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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혜 “성폭력 폭로 ‘미투’, 순기능 살리되 여론재판은 경계해야”

최지영 기자 | 2020-01-23 10:28

지난 13일 오후 성범죄 피고인 재판의 변호를 마친 이승혜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 본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성범죄 피고인 재판의 변호를 마친 이승혜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 본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신창섭 기자


■ ‘性범죄 균형잡힌 시각 강조’ 이승혜 변호사

최종 법적처분 기관인 검찰과 법원의 판단도 존중돼야
‘성인지감수성’ 판결 취지 옳지만 ‘피고인 이익 원칙’ 넘어선 적용은 곤란
성폭력은 권력 불균형에 의한 것…‘男 가해-女 피해’ 이분법에 갇혀선 안돼


“피해자를 대리하든 가해자를 변호하든 그들 각자의 간절함 정도가 절절하게 느껴져요.”

‘성범죄 전문 변호사’ 이승혜(44·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을 맡으면서 의뢰인이 피해자든 가해자든 간에 당사자들의 고통이 전해져 괴로울 때가 많았다”면서 이같이 고백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말 억울한 사람을 만나면 그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용서받기를 갈구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해주시길 매일 밤 기도한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이 변호사에게는 항상 ‘성범죄 전문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의 사무실 한쪽에는 대구지검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받은 ‘공인전문검사’ 인증서가 걸려 있었다. ‘공인전문검사’는 대검찰청이 여러 수사 분야를 나눠 일정한 자격요건을 획득한 검사에게 공식적으로 자격을 인증해 주는 제도다. 이 변호사는 일명 ‘블루벨트(파란띠)’에 해당하는 2급 자격을 부여받았고 이 경력을 바탕으로 검찰을 나와서도 성범죄 사건을 주로 수임해 왔다.

여성이자 성범죄 전문 변호사로서 자칫 ‘가해자’에게까지 온정적 시각을 가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만 이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균형된 시각’과 ‘당사자들의 절박함’에 천착해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이 있었다. 성범죄가 한번 일어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에 범죄 그 이상의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왜 성범죄가 줄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문제 제기도 빼놓지 않았다.


우선 이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자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합당한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가해자도 엄한 처벌 수위와 여기에 가중되는 신상정보 등록 등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소개했다. 그는 “가해자는 자신에 대한 분노, 후회 등 극심한 패닉(공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무고로 가해자로 몰렸다고 주장하는 피고소인의 경우 누명을 벗지 못하고 성범죄자 낙인이 찍히는 것에 대해 절절하게 항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 절박한 상황에서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며 자신에게 의지해 오기에 각별한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검사로서 사건을 대할 때와 다른 점도 이 같은 부분이라고 한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 사범이 “범죄를 저지른 후에도 자신이 행한 범죄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성폭력 사범은 흉악무도하고 인면수심에 포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은 비율로 보자면 오히려 소수라고 볼 수 있고, 대부분 지극히 평범한 이웃이고 동료였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성범죄 자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가 다른 범죄 피해자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가해자 역시 형도 무겁게 받고 취업제한이나 신상정보 등록 등 다른 사건 피의자나 피고인보다 더 중한 제재를 받는다”며 “성폭력 사건이 한번 일어나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삶의 평온이 깨진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범죄를 생각하면 흔히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대립 구도에 갇히기 쉽다.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는 보통 남성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일종의 ‘편견’ 일수도 있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은 힘의 균형이 무너진 곳에서 발생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로만 바라볼 사안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남녀 간 힘의 불균형에 따른 성폭력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점점 더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성별을 따지기 전에 인간의 보편적 문제, 권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과 예방’ 모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인 이춘재를 언급하며 “여러 차례 성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성적 욕망에 대한 절제가 안 되는 사람”이라며 “가해자 스스로 제어가 안 된다면 국가가 개입해 강력하게 제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어깨동무해 고소당하는 경우, 혼재된 성 의식의 차이와 오해로 빚어진 신체 접촉으로 인한 강제추행의 경우에도 강간 등의 중범죄와 같은 성범죄자의 낙인을 찍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안에 따라 중한 처벌보다 교육을 통해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사건의 대법원 판결 이후 회자되는 ‘성인지 감수성’(성별 간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평소에 성차별적인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과 관련해서도 그는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판결의 취지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반응이나 입장이 모두 같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즉각 신고, 또는 고소하지 않거나 바로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밝힌 ‘성인지 감수성’의 취지는 옳다고 보지만 적용되는 과정에서 그 취지가 과도하게 교조적으로 적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합리적 의심의 원칙’ 또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원칙’을 뛰어넘어서는 곤란할 것”이라며 “피해자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모두 용인되거나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희정 사건을 기점으로 확산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현상에 대해서도 이 변호사는 공정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미투 운동이 지향하는 가치를 존중하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을 성범죄로 규정해 순기능은 살리되 여론 재판으로 먼저 상대방을 공격하는 식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 제기만으로 밟힌 누군가의 명예는 한번 밟히고 나면 회복이 어렵다”며 “최종 법적 처분 기관인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성범죄의 불법촬영(일명 ‘몰카’)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반 형법에서도 타인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선고된 ‘레깅스 판결’(남성이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피해 여성의 하반신을 8초간 동영상으로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선고)과 관련해 “레깅스 입은 모습을 특별히 부분적으로 강조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 그대로 촬영한 것이라면 대법 판례 취지에 비춰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6년 1월 ‘지하철역,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치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한 사례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특정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니라 일반 시야에서 통상적인 방법으로 촬영했다면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부적절하다는 선을 넘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이 변호사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정도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게 맞는지, 노출 정도가 심한지, 특정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부각했는지, 촬영 장소가 공적인 장소인지 사적인 장소인지 등을 종합해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건 하나에 인생이 달려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이들에게는 변호사의 도움이 절실해요. 누군가 제 말 한마디를 듣거나 면담을 해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보람은 없겠죠.” 그는 매일 간절한 의뢰인들을 보면서 이렇게 다짐한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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