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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지구 온난화는 자연의 문제인가?

기사입력 | 2019-12-10 10:23

 변영근 작가 변영근 작가


A : 생태문제 해결하려면 인간과 대립되는 ‘자연’개념 폐기해야

(15) 티머시 모턴(Timothy Morton, 1968~)

지구온난화는 일종의 ‘거대사물’
광대하고 복잡해 이해 못할 뿐
외계인, 낯설지만 일상에 있듯
온난화 역시 먼 훗날의 일 아냐

인간 vs 자연 이분법적 사고가
자연을 정복하는 대상으로 인식
인간은 사물보다 우월하지 않아
무한한 가능성은 사물 자체있어


지구 온난화는 언제 등장하는가? 우리는 이상 기후에 관한 뉴스, 과학 논문, 정책 토론, 거리 시위에서 지구 온난화를 보고 듣는다. 가끔은 너무 더운 여름과 이상하리만치 온화한 겨울을 지내며 이것이 지구 온난화의 여파인지 되묻는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특이한 상황, 특정한 시점에서만 등장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고 자기 삶의 문제로 삼기는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미국 철학자 티머시 모턴의 생각은 다르다. 모턴에 따르면 자동차에 시동을 걸 때에도 지구 온난화는 등장한다. 시동을 거는 행동에는 사물, 운동, 공간, 시간 등에 관한 갖가지 판단이 담겨 있는데, 이것은 “지식의 수식화와 시공간을 평평하고 균일한 용기(容器·container)로 보는 시각이 반영된 철학적·이데올로기적 판단”이기도 하다.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일상적 행동은 철학과 이데올로기가 특정한 방식으로 자연을 규정하며 지구 온난화의 빌미를 제공한다.

모턴은 다분히 일상적인 존재인 지구 온난화를 일종의 ‘거대사물(hyperobject)’로 본다. 그는 거대사물을 “인간에 비해 광대한 시간과 공간에 펼쳐져 있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거대사물에서 ‘거대(hyper-)’는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해서 압도적이라는 의미고, ‘사물(object)’은 무한에 가까운 사물(객체)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객체 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의 지식 체계로 담아내기에는 너무 크고 인간과의 관계로만 쓰임새를 정하기에는 너무 다채로운 것이 바로 거대사물이다. 따라서 거대사물을 깔끔하게 이해하거나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거대사물은 마치 외계인처럼 ‘낯설고 낯선 존재(strange stranger)’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대사물이 외계인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거나 먼 미래에야 온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거대사물이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인간이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구 온난화를 먼 곳의 일, 훗날의 일로 여기는 것도 착각이다. 그 낯설고 낯선 존재는 바로 지금 우리의 일상에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거대사물을 이해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기에 이것을 ‘느껴야’ 한다. 거대사물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은 감각과 감성으로 작동하는 미학적 영역(aesthetic dimension)에서 경험해야 한다. 모턴은 거대사물의 특징을 끈적거림(viscosity), 비지역성(nonlocality), 시간적 파동(temporal undulation), 페이징(phasing), 상호사물성(interobjectivity) 등으로 정리한다.

거대사물은 인간이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일상 곳곳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삶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고, 가늠하기 힘든 광범위한 연결성 때문에 특정 지역에 국한할 수 없다. 또 인간의 직선적이고 측정 가능한 시간과 달리 유동적이고 무한해 보이는 시간대에 존재하기에 있다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거대사물은 직접 경험하기 어렵다. “공유된 감각적 공간에 있는 다른 물체”를 통해서, 즉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무언가로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보이기에 그 진위가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거대사물이 ‘고차원적 공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은 거대사물과 기묘한 인과 관계에 있는 사물들을 통해 거대사물의 존재를 극히 일부만 감지하게 된다. 이와 똑같은 특징들은 지구 온난화에도 나타난다. 지구 온난화는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사소한 일상 곳곳에서 나타난다. 또한 특정한 국가나 지역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으며, 최근 인류세에 관한 여러 논의에서 암시하듯 인류 종말 너머의 시간대까지 펼쳐진다.

태양계와 블랙홀처럼 인간과 무관하게 탄생한 거대사물도 있지만, 21세기의 세계가 인간이 만들어 낸 거대사물로 넘쳐 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지구 온난화 외에도 인터넷이나 핵 실험이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매일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링크 몇 개만으로도 수십 개의 또 다른 사이트로 연결돼 원하는 정보를 자유롭게 습득한다. 하지만 웹 공간의 전체 규모는 한 명의 사용자가 일상적으로 접근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설 만큼 광대하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인터넷을 이용하면서도 인터넷 전체의 규모, 속도, 변화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핵 실험에 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하곤 한다. 아무리 가까운 국가에서 핵 실험이 벌어져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핵 실험을 정치적·군사적 문제로만 보고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초의 핵 실험에서 발생한 물질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사람들이 들이마시는 공기, 먹는 음식, 사용하는 제품 곳곳에 남아 있다. 핵 실험은 사람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일상의 위안 속에 숨겨져 있지만 거대사물로서 엄연히 존재한다. 눈앞에 두고도 보거나 느끼지 못했을 뿐 오늘날의 일상은 거대사물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거대사물을 논하는 모턴의 작업은 그가 이전부터 지속해 온 자연 및 생태학 연구와도 관련이 깊다. 모턴은 초기작 ‘자연 없는 생태학’에서 생태와 환경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자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태 환경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를 지적하며 그야말로 ‘자연 없는 생태학’을 제안한다. 자연은 전통적으로 인간이 만들어 낸 다양한 개념을 대신하는 은유로 쓰이거나 엄격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로 그려지면서 인간과 대비되는 존재로 인식됐다.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시각이 확고해지면서 자연은 인간이 정복해 사용하거나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모턴은 자연을 위한다는 이른바 ‘생태학적 전환’조차 자연을 인간과 분리된 대상으로 상정한 채 여전히 이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렇듯 자연의 문제와 인간의 문제를 서로 별개라고 보거나 기껏해야 이들이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보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은 환경 문제를 경제 위기, 테러리즘, 지역 분쟁보다 경시한다.

한편 환경 문제가 인간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느냐는 질문은 언뜻 가치 판단을 요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 구도를 재생산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모턴은 진정한 생태학적 전환을 이룩하려면 자연 개념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 정도로 과감하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이로써 다시 보고 느끼며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턴이 특별히 새로운 태도를 내세운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모턴의 논의는 일상을 미학적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의 시선에서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물들은 새롭고 놀라운 무언가로 탈바꿈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가늠하기 힘든 거대사물일 수도 있고, 새로운 감각을 자아내는 예술 작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상 자체의 새로움을 느낀다면 사람들은 평범한 사물 앞에서도 충만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모턴은 객체 지향 존재론에 자연스레 합류한다. 객체 지향 존재론은 하이데거의 도구론이나 사물 개념을 바탕으로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이 발전시킨 철학 사조로, 20세기 후반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비인간 존재를 탐구한 포스트 휴머니즘, 신사물론(new materialisms)과도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하먼을 비롯한 객체 지향 존재론자들은 사물의 무한한 가능성이 관계가 아닌 사물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사물이 익숙한 도구이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색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물에 마술과 같은 내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모턴은 저서 ‘거대사물’에서 잠시 언급했던 객체 지향 존재론을 다른 저서인 ‘사실주의적 마술’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객체 지향 존재론의 입장에서 인과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소개하며 “인과 관계란 전적으로 미학적 현상”이라고 역설한다. 중요한 점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런 미학적 현상에 전혀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모턴이 보기에 인간은 여타의 사물보다 전혀 우월하지 않은 존재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작 ‘인류’에서는 객체 지향적 관점에서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humanity) 대신 ‘공생적 실재(the symbiotic real)’의 일부라는 뜻에서 인류(humankind)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결국 공생적 실재로서 일상이 새로운 이유는 일상에 놀라운 사물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모턴은 이런 이유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사물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동신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공동기획 : 이감문해력연구소


■ 티머시 모턴

분야 - 영문학, 철학, 생태학, 미학
사상 - 객체 지향 존재론
주요 활동·사건 - 아이슬란드 음악가 비요크와의 서신 교환

196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92년 옥스퍼드대 모들린 칼리지에서 퍼시 비시 셸리에 대한 논문으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대, 콜로라도대,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등에서 강의했고, 2012년부터 라이스대 영문학과 교수로 있다. 1995년에 발표한 ‘셸리와 취향의 혁명’에서는 낭만주의 작품과 당시의 자연 환경, 음식 소비, 몸의 관계를 연구했다. 이후에도 음식 문화에 대한 저술로 ‘향신료의 시학’(2000), ‘급진적 음식’(2000), ‘취향 문화와 식욕 이론’(2004) 등을 쓰고 엮었다.

‘자연 없는 생태학’(2007)과 ‘생태학적 사고’(2010)에서 본격적으로 생태학과 환경주의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사고를 재생산하는 기존의 자연 개념을 비판했다. 자연 개념 대신 혼란스럽고 불안한 생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이른바 ‘어둠의 생태학’을 발전시켰다. 대표작 ‘거대사물’(2013)에서는 지구 온난화처럼 인간의 측정과 이해를 넘어서는 사물의 존재를 이론화하면서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거대사물을 논의한다. ‘사실주의적 마술’(2013)을 비롯한 사물 연구를 사변적 실재론이나 객체 지향 존재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갖가지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사물의 잠재적 가능성과 사물들 간의 인과 관계를 미학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인류’(2017)에서는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이 아닌 공생적 실재의 일부로서 인류를 객체 지향 존재론적 시각에서 다룬다.

이렇듯 기존의 고정 관념과 학문적 경계를 거부하는 급진적인 사상적 행보는 글쓰기 방식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거대사물’에서 자신의 사고방식과 글쓰기 방식이 밀접하게 이어지며 이로써 “정상적인 확실성이 뒤집히거나 심지어는 사라지는 것”을 노린다고 밝힌 바 있다. 예기치 않은 전개 방식이 던져 주는 놀라움은 급변하고 혼란스러운 21세기와 이 시대의 사물을 통찰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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