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인물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포스트 휴먼은 단지 과학 기술의 세례를 받은 슈퍼히어로인가?

기사입력 | 2020-01-14 11:23

변영근 작가 변영근 작가


A : 인간 생명 넘어선 생성력으로 지구의 새로운 유대 만들어야

(19)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1954~)

‘아이언맨’은 진보된 인간 ?
인간 신체 강화라는 점에서
휴머니즘 계몽적 유산 계승

게놈·바이오 하이브리드 등
자본주의 시장서 신체는 상품
포스트 휴먼 轉回 장소이기도

다양한 타자와 긍정적 연대
인류를 긍정적으로 재발명할
포스트 휴먼 선취 필요성 주장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신체 일부를 기계화해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포스트 휴먼’은 이렇듯 과학 기술의 세례를 받은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포스트 휴먼으로서 슈퍼히어로는 신체 개조와 지능 증강으로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지적·물리적 능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보통 인간의 신체로는 불가능한 영속적 자기 보존을 실현한다.

오늘날 크게 유행하는 슈퍼히어로 장르는 포스트 휴먼을 질병, 노화, 죽음마저 뛰어넘는 존재이자 ‘인간 이상의 인간’으로 새롭게 창조된 존재로 여기게 한다. 역사적으로 한계 없는 인간에 대한 갈망은 1818년 영국에서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죽음을 극복한 존재를 끝내 탄생시켰다. 하지만 정말로 포스트 휴먼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보다 진보한 인간을 의미하는가?

◇인간 실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포스트 휴먼

이탈리아 출신의 페미니스트 철학자 로지 브라이도티는 대표작 ‘포스트 휴먼’에서 인간의 능력을 강화해 인간 중심주의의 패권을 강화하는 시도가 포스트 휴먼적이라기보다 실은 휴머니즘(humanism)의 이상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근대적 패러다임의 근간을 이루는 휴머니즘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를 인간(human)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근대적 인간이라는 개념은 데카르트의 코기토, 자유 의지의 실천 행위자, 기독교 문화권의 백인 남성 이성애자, 사유 재산을 소유하는 시민을 지시할 뿐이다. 휴머니즘은 자기 규율의 주체이자 심신이 일치하는 개인을 모든 가치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는 점에서 철저히 인간 중심적 체계다. 휴머니즘은 또한 동일성과 타자성의 이분법, 역사의 진보와 발전을 희구하는 계몽주의를 함의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휴머니즘이 전제하는 ‘인간’이 유럽이라는 특정한 지정학적 위치와 근대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본격적으로 전개됐다는 점에서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개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브라이도티는 푸코의 지적에 동의하며 휴머니즘이 일종의 역사적 구성물로서 다양한 우발적 가치와 지역성을 지닌다고 이해한다. 또한 새 천 년이 시작된 이래 포스트 휴먼으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런 현상을 근대적 패러다임이 전제하는 인간 정체성과 실존에 관한 근본적 문제 제기로 이해한다.

포스트 휴먼을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둘로 나뉜다. 기술의 개입 때문에 인간적 가치와 위상이 상실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있는 반면, 포스트 휴먼을 의학과 과학의 진보로 이해하는 낙관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두 관점 모두 포스트 휴먼을 근대적 인간과 구별되는 새로운 존재 조건으로 규명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른바 ‘트랜스 휴머니즘’이라 불리는 후자의 입장은 인간이 기술과 함께 진화하며 인간을 더 강한 존재로 발전시킨다고 이해한다.

휴머니즘은 인간의 자기 개선을 정언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신체를 정신의 불완전한 감옥으로 여긴다. 따라서 트랜스 휴머니즘은 기술 또는 기계와의 결합을 휴머니즘의 진보로 간주하며 이로써 인간 신체를 강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의 계몽적 유산을 계승한다. 또한 휴머니즘의 전제를 굳건히 할 뿐만 아니라 확장된 기술의 도움을 받아 ‘슈퍼 휴먼’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 휴머니즘의 특성을 확대하기도 한다.

◇포스트 휴먼 전회가 일어나는 장소, 신체

생명 공학의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HGP)는 휴머니즘의 전제를 탈피하는 전환점이 됐다. HGP가 제시한 유전자 지도는 인간과 인간 이외의 종 사이의 연결 관계를 드러낸다. 생명 공학은 개인의 유전 및 신경 정보를 세포 단위로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유전자를 공학적으로 재구축하고 기술적으로 발명한다. 인간 신체가 인공적 기관으로 대체되거나 그것과 합체되면서 신체와 기술이 상호 연계되고 합성되는 인터페이스가 본격적으로 구축되는 것이다.

일례로 ‘바이오 하이브리드’라고 알려진 새로운 생명 공학 기술은 안경을 전자 망막으로 대체해 시력을 교정하려 한다. 나아가 심장 박동기를 생체 공학적 심장으로, 손상된 췌장을 인공 췌장으로 바꾸려는 구상을 실현 중이다. 기술과 매개된 신체는 이미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엄연한 상품으로 자리 잡으며 보편화되고 있다. 상품이 된 신체는 보디빌딩, 컬러 콘택트렌즈, 지방 흡입술 등 비교적 단순한 단계의 신체 향상부터 성형 수술, 인공 관절, 인공 치아 등 인공 기관의 직접적 체내 삽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형태로 사회에 수용된다. 이렇듯 기술과 신체가 연동되고 상품화될수록 ‘자연적인 몸’의 범위와 표지는 더욱 모호해진다.

브라이도티는 오늘날 인간 신체에서 일어나는 포스트 휴먼적 상황을 이해하려면 신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데카르트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신체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신체와 기술의 매개는 근대적 의미의 신체 능력의 향상으로 보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기술과 매개된 신체는 인공적 확장과 대체의 과정이 거듭되는 구성체일 뿐이고 의식은 현상에 불과하다. 오늘날 신체가 처한 상황은 신체에 대한 기존의 정의 자체를 의문시하며 휴머니즘의 가정을 파기한다. 신체는 이로써 포스트 휴먼으로의 전회가 일어나는 현장으로 작동한다.

브라이도티는 스피노자의 내재론과 들뢰즈의 존재론을 통과한 신유물론의 입장에서 포스트 휴먼을 설명한다. 브라이도티에 따르면, 포스트 휴먼으로의 전회가 벌어지는 장소인 신체는 다른 인공물과 결합하거나 해체되며 그 과정에서 이질성과 계속 상호 작용하며 변화한다. 신체의 이와 같은 특성을 이해하려면 문화가 물질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만큼 자연도 문화적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자연과 문화는 상호 작용하며 신체는 자연-문화 연속체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윤리적 유대를 마련하는 ‘긍정의 포스트 휴먼’

포스트 휴먼의 시대는 이미 본격화됐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인간에게 곤경의 풍경으로 등장한다. 과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지구화된 시장 경제는 불평등의 심화와 빈곤, 생태계 파괴 등을 야기한다. 특히 복잡한 국제 관계와 맞물린 각종 분쟁, 난민 양산, 기후 변화 등의 전 지구적 문제에 정치가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은 휴머니즘으로 막아 낼 수 없는 임박한 파국의 징후처럼 여겨진다.

브라이도티는 이 파국적 국면을 타개하는 실마리를 포스트 휴먼에서 찾는다. 포스트 휴먼이 고전적 도덕과는 다른 새로운 윤리적 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브라이도티가 제시하는 ‘긍정의 포스트 휴먼’은 페미니즘의 통찰을 적극 수용한다. 휴머니즘이 실은 ‘로고스-남근-서구-인간 중심주의’에 불과함을 폭로하고 젠더, 인종, 장애 유무 등에 따라 근대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던 ‘타자’의 존재에 주목한다. 이와 같은 반성적 시각은 지금껏 하등하다고 여겨진 생명체나 기계를 향한 성찰로 이어진다. 결국 새로운 존재 조건을 마련하는 일은 인간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극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 정치체의 역사적 존재론을 추적하고 지구 행성의 다른 거주자들과 맺는 관계를 기존과 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 공존, 공생, 공진화할 수 있는 윤리적 거주 방식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의 자리를 만들어 내는 일은 인간을 넘어선 비인간과 생명의 영역 모두가 인류세의 타자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려면 인류세의 생명 정치가 여성, 동물, 식물, 유전자, 세포에 이르는 생식력을 착취하는 통치에 기반한다는 점을 직면하고 비판해야 한다. 이를 위해 포스트 휴먼은 인간의 생명을 넘어선 생성력으로서의 생명을 강조하고 정신과 신체, 자연과 문화,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이분법을 넘어선 시각, 즉 신유물론과 결합한 탈인간 중심주의로부터 구축돼야 한다.

새로운 주체는 근대가 배제한 인간 타자뿐 아니라 환경적 타자들과 기술적 장치들을 포함하며, 인간 아닌 관계들의 연결망에 있는 다양한 타자와 상호 접속한다. 다시 말해 개인을 행위자 주체로 설정하는 휴머니즘과 달리, 포스트 휴먼 주체는 지정학적·생태학적으로 새로운 집단적 행위자다. 이들은 공동의 생활 공간에 공동체, 묶음, 집단, 무리로 거주하며 다수의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긍정의 연대(affirmative bond)를 촉진한다.

브라이도티는 인류가 포스트 휴먼으로의 전회를 통해 자신들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함께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류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재발명할 수 있는 실험으로서 포스트 휴먼을 용기 있게 선취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만으로는 포스트 휴먼의 조건을 결코 세울 수 없다. 브라이도티는 근대적 인간 개념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반휴머니즘적 통찰을 존중하지만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과 허무주의적 인간 혐오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스트 휴먼은 존재론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의심과 불신이라는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지구 공동체를 친화력과 윤리적 책임으로 결속하려는 시도다.

김은주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공동기획 : 이감문해력연구소


■ 로지 브라이도티

분야 - 서양 철학, 페미니즘 이론, 포스트 휴먼 이론
사상 - 동시대 페미니즘, 포스트 휴먼 이론, 긍정의 윤리학
주요 활동·사건 - 유럽 학제 간 여성학 연구 네트워크(NOI&SE) 설립, 유럽인류연구소협회(ECHIC) 창립 멤버

페미니즘, 포스트 구조주의, 비판 이론, 정치 이론, 문화 연구, 과학 기술 연구 등을 넘나드는 철학자로, 현재 위트레흐트대 명예 교수로 있다.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철학, 포스트 모던 페미니즘 등을 결합해 유목적 주체, 긍정의 윤리학, 포스트 휴먼 이론을 제시한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호주에서 비주류 백인 이주민으로 자랐다. 호주국립대에서 스피노자 연구자이자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제너비브 로이드의 지도하에 철학을 공부했다. 그 후 프랑스 소르본으로 유학해 1981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위트레흐트대 여성학 창립 교수로 부임했고, 1995∼2005년 네덜란드 여성학연구학교 설립 이사로 재직했다. 2002∼2003년 유럽대학연구소에서 진 모넷 교수직을 수행했고, 2005∼2006년 버크백대 방문 교수를 지냈다. 2007∼2016년에는 위트레흐트대 인문센터 설립 책임자를 역임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로 성장하며 자기 자신을 다언어주의자이자 복수적 정체성의 집합으로 이해하게 됐다. 하나의 정체성에 뿌리를 둘 수 없고 유동적으로 흐르는 여러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정체화한 것이다. 누구든지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의 기원을 상실하며 누군가의 정체성을 알려 주는 유일한 지표는 그 사람의 욕망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즉 정체성은 삶의 여정에서 생겨난 경험과 체험이 만든 자취의 지도다. 이는 후험적으로 구성되며 단일하고 통일적인 정체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이리가레와 들뢰즈의 통찰을 활용해 ‘집단적 행위자’를 새로운 윤리적 주체로 주목했다. 대표작 ‘포스트 휴먼’(2013)은 ‘유목적 주체’(1994), ‘변신’(2002), ‘트랜스포지션’(2006)에서 탐구한 새로운 주체화 이론의 선상에서 휴머니즘에 관한 다양한 담론과 현상의 지형도를 그려 내고 포스트 휴먼의 조건을 고찰한다.

많이 본 기사 Top5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