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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자서전은 훌륭한 유산

기사입력 | 2020-01-17 12:17

이훈구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학창시절·직장생활·결혼생활…
어느 생활이 삶의 평가 좌우할까

자식과의 관계·원만한 부부관계
평가 긍정적이어야 황혼 만족

어릴적 추억과 자신의 삶 회고
객관적 자서전 써보면 어떨까


이제 한 살 더 먹었으니 올해 나이 팔순이다. 이만큼 살다 보니 미래를 내다보기보다는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자주 회상하는 것은 어렸을 때 기억이다. 강에서 멱 감다가 죽을 뻔했던 일, 여치를 잡으러 산중을 헤매던 일, 장마철에 소쿠리를 논바닥에 쑤셔 박고 미꾸라지를 잡던 일이 마치 어제였던 것처럼 주마등으로 스쳐 간다.

어린 시절 추억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늙어 회고할 추억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과거 우리처럼 많은 추억을 쌓지 못할 것이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학교와 학원을 개미 쳇바퀴 돌듯 살아가기 때문이다.

청소년기, 성인기, 중년기의 일들을 가끔 회상하곤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일은, 대학입시 합격자 방(榜)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던 순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던지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내쳐 여기에 나의 지나온 생활사를 소개하려는 게 아니다. 그 대신 나의 삶을 회고하고 이를 평가해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기 삶을 나름대로 평가해 보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족생활, 학창시절, 결혼생활, 직장생활, 은퇴생활 등등이다. 그런데 이 여러 가지 생활 가운데서 어느 삶이 제 인생을 스스로 평가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직장생활이다.

왜 직장생활의 만족이 중요할까? 인생 전성기에 우리는 대부분의 하루를 직장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생활에 만족했는데, 대학에서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경험에 비춰 보면 대학 전공은 자기 적성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지, 수능 성적에 따라, 또는 부모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싱글족이 아니라면, 결혼생활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이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되는 때는 은퇴 이후다. 노부부는 하루 종일 머리를 맞대고 살기 때문에 서로 만족해야 편안하고 오래 산다. 부인에게 황혼이혼을 당한 노신사가 적지 않다. 이혼당하는 사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남편이 과거처럼 독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은퇴 후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자식과의 관계도 우리 삶에 있어 만족의 근간이 된다. 흔히 사람들은 “자식 농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우리 주변에, 자신은 크게 성공했는데 자식들이 학업·사업·결혼에 실패한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식들이 방황하고 실패하는 데는 자식 탓도 있겠지만 부모 탓도 크다. 어릴 때 자식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부모가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면 자연히 그 자식들도 착실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은퇴 후 생활을 잘 영위하는 것은 장수의 비결이다. 은퇴 후 생활은 우리에게 삶의 여유를 제공하고 그간 추구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이며 봉사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대개의 은퇴자는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나는 교수생활에 만족해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는 한 친구를 나는 부러워하고 있다. 그는 국전 심사에 뒤늦게 통과한 ‘늦깎이’ 화가다. 아직도 그는 화필을 쥐어 잡고 매일 그림에 몰두한다.

오늘날은 ‘100세 인생’도 넘어 ‘120세 인생’이라고 한다. 우리가 정년을 60세로 친다면 은퇴자는 삶을 아직 반밖에 살아 보지 못한 것이다. 120세 인생을 풍요롭게 살려면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의미가 크다. 이 평가가 긍정적으로 채점되면 황혼기를 만족하며 보내고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반대로, 부정적인 결과를 얻으면 만회하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나 만회할 기회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좌절하고 후회로 생을 마감한다.

개인이 삶을 회고하고 이를 글로 쓴 것이 자서전이다. 나는 유명한 인물의 자서전을 많이 탐독했다. 내가 좋아하는 전기 작가는 월터 아이작슨이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하트마 간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저술했다. 그는 전기를 쓸 때 고인을 대상으로 했다. 단 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잡스다.

잡스가 자기의 자서전을 저술해 달라고 아이작슨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생존 인물의 자서전은 객관적으로 쓰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듭된 잡스의 요청에 아이작슨은, 자료 수집을 위해 면담할 사람은 자기가 선정하고 책의 출판은 잡스의 사망 후에 한다는 약조를 받아낸 후 잡스 자서전을 저술했다.

잡스는 미국 여대생과 외국인 사이에 태어난 혼외자다. 그는 입양돼 양부모에게서 자랐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내 자진 퇴학하고 컴퓨터 조립회사를 설립했다. 마침내 그는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는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단점도 많았다. 회사에서는 독재자였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한 치의 가감 없이 기술된 그의 자서전은, 잡스가 만든 애플 컴퓨터가 세상을 뒤흔든 것처럼 전 세계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나라에도 위인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위인전은 대개 진솔하지 않다. 위인의 위대한 업적만 나열했을 뿐 그의 잘못은 철저히 엄폐돼 있다. 그러나 위인의 잘못은 오히려 독자에게 친근감을 준다. 위인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란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정말 객관적인 자서전을 한 번 써보면 어떨까? 자손에게 좋은 유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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