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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 패권주의 환멸이 ‘진보의 분열’ 불러… 親文 카르텔 붕괴

허민 기자 | 2020-03-26 10:57


■ 대한민국 진보, 왜 분열하나

文정권, 반대파 배제로 의제설정 독점하고 언론·여론 동원해 3차원적 권력까지 확보… 순혈주의 장기집권 꾀해
병적 自己愛와 ‘무오류성’에 빠진 집권세력에 맞서 정통 민주화세력 비판·저항… 진보 단일대오 무너져


최근 진보의 분열이 급격하게 진행 중이다.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놓고 정통 민주화운동 출신과 친문(親文) 그룹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집권여당이 비례 연합정당 창당 과정에서 과거 ‘원탁회의’를 이끌었던 민주화운동 원로 그룹을 배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3일 공개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당인 더불어시민당의 공천은 친문 성향 후보들을 대거 앞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기득권 친문 패권주의 세력에 대한 정통 진보주의자들의 환멸과 저항이 진보 분열의 본질이라는 분석이 점차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내전으로 돌입한 진보 진영

“적(敵)은 혼노지(本能寺)에 있다.” 16세기 전국시대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家臣)이 교토(京都)의 혼노지 사원에서 전쟁을 지휘하던 주군에게 반란을 일으킬 때 했던 말이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적은 우리 안에 있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인용됐다.

민주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당 창당 과정에서 과거 원탁회의 출신 원로를 배제한 것은 ‘혼노지의 변’을 연상케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처리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4+1’ 패스트트랙의 주역이었던 정의당도 사실상 토사구팽을 당했고,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민중당도 파트너에서 제외됐다. 민주당은 원로들이 중심이 된 정치개혁연합(정개련)을 비례당 파트너에서 배제한 이유에 대해 ‘지분 요구를 너무 많이 한다’ 등의 말을 흘렸다. 민중당을 겨냥해서는 “극우 정당, 극좌 정당, 이런 데를 같이 하자고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정개련 측에서는 민주당이 사회 원로들을 비례당 창당의 배경으로만 활용한 뒤 배신했다며 화를 참지 못하는 분위기다. 원로들 사이에서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을 계승한 정당이 아니다”라는 격한 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의 비례당인 시민당을 이끄는 최배근 공동대표는 “시대 변화에 뒤처진 일부가 자신이 부정하던 반대 진영 사람들보다 더 추하게 변해간다”고 반박했다. 이쯤 되면 진보 간 갈등을 넘어 내전 수준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시민당 비례대표 공천 결과 친문의 농도는 한층 더 짙어졌다. 후보 34명 중 소수정당 소속은 2명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친문으로 분류된다. 민주당의 급조된 비례당 파트너로 참여했다가 의석을 받지 못한 일부 군소정당도 “민주당에 배신당했다”며 이탈을 선언했다.

◇친문 집권세력과 권력론

친문 인사들이 주도한 또 다른 비례 전담 정당인 열린민주당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 등 친문·친(親)조국 성향 인사 다수를 비례대표 상위 순번으로 선출했다. 열린민주당은 열렬 친문 유권자들의 ‘전략적 분할 투표’를 기대하고 있고, 민주당 지도부는 겉으로는 이들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내심 여당의 파이를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시민당이 민주당의 제1 위성정당이라면 열린민주당은 사실상의 제2 위성정당인 셈이다. 총선 이후 친문 노선을 공유한 민주당, 시민당, 열린민주당이 범여를 구성하는 건 필연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어떻게든 친문 권력을 유지·발전시킨다는 발상이다.

이들 사이에는 친문 권력에 맞서거나 자신의 노선과 조금의 차이를 보이는 그 누구도 맞서 싸워야 할 ‘악’으로 여기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은 진보의 도덕적·정신적 파탄”이라고 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 교수가 파탄이 났다고 강조한 진보는 구체적으로 친문 집권세력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 민주당 소속의 한 중진 의원은 “최 교수의 생각은 기득권력자가 된 친문 세력이 보수 진영에 대해서는 물론 진보 진영 내에서조차 ‘친문 순혈’과 ‘비(非)문 잡종’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권력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특히 대통령 최측근인 조국을 친문의 대표적 이론가로 거명하면서 “카를 슈미트 이론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슈미트는 정치의 본질을 우적(友敵) 간 권력투쟁으로 본 히틀러 시대의 법학자다.

집권세력의 다양한 권력 장악의 단계와 수법은 정치학자 스티븐 룩스의 ‘3차원적 권력론’ 모델로 설명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권력의 기본은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제하는 능력(1차원적 권력)이다. 하지만 권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점차 특정 의제를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하거나 배제하는 능력(2차원적 권력), 권력자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원하는 것으로 인식시키는 능력(3차원적 권력)으로 발전한다. 1차원적 권력은 눈에 보이는 원초적 권력, 2차원적 권력은 높은 수준의 의제 독점 권력, 3차원적 권력은 선전선동으로 대상을 세뇌하는 구성적 권력이다. 정권 획득을 통해 1차원적 권력을 챙긴 친문 집권세력은 보수 세력은 물론 진보 진영 내 다양한 목소리까지 배제·제거함으로써 2차원적 권력을 챙기게 됐고, 언론과 여론을 동원해 3차원적 권력까지 거머쥐면서 패권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다양성 봉쇄하는 친문 패권

정통 진보 세력은 이처럼 다양한 차원의 권력을 장악한 채 일체의 다른 주장과 견해를 배제하는 패권주의 세력에서는 정상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진보의 분열은 그런 면에서 순혈주의에 빠진 친문 세력에 대한 정통 진보주의자들의 ‘디질루시옹(disillusion)’, 즉 환멸에서 비롯됐다. 친문과 반문(反文)의 해리(解離) 현상은 과거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해온 진보 지식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격렬하게 진행됐다. 특히 조국 사태가 진보의 분열을 촉진시켰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지지율이 반토막 난 정의당에서도 “조국 장관 임명 때 단호히 싸웠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친문의 최종적인 목적은 ‘세습권력 만들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친북·주사파 운동권 출신, 전교조·참여연대 등 진보 사회단체로 구성된 권력 카르텔이 ‘진보 장기집권’이 아닌 ‘친문 장기집권’을 위한 권력 세습을 꾀하는 과정에서 진보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룹과 부딪히게 됐다는 것이다. 친문 세력과 민주화운동 원로들이 충돌한 건 이런 지점에서 이해된다.

친문 집권세력의 사고방식에는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이 깔려 있다. 즉 자신들이 정의와 선, 진리와 도덕을 독점하고 있다는 의식이다.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은 병적인 자기애(自己愛), 나르시시즘 의 근원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분석했듯 나르시시즘은 방어적인 자기 팽창, 대상관계의 결여를 포함한다.

일각에서는 진보의 분열을 시대사적 조류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1970∼1980년대 군사 정부에 대항하며 ‘민주 대 반민주’의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세력이 이후 수십 년간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진화론류의 이런 단순하고 피상적인 관찰로는 대한민국의 변종 진보를 해석해내지는 못한다. 오늘날 진보의 분열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형성이 아니라, 집권세력에 의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봉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내전 돌입한 진보 진영 : 정통 민주화운동 출신과 친문 그룹 사이에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나 조국 사태를 놓고 분열. 비례당 창당 과정에서 과거 원탁회의를 이끌었던 원로그룹을 배제한 건 ‘혼노지의 변’을 연상케 함. 진보 분열은 사실상 내전 상태.

진보 분열의 본질 : 친문 세습권력을 만들려는 순혈주의·패권주의 그룹과 진보주의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그룹의 갈등이 그 본질. 집권세력에 정상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움. 하지만 이들은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에 차 있음. 이는 병적인 자기애, 나르시시즘의 근원임.

집권세력의 권력론 : 집권세력은 정권 획득에 이어 의제 독점 능력을 거머쥐고 언론과 여론을 동원해 상대를 세뇌시키는 구성적 권력까지 챙기는 등 패권주의를 강화함. 진보의 분열은 시대적 조류가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봉쇄에서 나타나는 것임.


■ 용어 설명

원탁회의는 2011년 7월 26일 과거 민주화운동 원로 중심으로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를 구성한 게 그 효시임. 진보 진영의 내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장외에서 장내로 진입해 조정자 역할을 해옴.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의 미모에 빠져 죽음을 맞은 나르키소스라는 이름에서 유래.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에서 자아의 중요성이 과장돼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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