조를 보이며 79타를 치는 바람에 10위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첫해에 미드아마추어 1년 성적을 집계한 포인트에서 톱10 상을 받았다. 김 대표는 아직 미드아마추어 우승이 없지만 2018년 360도 클럽 챔피언전에서 이틀 합계 이븐파를 쳐 우승했다. 지금까지 미드아마추어 최고 성적은 지난해 전남 승주CC에서 열린 순천만대회 준우승이다. 김 대표는 “학창시절 이래 40년 동안 1등은 처음이었다”면서 “내게 자존감을 안긴 건 골프”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홀인원은 딱 한 번. 2016년 태국으로 부부동반 여행을 떠나 부라파골프클럽 A코스 6번 홀에서 황홀함을 경험했다. 사이클 버디는 4차례, 이글은 한 라운드에서 2개까지 작성했다.

김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미드아마추어대회가 취소돼 실전 기회가 확연히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요즘엔 아내와 함께 라운드를 나가 서너 차례 언더파를 기록할 정도로 여전히 물이 올랐다. 하루빨리 대회가 재개돼 미드아마 멤버들과 다시 어울리기를 바라고 있다. 김 대표는 “삶처럼 골프에서도 이글이나 버디보다는 보기에 처한 위기 상황을 극적인 파로 막아냈을 때 성취감이 더 높아진다”면서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다가가는 선배나 동료로, 호감이 가는 골퍼로 남고 싶은데 그러려면 그만큼 더 베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많이 본 기사 Top5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