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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하명’ 사실일땐 ‘현대판 3·15 부정선거’… 민주주의 파괴한것

기사입력 | 2019-12-03 11:06


■ 선거개입 의혹 무엇이 문제인가

노무현, 헌법소원 청구했지만 헌재 “선거의 공정성이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하다”

靑 민간 첩보수집·수사보고 받았다면 ‘정치 사찰’ 가능성 … 국민은 ‘무조건 신뢰’ 아닌 ‘합리적 통제’ 나서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경찰에 생성과정도 불투명한 비리 의혹을 이첩하면서 사실상 수사를 하명(下命)하고 수사 진행 과정을 보고받고 민정비서실의 ‘비선 감찰팀’이 수사 상황을 직접 챙긴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 이런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법률이 정한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에 대한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위반이다.

◇법률이 정한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은 국가권력이 선거에 개입하는 관권선거에 대한 아픈 경험이 있다. 제1공화국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3·15 부정선거 와 이에 분노한 학생들과 국민이 궐기한 4·19혁명이었다. 이 뼈아픈 경험에 따라 제2공화국 헌법에서 이미 선거관리위원회를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구성함으로써 정부의 선거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이러한 선거의 룰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이는 과거 4·19혁명을 불러온 ‘현대판 3·15 부정선거’라는 비판과 함께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관권선거를 막기 위해 공직선거법 제9조는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명시하고 있고, 직업공무원은 정당 가입도 금지된다.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 같은 정무(정치)직 공무원이라 해도 선거 중립 의무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한 발언이 선거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논란을 불렀고, 결국 집권 1년여 만에 국회에서의 탄핵 소추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그 후에도 야당 비판 혹은 여당 지지 발언으로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정치 활동의 자유’와 ‘선거 중립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 후자가 강조되고 우선돼야 한다고 결정했다(헌재 2008. 1. 17. 2007헌마700 결정). 결정문의 요지는 이렇다.

<공직선거법 제9조의 선거 중립 의무는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과해 선거의 공정이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선거를 통한 국민주권원리가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정당한 입법 목적을 갖고 있다.…민주주의 국가에서 공무원(대통령)의 선거 중립으로 얻게 될 ‘선거의 공정성’은 매우 크고 중요한 반면, 공무원이 감수해야 할 ‘표현의 자유 제한’은 상당히 한정적이므로 (선거 중립 의무가)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배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

‘1987 체제’가 들어서면서 민주화가 이뤄진 후 30여 년이 흘렀으나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청와대의 제왕적 지위는 여전하며 관권선거 우려는 불식되지 않았다. 막강한 권력이 집중된 청와대의 선거 개입이 아직도 확실하게 금지돼야 하는 이유다. 권력을 직접 행사해 선거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지지 의사를 표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점이 명백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유력 야권 후보자와 그 주변을 사찰하고 비리 의혹 정보를 수집한 뒤 경찰에 ‘하명 수사’ 방식으로 사실상 수사를 지휘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분명해진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선거를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의 기본 틀과 국가의 기틀을 뒤흔드는 행위다.

◇피할 수 없는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둘러싼 수사에 대해 청와대는 선거 개입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명 수사’나 의도적인 표적 수사가 아니라 현역 광역단체장에 대한 보고된 비리 첩보를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경찰에 이첩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담당하는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비선 감찰팀’을 운영하면서 지방선거에 나설 유력 야당 후보 주변 비리 첩보를 수집하고 감사원도 아닌 경찰에 사실상 수사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조치일까.

현행법상 청와대가 어떤 첩보를 수집하며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법률적인 근거는 없다. 현재 청와대 직제는 법률 근거 없이 대통령령으로만 돼 있다. 이는 정부조직법에 의해 구체적인 조직과 권한이 명시된 정부기관들과는 달리, 청와대 각 기관이 순수한 보좌기관일 뿐 독립된 역할을 수행하는 행정관청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청와대 비서진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이들의 권한과 의무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건 때로 매우 중대한 법적 문제를 낳게 된다. 민간 비리 첩보를 수집할 근거도, 이를 관계기관에 이첩할 근거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를 받아서 첩보 수집과 비리 이첩 등을 행한 경우라 할지라도 이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대통령 권한 행사의 오·남용이라는 시각으로 다뤄져야 한다. 권한 행사에 법률적 근거가 요구되는 것은 오·남용에 대한 통제를 위해서다. 청와대가 ‘비선 감찰팀’을 만들어 민간 첩보를 수집하거나 수사 보고를 받는 것은 정치사찰과 관련 있을 수 있다. 어떤 측면이든 청와대의 선거 개입이라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커지는 의혹,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이미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당시 경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무려 9차례나 보고받았고 ‘백원우 비선 감찰팀’이 수사 상황을 직접 챙겼다는 정황들이 공개되고 있다. 경찰에 이첩했다는 울산시장 비리 문건의 생성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민주화 이후의 역대 정부 가운데 인사 검증이 가장 부실했다는 평가를 받는 청와대에서 이번엔 어떻게 이렇게 정밀하고 철저하게 첩보를 수집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혹도 있다. 지난 1일엔 검찰 조사를 앞둔 비선 감찰팀 출신 모 수사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민주화 이후로도 역대 정부 청와대 비서진의 정치 중립 위반과 비대한 권한에 대한 비판은 계속돼 왔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더욱 그렇다. 과거 군사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는 최고의 인재를 모아 참모진을 구성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로는 오히려 코드 인사에 묻혀서 청와대 비서진의 능력도, 도덕성도 의심받는 상황이다. 제2의 문고리, 제2의 최순실이 생겨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셈이다. 이에 청와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거나, 권한 행사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고, 비서실장·정책실장 등 고위 참모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개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은 국민이 선출된 대표자를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되는 진리 가운데 하나는 국민이 주권자로서 감시와 통제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주권자로서 대접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靑 선거 개입 불가의 법적 근거 : 공직선거법 제9조에 따르면 민주주의에서 공무원의 선거 중립으로 얻게 될 ‘선거의 공정성’이 중요한 반면, 공무원이 감수해야 할 ‘표현의 자유 제한’은 한정적이므로 선거 중립 의무가 과잉 금지 원칙 위배라 할 수 없음.

靑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 파괴 :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구현되는 것. 청와대가 유력 야권 후보자와 그 주변을 사찰하고 비리 의혹 정보를 수집해 경찰에 수사를 하명했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틀과 국가의 기틀을 깨는 행위임.

비서진의 선거 개입 의혹 : 청와대가 ‘비선 감찰팀’을 만들어 민간 첩보를 수집하거나 수사 보고를 받았다면 ‘정치사찰’과 관련 있을 것. 민주주의의 기본은 국민이 선출된 대표자를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임.


■ 용어 설명

3·15부정선거 : 3·15부정선거는 1960년 자유당 정권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선거부정행위. 야당 선거운동 방해와 야권인사 테러 등이 조직적으로 자행됐으며, 이 부정선거를 계기로 4·19혁명이 일어나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하명 수사 : 하명 수사는 사전적 의미는 아니지만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에 특정 사건의 수사를 명령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치적 반대자를 겨냥해 내리는 표적 수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정권의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과거 3·15부정선거는 4·19혁명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불렀다. 오른쪽은 2017년 대선 당시 시민단체 회원이 투표함을 감시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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