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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의 가을

기사입력 | 2019-11-29 11:55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법학

獨유학시절 ‘인질사건’ 통해
‘생명은 최상 가치’ 깊이 공감

야당 대표, 목숨 건 단식하는데
우리 현실은 몰인정하고 잔인

‘생명 살리는 게 옳고 선함’ 진리
정치도 경제도 예외 아닐게다


1977년의 가을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길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날들로 아로새겨진 계절이 아닐까 회억된다. 아마도 생전 처음 긴 비행기 여행 끝에 독일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뮌헨에 도착한 이후, 날마다 순간마다 새로운 경험과 마주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리라. 서울에서 1년 남짓 남산에 있는 독일문화원에 다니는 등 나름 준비를 단단히 하고 떠난 유학길이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닥친 현실은 생각과 크게 달랐다.

내가 뮌헨 땅을 처음 밟은 것은 그해 9월 마지막 주일을 이틀 앞둔 금요일 오후였다. 이른바 ‘아데나워 장학생’으로 뽑혀 일행이 된 사람은 나를 비롯해 김남두, 홍도인, 차수련 네 사람이었다. 그때는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기가 서울까지 자주 왕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일본 항공편으로 나리타(成田) 공항까지 갔다. 거기에서 해 질 무렵 루프트한자 편으로 갈아타고 방콕-자카르타-카라치를 경유해 다음 날 새벽 비 내리는 아테네 공항에 잠시 머물렀다가 스위스 취리히를 거쳐 오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린 뒤 뿔뿔이 헤어졌다. 나는 거기에서 다시 국내선을 이용해 최종 목적지 뮌헨 공항에 내렸다. 취리히에서 독일로 들어올 때 창밖으로 내려다본, 끝없이 펼쳐진 알프스 산맥의 설원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되돌아보면 참으로 긴 여행길이었다. 하지만 미지의 땅에서 가꿔갈 배움의 꿈에 젖어 조금도 지루한 줄 몰랐다. 나를 뮌헨 공항에서 맞이해준 분은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나와 동갑내기인 김판금 군이었다. 그는 이미 독일 사정에 능숙한 아데나워재단 장학생이었고, 재단의 주선으로 생면부지인 나를 마중하러 나온 것이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뮌헨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의 가로수 단풍들이 붉게 타는 저녁노을과 어우러져 이국에서 처음 맞는 가을 저녁을 더한층 아름답게 수놓는 듯했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마다 들리는 안내 방송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는 진실로 내가 이방의 나그네라는 사실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내 귀에 들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안 돼 독일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중대사건이 터졌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TV가 온종일 특종 보도를 긴박하게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인물이 괴한들에게 납치된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독일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였다. 나로선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귀머거리에 벙어리라는 새로운 사실만이 더욱 분명해졌다. 후일에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독일 경제계에 유력한 인사, 즉 우리나라 사정과 비교하자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격인, 한스 마틴 슐라이어라는 분이 적군파 학생 테러 조직에 인질로 납치된 뒤 끝내 풀려나지 못하고 살해된 사건이었다.

납치범들은 당시 중구금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료 테러범들을 석방하라는 조건을 내걸고, 인질 처형의 시간을 예고한 채 독일 정부에 숨 막히는 압박을 가하고 있던 터였다. 정부의 반대 입장은 단호했다. 테러범들과의 협상은 정의의 이름 아래서 거론조차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죄 없는 인질의 가족들은 급기야 독일 헌법재판소에 정부를 상대로 인질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인도적 조치를 취하라는 소원을 냈다.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헌법재판소마저 이를 외면하자, 인질의 생명은 경각을 다투는 한계 상황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한두 번 처형 연장을 했던 납치범들은 끝내 인질을 살해해 훔친 자동차에 실어 쾰른 시내 어느 골목길에 내버린 채 달아난 것으로 일단 이 인질 납치 사건은 종료됐다.

낯선 독일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이 비극적인 사건은 그 후 나에게 형법학에서 생명이라는 최상의 가치 보호와 그것이 침해되거나 위태로운 처지에 놓일 때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인 아픔의 문제를 깊이 숙고하도록 해 주었다. 국가 법 집행의 엄중성이 죄 없는 한 개인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인지 아직도 명쾌한 답을 알지 못하지만, 그에 대한 감수성은 배움의 연륜이 더해 갈수록 깊어졌고, 시적인 상상력과 함께 더 예민해진 건 사실이다. 더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들어 낙태 자유화를 형법에서 무슨 진보적 자유사상인 양 떠들어대지만, 그러한 현실 먹구름 밑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의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에 찢어질 듯 가슴 아파 낙태반대운동에 힘을 싣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형 없는 형법을 위한 노력과 피해자와 가해자를 화해의 자리로 이끄는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그리고 정의로운 사랑과 사랑이 배어 있는 정의가 빚어내는 사랑의 형법을 ‘형법의 미래 음악’이라 노래하기도 했다.

사랑의 형법과 함께 형법의 미래 지평은 치유의 형법으로 나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형법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각인에게 최고의 가치를 지닌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본다. 형법 질서에서 사랑의 수고도 치유의 노력도 결국 사람을 살리고 질서 속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돕는 것을 지향한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생명의 질서가 여기저기에서 무너지고, 생명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풍조를 쉽게 경험할 수 있다.

한 중요한 정치 지도자가 긴박한 정치적 요구 사항을 내놓고, 찬바람 부는 길거리에서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던 중 병원으로 이송되기까지 했는데,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몰인정하고 잔인해 보인다. 무엇이 옳음이며, 무엇이 좋음인가.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말했듯이 생명을 살리는 게 옳고 선함이며, 사람을 죽이는 게 옳지 않음과 나쁨이다. 정치도 사회와 경제도 문화와 언어도 예외가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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