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전체
사설
시평
시론
포럼
오후여담

美하원 의원 정수는 100년 이상 그대로다

기사입력 | 2019-11-28 11:49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비제’ 위험한 제도만능 발상
국회의원 증원 주장 근거 없고
비례성 논리도 정당 지상주의

勢확장 동기에 순수성도 실종
시간 걸려도 공감대 형성해야
안정된 틀과 운용의 지혜 중요


제도만 고쳐선 정치가 나아질 리 없다. 이는 너무 자명해 이젠 진부(陳腐)한 말이다. 그 자명함은 우리나라 헌정사가 잘 보여준다. 그동안 크고 작은 정치제도 변화가 셀 수 없이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좋은 효과를 거둔 경우는 극소수다. 헌정사상 긍정적 변화는 제도보단 국민의 시민적 의식이 고양되고 정치문화가 바뀌는 가운데 나타났다. 제도 개선은 의식·문화·규범 차원의 총체적 변혁에 부수적으로 올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역사 변화의 원동력이기는 힘들다.

지금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해묵은 제도 만능주의의 연장선에서 제기되고 있다. 주장하는 측이 제시하는 여러 근거는 비교학적으로나 당위적으로나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인구, 나라 규모, 국정 범위가 증가한 만큼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점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의원 1인당 지역구민의 수를 줄이면 의원-유권자 연계가 강해져 대의의 질이 향상될 거라는 논리는 경험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면 다양한 이익이 대표되고 양대 정당에 의한 양극화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 그리고 다당제를 만들면 연합정치와 협치(協治)의 미를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중남미는 물론 유럽 여러 국가에서의 거듭된 실패가 잘 보여준다. 선거 득표율-의석률 차이를 줄여 비례성을 높이자는 주장도 선거를 집단적 정당 경쟁으로만 환원시키는 정당 지상주의 관점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제도만 놓고 보면 이처럼 장단점을 둘러싼 논란이 끝없이 이어지고 결론을 내기 불가능하다. 이면의 맥락을 더 중요하게 따져 봐야 하는 이유다. 의원 정수 및 선거구제와 관련한 최근의 논쟁은 국가 정치 발전을 위한 진정성 있는 변혁보다는 정파적 이득을 위한 권력투쟁의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진정한 ‘판갈이’를 원한다면 헌법, 시민의식, 정치 리더십, 정치 규범 등의 변혁을 통해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특정 정당(들)에만 유리한 제도를 도입하려 하겠는가? 정치권 일각의 극렬한 반대를 뚫고 특정 제도를 바꾼들, 갈등과 교착이 더 깊어져 체제 전반의 변혁을 시도라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의문들을 고려해볼 때, 의원정수 확대 및 연동형 비례대표제 제안의 이면에 순수한 동기보다 인적 ‘물갈이’를 통한 세(勢) 확장이라는 정파적 동기가 있는 것 같다. 지지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하는 배경이다.

정치인의 제도 탓은 자기변명이기 쉽다. 주어진 제도에서 최대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운용의 묘를 기해 유권자를 대변하고 국정을 이끌어야 할 정치인이 제도 탓을 한다면 자기 무능력을 애써 덮고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 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의원정수 확대든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가 충분히 논의하고 공감대가 생길 때 제안해야지, 정치권이 직접 앞장선다면 그 순수성을 잃게 될 뿐이다. 일부 선수가 다른 선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게임 규칙을 바꾸려 한다면 널리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게임 규칙은 일부 선수끼리 멋대로 바꾸는 게 아니다.

미국 하원의 경우, 의원정수가 1787년 65명으로 시작해 영토 확장과 함께 계속 늘다가 1911년에 통과된 법에 따라 1913년 선거부터 435명으로 고정돼 현재에 이르렀다. 100년 넘는 지난 세월에 미국은 여러모로 엄청나게 성장하고 복잡해졌지만, 각 주(州) 할당 의석수의 변동만 있었을 뿐 전체 숫자는 변치 않았다. 사실, 미국에서는 의원정수뿐만 아니라 선거제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치 제도가 현격한 변화 없이 유지돼 왔다. 미국 정치인들은 주어진 제도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운용의 묘를 살리는 데 주력해온 것이다. 정파적 이득을 위해 수시로 제도를 변경하는 일에 몰두했다면 민주주의를 안정되게 꽃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정치 발전은 제도 만능주의로는 요원하다. 제도만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문화·규범은 그대로라면 온갖 제도로도 효과를 낼 수 없다. 더욱이 패스트트랙이라는 절차상의 무리수까지 두며 큰 갈등 속에 제도를 바꾼다면, 정치인은 물론 지켜보는 국민도 불신감, 적대감, 냉소주의, 자괴감에 빠져 의식·문화·규범 차원에서는 상황이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 진정한 정치개혁을 원한다면 개헌(改憲)이나 의식운동 등을 통해 근원적 변화를 추구해야지, 정파적 이득을 위한 제도 변경에 급급해하진 않을 것이다.

많이 본 기사 Top5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