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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나]

“코스 설계하려면 청바지 3벌 닳도록 산 오르내려야”

최명식 기자 | 2020-03-20 10:31

류창현 대표가 지난 10일 경기 의왕시 유골프엔지니어링 집무실에서 자신이 설계한 라오스의 라오CC를 설명하고 있다. 류창현 대표가 지난 10일 경기 의왕시 유골프엔지니어링 집무실에서 자신이 설계한 라오스의 라오CC를 설명하고 있다.

류창현 ㈜유골프엔지니어링 대표

골프장 조경전문가 입사 뒤
코스 설계에 흥미느껴 독립

현장에서 갖은 고생 밥먹듯
인허가 받는데만 1년 반 이상

“자연지형 살리는게 가장중요
페블비치 같은 코스 만들 것”


골프장 코스 설계가인 류창현(53) ㈜유골프엔지니어링 대표는 미국 페블비치와 같은 천혜의 환경을 살린 토너먼트 코스를 만드는 게 꿈이다.

지난 10일 경기 의왕시 유골프엔지니어링 집무실에서 류 대표를 만났다. 류 대표는 1995년 삼성 에버랜드에 골프장 조경전문가로 입사한 뒤 골프장 코스 설계 전문가로 변신했다. 류 대표는 에버랜드에서 8년쯤 일하면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코스 설계 사업에 흥미를 느꼈고 그 뒤 회사에서 나와 독립했다. 독립하자마자 9홀짜리 코스설계 의뢰가 왔다. 하지만 설계를 해주고도 골프장 인허가가 나지 않아 ‘1호’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다. 류 대표는 국내에서 골프장 코스 22개를 설계했다. 류 대표가 설계한 곳 중 경북 군위의 꽃담CC, 경북 영천의 골프존 청통CC가 대표적이다. 류 대표는 “청바지 3벌은 닳아야만 코스가 탄생한다고 할 만큼 코스 설계는 ‘극한 직업’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골프장 인허가를 받는 데만 1년 6개월 이상 소요되고 현장의 가시덤불을 헤치고 산을 수십, 아니 수백 번 오르내려야 한다. 현재 코스설계가협회에 가입된 회원이 20명 수준에 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골프장은 포화 상태여서 30년 넘은 코스의 리노베이션 외에는 신규 수요가 적다. 이로 인해 국내 코스 설계가의 해외 진출 사례가 늘고 있다.

류 대표의 해외 첫 작품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건설한 라오CC였다. 류 대표가 설계와 시공까지 맡았다. 필리핀에서 행정 도시로 건설 중인 뉴클라크시티 내 36홀 규모 골프장의 설계와 시공도 맡고 있고, 얼마 전 러시아의 사할린에도 27홀 설계를 마치고 현재 9홀만 운영 중이다. 류 대표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동남아시아 지역이 좋은 시장이 될 것”이라며 “20∼30년 동안은 이곳이 핫 플레이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코스 리노베이션 시장이 점차 활성화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류 대표는 “코스 설계를 할 때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는 데 포인트를 둔다”고 말했다. 있는 그대로, 필요한 부분만 코스로 사용하면 가장 자연스러운 코스가 되지만 허물고 복원하면 절대 자연적인 모습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게 류 대표의 설명이다. 류 대표는 이를 위해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를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지 고려하고 설계도를 그린다. 시공하면서 조금씩 보완해 자연지형에 어울리는 코스를 조성한다. 류 대표는 “이런 과정에서 골프장 오너를 설득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기에 오너의 ‘고집’과 코스 설계가의 ‘철학’이 상충하는 게 설계 시 가장 힘든 점”이라며 “외국에는 코스 설계가의 의사가 전적으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오너의 고집으로 탄생한 코스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코스 설계를 위해 많이 보고 다니며 많은 경험을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몇 해 전 에피소드. 휴가를 내 아내와 함께 말레이시아의 혼빌리조트를 찾았다. 이곳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가끔 찾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가서 보니 명성과는 달랐다. 밀림 한복판에 있는 최종 목적지까지는 지프로 비포장 길을 30분쯤 달려야 했다. 해발 1000m 고지대여서 기후는 쾌적했지만,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 모든 것을 잊고 힐링하거나 골프에만 집중하기엔 제격이었고 그 역시 매일 아내와 2인 플레이로 해 질 녘까지 골프만 쳤다. 여행 마지막 날 러프 지역에서 공을 찾는데 동굴에서 갑자기 늑대보다 큰 왕도마뱀이 덤벼들어 혼비백산해 2홀을 도망간 기억도 있다. 맹수가 없다는 얘기를 들고 안심했다가 혼쭐이 났다.

류 대표의 베스트 스코어는 74타. 2015년 5월 청통CC 개장행사에서 골프장 오너와 시구식을 마친 뒤 첫 라운드에서 작성했다. 류 대표는 요즘 평균 핸디캡 8을 놓지만 70대와 80대를 절반씩 오갈 만큼 골프가 가장 즐거울 때다. 삼성 에버랜드 입사 뒤 안양CC에서 골프를 배웠던 류 대표는 첫 70대 스코어를 10여 년이 지나서야 작성했다. 류 대표는 “이젠 여유도 생기고, 남의 플레이도 눈에 들어오며, 나름대로 전략을 세울만한 수준이 됐다”고 자평했다. 코스 설계가로 독립한 이후 전직 직원 초청 행사 때 안양CC ‘벚나무 홀’로 불리는 2번 홀(파4)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이 그대로 홀로 들어갔다. 퍼팅 이글은 많았지만, 칩인 이글은 처음이었던 것. 류 대표는 골프를 배운 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비거리. 드라이버로 평균 220m를 보내고 잘 맞으면 230m까지도 나간다. 비거리가 줄지 않은 것은 저녁 시간에 짬을 내 스크린 골프를 자주 쳤기 때문이다.

류 대표는 “주말 골퍼들은 코스에 나서면 스윙에만 급급한데 코스 설계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서 “스윙 전 체크 포인트만 기억하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기 능력을 객관적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조언도 건넸다. 류 대표는 “홀의 거리와 벙커, 해저드의 배치를 먼저 본 뒤 넘겨 칠지, 끊어 칠지는 ‘최상의 결과’가 아닌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두고 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래야 더 큰 낭패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류 대표는 특히 유명 프로가 설계한 코스는 대개 벙커 탈출이 어렵고, 워터 해저드도 대부분 장타로 극복하도록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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