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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세월을 어찌할까

기사입력 | 2019-12-27 14:14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법학

하루가 석양처럼 빨리 가는 건
인생 모경 이르러 누리는 은총

생자필멸 회자정리 못 거슬러도
가치 있는 삶의 향기 오래 간직

역경 이겨낸 인생이 맺은 삶은
금강석·진주보다 빛나고 순결


한 해가 또 저물어간다. 하루가 마치 석양 그림자처럼 빨리 지나간다. 어렸을 적엔 하루해가 너무도 길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고향 집의 앞산과 뒷산은 실로 지척 간이라 할 수 있었지만, 앞산에서 떠오른 아침 해가 뒷산으로 저물어 가는 하루의 낮 시간은 어찌도 그렇게 느린지 알 수 없었다. 설날을 손꼽아 기다릴 때라든지, 동네잔치이기도 했던 이웃집의 잔치를 기다릴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물 흐르듯 바쁘게 지나가는 세월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인생 모경(暮境)에 이르러서야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이라 생각한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붙들어 둘 수 있겠는가. 어르고 달래며 간청한다고 촌음의 세월인들 머물다 가게 할 수 있으랴.

한 해의 마지막이 가까워 올수록 기억엔 보람과 기쁨보다 실망과 회한이 많이 남는 듯하다. 일찍이 전도자 솔로몬은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봤더니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고백했다. 당대 최고의 영화를 누렸던 예루살렘 왕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노래한 것은 놀랍게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고백이었다. 일평생 누리는 모든 일에 기한이 있고, 경영하는 모든 일이 다 때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짧고, 헤어진 뒤에 외로움과 그리움은 강하고 깊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를 누가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일평생 용맹정진에 온몸을 불살랐던 구도자 중에도 인생의 종점에 이르러 무(無)라고 말해주고 떠나간 분이 적지 않다. 세월의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가멸적인 인생은 이처럼 허무뿐일까. 차가운 죽음 이후에 전개될 새로운 영혼의 봄을 맞이할 기대와 소망이 없다면 허무밖에 남을 게 뭐 있겠는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지 않는 인생이라면 오늘이란 고귀한 생명의 날을 환락 속에 던져 넣어 탕진하든지 아니면 허무의 늪 속에 빠져들어 생명의 마지막 불꽃마저 의미 없이 소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생의 고귀함과 짐승의 우매함 간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또, 엄숙한 장례 행렬이 뒤따르는 인생의 죽음과 그냥 검독수리의 밥이 되는 짐승의 죽음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생은 유한해 영원한 시간과 공간에 머무를 수 없는 존재지만, 우리는 인간 가족으로서 시공을 뛰어넘어 어떤 선한 삶과 가치 있는 삶의 향기를 오래 간직해 보고자 흠모하기도 하고 기념하기도 한다. 물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성과 성스러움, 또한 선과 의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므로 인생은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생명의 나날 동안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끊임없는 수행을 기뻐 즐거워하는 것이다. 때로 흠결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짐짓 죄짓기나 거짓말을 일삼지 않으며, 양심의 한계선을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리라. 그러한 인생의 향기는 비록 영원무궁에는 못 미쳐도, 오고 올 세대의 기억 공동체 속에 늘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한번 주어진 생명인데, 잘 가꿔야 한다. 사방을 욱여싸고 죄어 오는 난관과 역경을 만날 때라도 삶을 포기하지 말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나 구조의 여망이 없어 보이는 절망의 바다에서도 장래의 소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 또한 지나갈 일이요, 지나고 나면 인생의 일기장에 아름다운 추억의 삽화로 남을 것이다. 평지에 자란 소나무들은 폭풍에 뿌리째 뽑혀 나가기 쉽지만, 바위를 뚫고 선 소나무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역경을 이겨낸 인생이 맺은 삶의 결실들이 금강석보다 빛나고 진주보다 우아하며 정금처럼 순결해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제 한 해는 서서히 지고, 새해가 밝아온다. 새해는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의 삶에도 분수령이 될 것이다. 국민 대표기관을 새로 구성하는 총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은 개인이나 한 가족이 빠져서도 안 될 혐오스러운 악행이다. 하지만 공직선거에 관이 개입해 부정을 저지르거나 불법선거를 획책한다면 그러한 거악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주시민과 국민을 모독하는 용서 받지 못할 불법이다. 지난 대선 때 있었던 여론 조작도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더욱 끔찍한 사건은 현재 드러나고 있는 지난 지방선거 때 울산시장 선출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조직적인 관권 개입 의혹이다.

당시 필자는 K 신문에, 선거전에 돌입한 당일 특정 후보자에 대한 경찰 수사는 민의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으므로 부적절하다는 점과, 혐의점이 있더라도 선거 후로 수사를 연기하는 것이 선거와 민의의 중요성에 비춰 정로라고 강조하는 기고문을 실은 적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그 후 필자는 4개월여를 앞둔 시점에 고정 필진에서 퇴출당하기까지 했다. 5공 말기부터 1000편 이상 칼럼을 신문에 기고해 오면서도 이런 괴이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지금 상황이, 언론 자유에는 심각한 위기가 닥친 어두운 시기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자유를 위한 투쟁의 종소리가 경향 각지로 들불처럼 번져 나가야 할 때라 생각한다. 암울했던 5공 말기 13번에 걸친 교수 시국선언에 동참하고서야 6·29선언이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어둠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우리 자녀·손들이 자랑스러워할 밝은 빛의 터전을 새로 굳게 다지기 위해 이제 우리는 모두 합법적인 선거 혁명의 길로 나서야 할 새해를 앞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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