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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재계 2위로 키운 ‘세계경영’… 明暗 안고 역사속으로

이승주 기자 | 2019-12-10 14:16

10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 별세… 삶과 경제에 남긴 功過

지난해부터 건강 급격히 악화
귀국후 아주대병원서 통원치료
알츠하이머 앓아… 향년 83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창업
30년만에 41개 계열사 거느려
1998년 유동성 위기 그룹 해체

산업화·세계화 선구자 평가 속
분식회계 등 경영비리 얼룩도


한국 기업사에서 세계 경영의 선구자로 ‘대우 신화’를 만들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공과(功過)를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스러졌다. 김 전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83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고 10일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악화돼 귀국 후 아주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았다. 올해 하반기 병세가 악화돼 입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츠하이머를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자본금 500만 원으로 설립한 대우실업을 국내 2위 대기업으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그는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김 전 회장은 1963년부터 한성실업에 근무하다가 1967년 자본금 500만 원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여는 등 샐러리맨의 우상이 됐다. 이후 한국기계(대우중공업),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한국의 중화학산업을 선도했다. 1999년 해체 직전 41개 계열사, 국내 10만 명·해외 25만 명 등을 고용한 재계 서열 2위 대우그룹으로 성장했다. 자산총액은 76조7000억 원, 매출은 91조 원이었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1998년 외환 위기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김 전 회장에 대해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로 세계경영의 씨앗을 뿌렸고 낯선 땅에 가장 먼저 진출해 대한민국 브랜드를 알렸다”고 평했다.

이 같은 평가와 달리 김 전 회장은 21조 원대 분식회계와 9조9800억 원대 사기대출 사건으로 2006년 항소심에서 징역 8년 6월,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받았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2008년 1월 사면됐다. 경영비리로 얼룩진 기업인, 과도한 차입경영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혹평이 나오는 이유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됐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거행된다.

이승주 기자 sj@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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